지역발전을 위해서는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의식정도가 큰 역할을 한다. 성주는 오래전부터 선비의 고장으로 이름이 나 그 명성이 영남전체에 떨쳤다. 하지만 가족사회가 분화되면서 점차 개인주의로 흐르고 있으며 집단의 이기심으로 초법적인 행동을 서슴지 않기도 한다.
군은 성주아카데미란 이름으로 군민들과 공무원들의 의식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고 사회단체와 지역 언론도 지역민의 의식개혁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한다. ‘성주 어떻게 살 것인가’로 포럼과 특강을 하고 신문지면을 통해 계도적인 글을 보내면서 지역의식의 변화를 통해 노력하고 있다.
성주군 교육발전위원회는 중3학부모들의 의식개혁을 위한 노력들을 계속해 왔다. 고등학교 진학을 앞둔 부모들은 90년대 중반만 해도 대부분의 성적상위권 학생들의 부모는 관외의 학교 즉 김천고등, 청도이서고, 왜관순심고등, 고령대가야고로 진학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 이유로는 대구시내 학교로 갈 수는 없으니까 경북내의 어떤 고등학교를 선택해도 성주고등학교로 보내는 것 보다는 났다는 생각을 했다.
당시 남자 인문계고등학교는 사립성주고등학교와 가천고등학교가 있었는데 두 학교가 모두 학부모들의 학교선택권을 만족시켜주지 못하였다. 따라서 성주에 학교를 보내느니 만족스럽지는 못하지만 타지역학교로 보낸다는 의식이 대부분 학부모들에게 팽배해져 있었다.
관내학교는 이러한 사실을 당연히 받아들였고(어쩔 수도 없었지만) 외지로 나가고 남은 학생들만 진학하다보니 나머지라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었던 것이다.
행정지원 초기 지역민의 의식
1997년
성주군 교육발전위원회는 이러한 성주의 현주소를 파악하고는 열악한 재원을 남자 인문계고등학교에 집중하기로 결정한다. 학부모들의 마음을 잡을 수 있는 방법으로 여러 가지가 있지만 제도적으로 장학사업 밖에 할 수 없는 시기라 획기적인 장학금 지급을 결정한다.
성주에 진학하는 학생들에게 3년간 3백만 원, 1년간 1백만 원, 6개월간 5십만 원을 60명에게 지급하는 유인효과가 큰 액수를 장학금으로 제시하며 진학을 앞둔 학생학부모를 설득해 갔다. 중3학생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진학부장과 학부모들을 모셔 공개간담회를 갖고 장학제도를 설명하고 애향심에 호소하며 관내진학을 권유했으나 참담한 실패를 했다.
교육에 관한한 양보함이 없는 학부모들에게 3백만 원의 장학금은 실효성이 없었다. 농가소득이 높은 학부모들에게는 장학금의 액수보다는 미래가치가 더 중요하였고 애향심에 대한 호소는 별 효과가 없었다. 심지어는 ‘당신자식부터 먼저 관내학교에 보내봐라’는 조소를 받았을 뿐이다.
1998년
장학사업 만으로는 학생을 잡을 수 없다는 것을 안 교육발전위원회는 먼저 공부하는 모습을 학부모에게 보여주기로 했다. 중학교 3학년 입학시험을 치르고는 다음해 입학 때까지 4개월을 자기 스스로 공부하여 기초학력을 높여야 할 시기에 고등학교에서 ‘방학 중 선수학습’을 실시키로 했다.
성적 최상위자가 빠져나간 나머지 학생들을 모아 외지학교보다 훨씬 더 효과적인 선수학습을 통해 공부하는 모습을 학부모들에게 보여주자는 의도로 교사와 학교가 열심히 노력하여 학생들과 학부모들에게 신선한 모습으로 보여 지기 시작했다. 선수학습비용은 전액 교육발전위원회에서 제공함은 물론이다.
이렇게 사업을 시작하니 재원이 부족함을 느껴 본격적인 모금을 위해 사단법인으로 전환하여 지방자치단체장이 당연직 이사장이 된다. 교육에 관심 있는 출향인이 고향의 교육사업을 위해 재단을 인수하는 문제들이 논의되고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또한 군민들이 회원이 되는 전 군민 교발위 성금모금이 시작되어 각계각층에서 만원부터 수천만 원까지 납부하여 회원 3천8백여 명에 2억여 원의 성금이 모금되고 군에서도 1억원을 출연하여 재원을 확보해 나갔다.
1999년
지속적인 장학금과 선수학습 특별수업 등으로 학부모들의 관심을 유발하고 공부하는 학교로의 모습을 보여줌에도 불구하고 변화의 조짐은 보이지 않았다. 그 원인을 살펴보니 당시의 성광재단으로는 믿을 수 없다는 것이 있었고 출향인의 재단인수를 적극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하여 많은 후보자들이 나타났지만 우역곡절 끝에 대구의 원로 기업인이 재단을 인수한다.
2000년
학교의 주인이 바뀌고 사단법인 교육발전위원회가 장학금과 특별수업지원 등으로 지속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고 알려진 뒤 성주고등학교를 바라보는 학부모들의 시각은 점차 바뀌어 나간다. 하지만 성적최상위권은 아직도 지역학교를 믿을 수 없다며 김천고 등으로 빠져나간다. 학교의 진학률도 많이 높아지긴 했지만 주변의 명문고에 비해 많이 뒤떨어져 획기적으로 유인할 수 있는 성과가 나타나지는 않았다.
2001년-2003년
교육에의 지원은 지속적이어야 하므로 성과가 나타날 때까지 계속 학교에 대한 지원과 학생모집을 이어나갔다. 처음에는 성주중학교의 10위권 내에는 한명도 진학을 않다가 점차 상위권학생들이 조금씩 성주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시작한다.
또한 지역출신 도승회 도교육감의 도움으로 성주고등학교와 성주농공고가 통합되는 획기적인 사건이 발생한다. 이는 엄청난 예산을 지원받아 학교를 신축하였고 교육부시범학교를 통해 우수교사 확보라는 인센티브를 받아 경상북도에서 제일가는 교사가 성주고등학교에 다모여 있다는 소문이 나서 학부모들의 인식이 일시에 바뀌는 계기가 되었다.
그동안 교육발전위원회의 지원과 노고가 한꺼번에 성과를 나타나기 시작했다. 임원들과 학교관계자가 비 오는 날 학생유치를 위해 가가호호 방문하여 문전박대를 당하다가 이제는 집안에 까지는 들어가게 됐다는 이야기다.
우수교사와 최신식학교가 있으니 우수학생만 들어오면 된다는 캠페인으로 학부모들을 설득하기 시작하였고 변화된 학부모들은 하나둘씩 성주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된다.
또 하나 학부모의 의식이 바뀔 수 있었던 것은 교육부정책에 농어촌특별전형과 지역균형선발제도가 수립되어 농촌지역에 학교를 살리기 위한 제도적 지원으로 농촌지역학교들만의 전형을 통해 우수대학교에 들어갈 수 있는 문을 열어놨다는 것이 관내학교로 진학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먼저 교육발전위원회가 설립되고 활동을 한 것이 제도적인 지원과 맛 물려 상승효과를 나타나게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2004년
처음으로 관내에 성적상위자 1,2등이 성주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자연히 학생들과 학부모가 진학우선순위를 성주고등학교에 두게 되었다. 하지만 그중 몇 명은 빠져나가기도 한다. 학부모들은 이제야 농촌학교에 가면 같은 실력이라도 서울대등 상위권학교에 들어가기 쉽다는 생각들을 갖기 시작하였다.
2005년
10년 동안의 교육지원 정책이 성과를 올리는 첫해였다. 경북대, 영남대, 등 지방학교는 물론이고 서울에도 진학하고 특히 농어촌특별전형에 의해 성주고등학생이 도지사추천으로 카톨릭의대에 6년 장학생으로 선발된 것이다. 농어촌특별전형의 쾌거이기도 했다.
2006년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하니 겹경사가 난다고 성주고등학교에서 32년 만에 처음으로 서울대학교에 합격하는 영광을 차지했다. 2004년 성주중학교에 1위 학생이 성주고등학교에 입학하여 수십 년 만에 처음 이룩한 서울대학 합격은 지역으로써는 큰 사건으로 학부모들의 인식을 획기적으로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2007년
‘서울대학 2년 연속 입학!’ 현수막이 곳곳에 붙으면서 성주고등학교의 위상을 높여주었다. 이제 성과는 연속으로 나타나며 학생모집에는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동안 노력한 선생님들과 학교관계자 교발위 임원 등은 보람을 느끼고 이제 그만둬도 되지 않나하는 안도감을 가지게 되었다. 교육의 성과는 10년을 넘어 나타나게 된다는 말이 실감나는 사건이다.
이렇게 지역의 문제는 지방자치가 실시되면서 지역민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의식이 생겨나면서 현재 학생을 둔 학부모는 초등학교에서부터 교육을 위해 위지로 나가야하는 문제들로 고민하는 것은 줄어들게 되었지만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다.
따라서 교육에 대한 지원정책은 초등학교에서부터 학생들이 안심하고 지역에서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어야하고 중학교, 고등학교로 이어지는 선순환구조를 확립하는 것이 중요하다. 교육예산이 점차 줄어들고 있어 행정이 교육에 지원하는 비중도 조례를 통해 점차 확대되고 있다.
학부모들의 의식은 자녀들이 안심하고 다닐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지고 대도시 학생들과의 경쟁에서 뒤쳐지지 않는다는 확신만 있으면 지역학교에 보낸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현재에는 상위권학생들의 학부모들은 지역고등학교 진학에 대해 의심을 갖고 있지 않으며 교육외적인 문제로 타지 진학이 미약하게 이루어 질 뿐이다.
행정기관의 교육에 대한 지원은 10년간의 추진으로 가시적인 성과를 이룬 것이 확인되며 앞으로는 대도시에 나간 지역민들이 역류하는 단계에까지 간다면 인구유입의 성과도 바라볼 수 있다. 현재 대구에서는 지역민들이 ‘성주고등학교에 진학하려면 어떻게 하는가?’라고 문의하는 전화만 해도 수십 명에 달한다고 성주고 담당부장은 말한다.
이렇게 지역민들이 자식교육 때문에 외지로 나가지 않아도 된다는 의식의 변화는 많은 시간과 다양한 정책, 관계자들의 끊임없는 노력의 결실로 변화가 이루어졌다. 따라서 이러한 변화의 의식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관리하려면 더 많은 예산의 투입으로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이어지는 선순환구조를 정착시켜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