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친구들이 매월 둘째 일요일이 되면 함께 산행을 한다. 한 달에 한 번씩 만난 지도 어언 10개 성상이 흘렀으니 이제는 이날이 기다려지기도 한다. 서로 만나 반갑고 휴식 때면 끝없는 정담을 나눌 수 있어 좋다. 어떤 때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에 대한 불평을 쏟아내며 언쟁을 하기도 하나 그것도 스트레스를 풀어준다. 그러고도 모자라면 언제나 하산 주를 마시며 못다 한 이야기들을 더 나누어 좋다. 유월의 신록이 우거진 초여름 어느 날 북한산 산행을 갔다. 구파발에서 출발하기 전부터 날씨가 흐리더니 대서 문을 통과하니 기어코 짓궂은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중서 문으로 달려가 누각에 걸터앉아 간단한 요기를 하고는 서둘러 정릉계곡으로 내려와서 정릉시내버스 종점 부근의 한 음식점 아래층으로 안내되었다. 등산화를 벗고 방으로 들어서니 방벽에는 150호 가량 되는 큼직한 산수화와 ‘난득호도’란 한글 붓글씨 족자 한 점이 길이로 걸려 있었다. 종업원과 주인을 불러 난득호도가 무슨 뜻이냐고 물어 보았다. 그들도 뜻을 모른다고 했다. 부랴부랴 집으로 돌아와 고사성언을 펼쳐보니 난득호도는 청나라 문학가 중 8대 괴인의 한사람으로 알려진 정섭이란 자가 처음 사용한 말이라 했다. 세상이 혼란할 때는 자신의 능력이 돋보이면 화를 당하기 일쑤이므로 바보인 척 살아가야 한다는 처세술이다. 이 말의 어원은 춘추시대 손자병법의 허실 편에 나온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이 아무리 훌륭해도 남에게 드러내지 않고 살아가는 중국 사람의 인생철학은 생존을 위한 고도의 위장술일 수도 있고 아니면 상대방을 안심시켜 좀더 강한 공격의 효과를 기대하는 전술일 수도 있다. 아무튼 자신의 능력을 다 나타내면 상대방으로부터 무시 아니면 경계의 대상이 되어 자신에게는 이로울 것이 없다는 계산이다. 정섭은 청나라에 의해 멸망된 명나라 땅 강소성 양저우 사람이다. 그는 공직 재직 시 곡창을 열어 굶주린 백성을 구하였으나 그것이 화근이 되어 면직된 후 병을 핑계로 벼슬길에 나서지 않고 뱉어낸 말이 난득호도다. 고향에 돌아온 정섭은 자신을 감추고는 자유분방하게 시·서화 등에 정진하며 산 것 같다. 그의 시(詩)는 체제에 구애받지 않고, 그의 글씨는 해방적인 독자적 서풍을 창시하여 양주 팔괴의 한사람으로 불렸다. 그가 남긴 난득호도는 세상을 살아가는 처세술 중에 가장 힘든 것이 똑똑하면서 바보인 척 살아가는 것이라 했다. 법과 원칙이 통하는 사회에서 가식 없이 살고 싶어하는 것이 뭇사람의 꿈일 것이다. 그러나 순진하고 솔직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을 그냥 두지 않는 것이 세상인심이다. 똑똑하면서 바보처럼 살기는 정말 힘들다는 난득호도의 처세술은 하루하루 생존의 벼랑에 매달려 살아가는 우리 서민들로서는 한번쯤 생각해 볼만한 인생철학이 아닐까. 중국 사람들은 좋은 물건일수록 자기 집에 꼭꼭 숨겨 없는 척하며 사는 반면 한국 사람들은 주변 모든 사람을 불러 자랑을 한다고 한다. 더구나 상대방으로부터 언짢은 일을 당했을 때 한국 사람들은 고래고래 욕설을 앞세우나 중국 사람들은 아무도 모르게 복수를 한다고 한다. 이게 사실인지 아닌지는 증명된 바가 없으나 삶의 수단으로써 무엇이 오른 길인지 판단하기가 무척 어렵다. 오늘날 사회 곳곳에서는 정도를 저버린 반칙행위가 너무 공공연하게 자행되고 있다. 시장에서나 심지어 민의의 전당에서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는 독선으로 남을 시기하고 모함하는 불공정사례가 너무 자주 일어나고 있다. 약육강식이 통하는 밀림에서도 생존법칙은 있는 법인데 법과 원칙을 지키는 정정당당한 승부게임은 실종된 지 오래다. 보편성과 합리성보다는 불법과 비합리적 폭력정서가 판치는 세상이 된 것이다. 소수의 큰 목소리가 마치 다수의 목소리인 양 과대포장되고 진실과 정의보다는 위선이 행세하고 소통보다는 단절이 지배하는 혼란과 혼돈의 세상이 된 것이다. 사람을 모함하고 죽음으로 몰아가는 악성 댓글이 그러하고, 광우병을 침소봉대하여 촛불 시위를 주도하며 공권력에 도전하는 무리가 그러하며, 가난한 사람의 호주머니를 노리는 고리사채업자의 강압과 공갈이 판치는 세상이 그러하다. 요즈음은 신문보기가 겁나는 세상이 되었다. 돈 몇 푼에 남편도 친구도 갈라서고 심지어는 자식과 아내와 부모 형제까지도 팽개치는 몰인정 사회가 된 것이다. ‘법과 원칙이 없는 무법천지’에서 폭력이 휘둘리는 세상에서 정직하고 법과 원칙을 준수하면서 살아갈 처세술은 바로 난득호도에 있는 것 같다. 그럼으로써 모난 돌이 되지 않는다고 본다. 모난 돌은 정을 맞기 마련이다. 바른 말을 잘하고 똑똑한 척을 많이 하는 사람은 모난 돌이 되어 반드시 적이 생기게 마련이고 질시의 대상이 된다. 모나지 않으려면 둥글게 살 수 밖에 없다. 두 사람 이상이 모이는 곳에서는 그 분위기를 잘 파악해서 기회를 포착하는 사람이 되어야 정을 맞지 않는다. 사람이 살다보면 총명하기도 멍청하기도 어렵지만 총명함에서 멍청함으로 바뀌기란 더욱 어렵다고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모나기보다는 약간 멍청한 척 하면서 둥글게 사는 것이 더 유리할 수도 있다는 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현명한 인생처세술임에 틀림이 없는 것 같다.
최종편집:2025-05-16 오후 01:43:55
최신뉴스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톡네이버블로그URL복사
이름 비밀번호
개인정보 유출, 권리침해, 욕설 및 특정지역 정치적 견해를 비하하는 내용을 게시할 경우 이용약관 및 관련 법률에 의해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유튜브페이스북포스트인스타제보
PDF 지면보기
오늘 주간 월간
출향인소식
제호 : 성주신문주소 : 경북 성주군 성주읍 성주읍3길 15 사업자등록번호 : 510-81-11658 등록(발행)일자 : 2002년 1월 4일
청소년보호책임자 : 최성고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경북 다-01245 개인정보관리책임자 : 최성고e-mail : sjnews1@naver.com
Tel : 054-933-5675 팩스 : 054-933-3161
Copyright 성주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