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향에서는 누구나 편지가 오기를 기다리는 마음이 같을 것이다. 만리타국 낯선 땅에서 외롭게 지내고 있을 때 편지를 받아 보는 기쁨이란 여간 큰 것이 아니다. 우리가 군대에 가 있는 동안에 위문편지를 받고 느끼는 그것과 비교가 안 될 만큼 큰 것이다.
1960년대 초 미국 유학시절에 벌어졌던 일이다. 눈이 내린 어느 날 오후에 강의를 끝내고 아파트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마침 우편차가 우리 아파트 앞에 서 있고, 키가 크고 건장한 우체부 아저씨가 무엇인가를 긴 줄에다 매어단 것을 들고 우리 우편함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그 긴 끄나풀 끝에 매달린 물건은 다름 아닌 고추장통이었다. 깡통에 담아서 부친 고추장통이 터져서 그만 밖으로 새어 나왔다. 그 독한(?) 고추장냄새를 견디기 어려웠던 우체부 아저씨가 궁리 끝에 그것을 긴 끈으로 묶어 끌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기어이 책임을 완수하고야 말겠다는 그 우체부 아저씨의 성실한 근무 자세는 눈물이 날만큼 감동스러운 것이었다.
그 고추장은 나와 같은 아파트에 입주한 박덕상이라는 물리학을 공부하는 학부학생에게 배달되는 것이었다. 미스터 박이 하도 김치와 고추장이 생각나서 로스엔젤레스에 사는 누님에게 부탁해서 보내온 것이었다.
우리가 흔히 보수성을 얘기 하지만 식성만큼 보수적인 것이 없는 것 같다. 다른 것은 다 바꿀 수 있어도 우리의 식성을 바꾸는 일은 그리 쉬운 것 같지 않다. 해외여행을 할 때도 일행 중 몇 사람은 꼭 고추장, 김치, 멸치, 라면 등 우리고유의 식품을 들고 다니면서 향수를 달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비행기 내 식사의 경우도 예외는 아닌 것 같다.
요즈음 장거리 여행을 하는 국적기에서는 기내식을 줄 때 고추장을 함께 주는 것은 예사이고 어떨 때는 김치가 나오기도 한다. 비즈니스석에서는 식사가 아예 비빔밥으로 나오는 경우도 있을 정도이니까.
나이가 들어 늙어 갈수록 사람은 누구나 어릴 때 먹던 식품을 더 간절하게 찾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 고유의 식품은 그것이 된장이든 고추장이든 김치이든 간에 다 품질이 우수하고 맛이 좋지만 냄새가 좀 심하게 나는 큰 결함을 가지고 있다.
역시 유학시절의 얘기다. 네 사람이 한방을 쓰는 기숙사에서 주중에 김치를 먹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다만 서로 합의를 하면 주말에 한 끼 정도 우리 고유의 식사를 하는 것은 서로 양해가 되었다. 그래서 우리 한국학생들끼리는 주말에 한 끼 정도 김치 먹을 기회를 가졌다.
그런데 간혹 데이트를 나갔다가 미국인 룸메이트가 좀 일찍 돌아오는 경우에는 방에 들어오자마자 환기가 필요하다며 방문을 있는대로 열어 제치는 일이 생겼다. 김치냄새가 그들에게는 그렇게 역겨운 것인가? 심지어 한국학생들도 제가 언제부터 미국사람이 되었다고 김치는 고약한 음식이라면서 안 먹는 작자도 있었으니까.
그런데 최근에 사스라는 병이 인류의 커다란 보건문제로 대두되었다. 이 독감에는 우리 김치가 특효인 것으로 판명이 되었다. 김치를 즐겨먹는 한국인은 사스에 대한 저항력이 강하다고 알려지면서 일본인과 중국인이 모두 김치를 즐겨먹는가 하면 일부 입맛이 까다로운 서구 사람들까지 김치를 찾는다고 한다.
고추장이 우리에게는 그렇게 맛이 좋은 음식이지만 미국 우체부에게는 혐오감을 주는 식품이라니 참 이상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지금도 고추장을 긴 끈에 매달아 끌고 들어오는 그 우체부의 모습을 떠올리면 입가에 웃음이 터지는 것을 참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