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에 이어 귀향해서 제일 급한 일은 허물어지고 노후한 종택을 보수하는 일이었다. 우리 집은 옛 어른들의 표현을 빌린다면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중용의 도(中庸之道)를 지킨 규모’였으나 지금은 건물 네 채가 무너지고 소실되었다. 공직을 마무리하기 3년 전부터 보수에 착수했으므로 연차적으로 완공이 가능했지만 없어진 네 채의 건물 복원은 나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했다. 국가재정에 의존하는 것도 지나친 욕심인 것 같아 집터에 자연석을 배치하여 정원을 가꾸고 안 대문채가 위치했던 자리엔 한 칸 조그마한 집을 지어 자혜당(慈惠堂)이라 이름하고 다음과 같은 기문(記文)으로 그 뜻을 새겼다. 우리 집 제택(第宅)은 사미당(四美堂) 할아버지께서 계획하시고 정헌공(定憲公) 할아버지 대에 완성되었으니 실로 삼대에 걸친 경영으로 이룩되었으나 지금은 건물 네 채가 도괴(倒壞) 또는 소실(燒失) 되었다. 어릴 적 이 안 대문채만 초가(草家)인 것이 기이하게 생각되어 어른분들께 여쭈어 보니 “이 세상에는 항상 어렵고 가난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자손들에게 일깨우기 위하여 초가로 세웠다”고 말씀하셨다. 이에 부조(父祖)의 밝고 깊으신 뜻을 자손들에게 전하여 가슴깊이 새겨 삼가 자혜당(慈惠堂)이라 이름 하였다. 이곳을 오르는 자손들은 선조의 간곡한 원려(遠慮)와 덕업(德業)을 가슴에 새겨주기 바란 다. 자혜당이란 이름에는 우리 가문을 복욱(馥郁)한 향기 넘치고 혁혁한 빛이 나게 해주신 선대 할머니에 대한 존모와 감사의 뜻이 실려 있다. 고난의 시기에 숭조상문(崇祖尙門)의 정신으로 인고를 기쁨으로 감내(堪耐)하면서 가문을 지켜주신 본생(本生) 선비와 아내의 지극한 정성과 희생을 기리고 전해야겠다는 나의 마음이 담겨있다. 어쩌면 불씨처럼 소중한 조상의 유훈과 덕업을 자손들에게 전해야겠다는 내 마음의 또 다른 표현인지도 모르겠다. 옛집의 구조와 기능은 현대인이 생활하기에 불편하기 짝이 없다. 특히 주방과 화장실은 구조와 위치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집의 외형을 훼손하지 않고 생활의 불편함이 없도록 내부를 개조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정원의 수목도 100년 후를 생각하며 심었으나 수종(樹種) 선택에 어려움이 많았다. 정성이 모자라면 당장 수목에 이상이 온다. 수목은 거름이나 수분을 먹고 자라는 것이 아니라 정성을 먹고 산다는 사실을 그때서야 알았다. 나로서는 세심한 배려와 정성을 다했지만 40여 년을 몸담고 살지 않아서 그런지 시행착오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최종편집:2025-05-16 오후 01:4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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