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종환(시인)
들길 가다 아름다운 꽃 한 송이 만나거든
거기 그냥 두고 보다 오너라
숲 속 지나다 어여쁜 새 한 마리 만나거든
나뭇잎 사이에 그냥 두고 오너라
네가 다 책임지지 못할
그들의 아름다운 운명 있나니
네가 끝까지 함께 할 수 없는
굽이굽이 그들의 세상 따로 있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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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이 아름다운 계절이다. 숲 속에서 먹이를 찾는 새들이 분주해지고 찬이슬이 내리면서 배추도 하루가 다르게 포기를 벌고 있다. 모든 것이 쇠락해 가는 듯하지만, 생명은 잠시도 그의 운동을 쉬지 않는다. 결국 우리는 생명체가 나고 죽는 현상의 순간순간을 보고 있는 셈이다. 새 한 마리, 꽃 한 포기를 사람의 눈으로만 바라볼 때 생명현상에 대한 사람의 간섭이 생겨나고 그것이 자연과 인간 스스로의 파괴로 이어진다는 것을 시인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시인은 말한다. "그들의 세상이 따로 있다"고. 그리하여 '책임지지 못할/ 그들의 아름다운 운명'에 간섭하지 말고 "거기 그냥 두고 보다 오너라" 신신당부하는 것이다.
짧지만 우리에게 삶과 생명에 대한 생각을 갖게 하는 시다.
(배창환·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