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면 눈시울이
이다은(학생)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하면
슬레이트 지붕 끝에서 뚝뚝 떨어지는
빗물, 그 빗물 받아 빨랫물로 쓰려던
할매 생각이 나는 것
―할매, 그거 석횟물이라서 쓰면 안돼요
몸서리를 치니까 결국엔
받아놓은 빗물 감나무 밑에 뿌리던
할매 생각이 나는 것
감나무, 하니까 감 따던 그 생각도 나는 것
할배가 주워온
교회 뒷산의 버려진 대나무 한 그루,
그 노랗게 뜬 대나무 끝에 철사로
양파주머니를 동여매서 감 따라고 주던
할매 생각이 나는 것
아직도 우리 집 어딘가 담벼락엔가 서 있을
대나무 감채가 생각나는 것
아직도 비가 오면 빗물 뚝뚝 떨어지던
빨간 다라이 생각이 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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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다. 가을 감은 마을을 마을답게 만든다. 빈집이 여기저기 널려 있는 농촌 마을에도 감나무는 주인 없는 빈 마당에서 얼굴을 붉히면서 세월을 견딘다. 감나무에게도 좋은 날이 있다면 아이들이 할아버지와 함께 감채를 들고 와서 제가 여름 뙤약볕을 받고 밤이슬 속에서 눈을 뜨며 안으로 익혀 온 붉은 감알을 또옥 똑, 따 주는 날일 것이다.
이 시는 할아버지가 주워오신 대나무 끝에다 철사로 양파주머니를 묶어 감채를 만들어주시던 할머니를 생각하며 쓴 시다. 비가 올 때 지난날을 떠올려 시상을 차분하게 이끌어내는 솜씨도 놀랍거니와, 각 연을 반복하여 같은 시어로 인상깊게 끝맺는 솜씨가 마치 상쾌한 가을바람을 맞는 느낌을 준다. 읽을수록 몇 번이고 자꾸 읽어보고 싶은 아름다운 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