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문학회 동인들이 매월 개최하는 6월 문학기행에 동참했다. 이번 달은 수락산 천상병시인의 기념공원을 답사하는 행사였다. 나는 천상병시인과는 대학시절의 친구여서 그와 얽힌 옛 추억을 더듬으며 즐거운 마음으로 갔다. 그냥가기도 그에 대한 예의가 아닌 듯하여 평소 천 시인이 그토록 즐겨하던 술 한 병을 옆구리에 차고 갔다. 아마도 그는 나보다 내가 가져간 술을 더 반길런지 모를 일이다. 그러니까 그날, 2009년 6월 29일 9시 용산역에서 생활문학회 이병욱 회장을 만나 함께 갔다. 전철 1호선을 타고 도봉산역에서 하차 7호선을 갈아타고 수락산역에 정시에 도착했다. 답사팀은 수락산역에 11시까지 모이기로 되어 있지만 일행이 다 모일 때까지 약 20분을 더 기다리며 잡담을 즐겼다. 수락산은 지난날(1962. 7) 경기도 문화과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문교부 최낙구 사회교육과장과 이곳 사찰을 방문한 적이 있어 친근감이 되살아났다. 주지스님의 안내로 맑은 개울물에 발을 담그고 하루를 청유한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세속을 벗어나 마치 선경에서 풍류를 즐기는 신선놀음 같기도 했다. 불교에 대한 설명도 듣고 산수경관이 빼어난 수락산에 절을 모신 내력하며 차도 마시고 곡차도 즐겼다. 원로시인 인소리 고문을 비롯하여 임원들과 동참회원 20여명이 다 모여 걸어서 20분거리에 있는 천상병시인 기념공원을 향하여 걸음을 옮겼다. 공원이라야 좁은 산골마을 길섶에 조성된 팔각정과 시비가 자리잡고 있는 조촐한 공간이다. 이 시비공원과 계곡길을 따라 등산로에 천상병 싯길이 조성되어 곳곳에 시화판이 전시되어 있었다. 천상병 시공원을 조성한 노원구청장은 수필문학가인지라 이런 시인 예찬사업을 하는 갸륵한 행정관의 면모가 더욱 돋보였다. 옆 동네인 의정부시에서는 천시인을 의정부 사람이라고 연고를 주장하며 천상병 문학축제 등 추모행사를 한단다. 영웅은 죽어서 말한다더니 천시인은 죽어서 제대로 시인대접을 받는 걸 보니 사람팔자 속단할 일 못 된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천시인은 귀천을 보류하고 이승 환생을 모색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느낌이 든다. 자기가 살던 고장에서 그를 찬양해주고 아직도 사랑하는 부인이 찻집을 잘 경영하고 있어 좋아하는 막걸리 대접도 여전할 테니 왜 지상으로 귀환하고 싶지 않겠느냐 말이다. 처절하리만큼 철저한 거지시인으로 이름 날리던 지옥같은 그의 일생은 말년에 부인을 만나 비로소 행복을 찾게 된 것이다. 그의 시 ‘행복’을 음미해 본다. 나는 세계에서 제일 행복한 사나이다. 아내가 찻집을 경영해서 생활의 걱정이 없고 대학을 다녔으니 배움의 부족도 없고 시인이니 명예욕도 충분하고 예쁜 아내니 여자 생각도 없고 아이가 없으니 뒤를 걱정할 필요도 없고 집도 있으니 얼마나 편안한가 막걸리를 좋아하는데 아내가 사다주니 무슨 불평이 있겠는가 더구나 하나님을 굳게 믿으니 이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분이 나의 빽이니 무슨 불행이 온단 말인가 그는 이 행복한 한 때를 위하여 평생을 인고하며 살았는지 모른다. 드디어 그의 이 ‘평범한 행복’은 일생동안의 수모와 고통과 처절한 통한을 한방에 날려 버리고 지상생활을 아름다운 소풍으로 바꿔버린 귀천송(歸天頌)을 낳았다. 위트 있고 재주 넘치는 그의 많은 작품은 이제 더 논할 필요가 없다. 천상병하면 ‘행복’과 ‘귀천’이 그의 대표작품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 세상에 문인묵객의 기담 일화가 많지만은 천시인 이야말로 우리문단에 특출한 삶의 모습을 보여준 작가이다. 그는 절절한 행복을 느낄 때 시 ‘행복’을 노래했고 뒤이어 귀천을 노래하며 우화승천한 시인으로서 자기철학과 줏대를 가지고 살아온 기인임에 틀림없다 하겠다. 가난은 죄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귀천’에서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그리고 이 세상 소풍을 끝내는 날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라고 읊었다. 많은 사람들이 애송하는 이 시 구절을 통해 기상천외한 발상으로 천시인은 스스로를 시성(詩聖)의 경지로 끌어 올렸다고 할 것이다. 이렇듯 삶에 심취한 그의 행복은 그 이전의 모든 번뇌와 고통의 필름을 하얗게 지워버리고 아름다운 행복으로 전환할 수 있는 초능력을 빚어 내지 않았을까. 삶이 아름답게 느껴지고 행복하게 느껴짐은 스스로 만족할 줄 알기 때문이다. 지족(知足)은 도통한 성인의 몫이기에 시성이라 불러보는 것이다. 수락산 계곡의 오솔길에 전시된 시화판은 우람한 대자연 속에 어울 처절한 목소리로 읊고 있는 천시인의 모습을 떠 올리기에 족했다. 여보게 천시인! 오랜만에 한잔 하세나, 내 술 한병 가져 왔네. 역시 이승이 그리웠겠지. 이 땅의 많은 문학 동료뿐만 아니라 국민 모두가 자네를 기억하는 것은 그 혹독한 인고의 열매를 행복으로 승화시킨데 있지 아니하겠는가. 참으로 훌륭하고 부러우이. 천재시인 천상병의 영원한 행복을 기원하네. 40년전 옛날 이곳 주지스님과 경관을 즐기던 계곡이 자네의 싯길이 되어있어 금석지감이 나네만 나에게는 참으로 추억과 감동의 문학기행이 되었다네. 또 만나세.
최종편집:2025-05-16 오후 01:43:55
최신뉴스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톡네이버블로그URL복사
이름 비밀번호
개인정보 유출, 권리침해, 욕설 및 특정지역 정치적 견해를 비하하는 내용을 게시할 경우 이용약관 및 관련 법률에 의해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유튜브페이스북포스트인스타제보
PDF 지면보기
오늘 주간 월간
출향인소식
제호 : 성주신문주소 : 경북 성주군 성주읍 성주읍3길 15 사업자등록번호 : 510-81-11658 등록(발행)일자 : 2002년 1월 4일
청소년보호책임자 : 최성고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경북 다-01245 개인정보관리책임자 : 최성고e-mail : sjnews1@naver.com
Tel : 054-933-5675 팩스 : 054-933-3161
Copyright 성주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