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와 친분이 있는 k씨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우리 아들이 KIST 대학원에서 항공우주공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석사학위를 취득하여 국방과학연구소 연구원 채용시험에 응시하여 합격 통지서를 받고 면접을 봤는데 아버지가 일본에서 출생해서 떨어졌다고 하더구만. 내 출생지가 일본으로 돼 있어 그 이유로 면접에서 떨어졌다니 아마 나를 친일파로 아는 것 같아 정말 어이가 없네” 그후 k씨의 아들은 대기업에 들어가 지금 중견 간부로 근무하고 있다.
k씨의 아들이 면접에 패스할 수 없는 이유가 그의 아버지가 일본에서 출생했기 때문이라고 하니 필자도 좀처럼 납득할 수가 없었다. k씨는 1941년생으로 우리나라가 해방이 되던 1945년에는 나이가 겨우 4살이었다. 4살짜리 어린아이가 무엇을 안다고 친일파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일부러 면접에서 떨어뜨리려고 작정을 해서인지는 모르지만 지금 우리 사회에는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일들이 왕왕 일어나고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아들 박지만씨가 일제 강점기 식민지배에 협력한 인사 4,000여 명의 행적을 담은 친일파 인명사전에 아버지 이름을 싣지 말라며 지난달 26일 법원에 게재금치가처분신청을 냈다고 한다. 민족문제연구소가 출간을 진행하고 있는 친일인명사전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롯하여 장면 전 국무총리, 현상윤 고려대학 총장, 음악가 안익태, 소설가 이광수, 최남선, 언론인 장지연씨 등 사회지도층 인사가 다수 포함돼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일제 강점기 일본군 위관급 이상 장교와 오장급 이상 헌병으로 재직한 사람과 친일행위가 뚜렷한 일반군인을 친일파로 기록하고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40년 4월 만주신경군관학교에 들어간 뒤 1942년 10월 일본 육군사관학교 3학년에 편입해 1944년 만주군 소위로 임관한 사실 때문에 친일파로 규정됐다고 한다. 이에 따라 박지만씨는 만주군이 독립군을 괴롭혔는지 정확한 증거도 없는 상황에서 고인과 유족의 명예를 실추시켰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방식으로 친일파를 분류한다면 일제식민지 당시 나이가 스무살 이상인 성인 중에 친일파가 아닌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는지 묻고 싶다. 강제로 공출(곡물)을 받친 농민도 친일파라야 맞고 일본에 세금을 바친 상인도 친일파라야 맞다. 더구나 일제식민통치 하에서 공부를 하자면 일본인이 경영하는 학교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데 일본학교를 나와 일본사회에서 활동했다고 해서 모두 친일파로 매도하는 것은 개가 들어도 웃을 일이다. 물론 이완용처럼 을사보호조약을 채결하여 나라를 송두리째 일본에 넘긴 사람이라면 친일파로 단죄를 받아야 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그런 수준이 아닌 일본 교육기관에서 공부를 하고 일본 사회에서 활동을 했다고 해서 친일파로 몰아부치는 것은 옳지 않다. 더구나 문학이나 음악 등 창작물까지 친일파 잣대를 들이댄다면 일본사회에는 먹고 살지 말고 죽어라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말로는 국민화합을 도모한다면서 뒤로는 이런 식으로 국민의 화합을 저해하는 일은 옳지 않다.
지금 우리에게는 친일파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친북파이다. 호시탐탐 적화야욕을 노리는 북한에 동조하고 북한의 노선을 따르는 것은 국가안보상 심각한 문제다. 지금 북한은 핵무기를 가질 수 있는 수준에 와 있다고 공언하고 있다. 이것은 바로 남한을 공격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말로 해석된다.
이런 시점에서 친북파에 대해서는 입도 열지 않으면서 친일파로 국민화해를 분해시키는 것은 옳지 않다. 물론 일제식민지 통치 하에서 일본에 협조하기 위해 선량한 국민을 괴롭힌 사람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어디까지 친일파인지 구체적이고도 명확한 행위와 기준이 설정돼야 한다. ‘막연하게 친일행위가 뚜렷한’ 이라고 할 것이 아니라 ‘어떤 직책으로 어디서 무슨 일을 얼마만큼 했다’는 구체적인 내용이 밝혀져야 한다.
특히 박정희 전 대통령은 경제부흥을 일으킨 혁혁한 업적도 있지 않는가. 그런 공로는 인정하지 않고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나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친일파로 매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필자의 선친과 친분이 있는 y씨는 먹고 살기 위해 일본경찰서 고등계 형사로 들어가 압록강 수풍발전소 건설현장 감독으로 근무했다. 당시 수풍발전소 건설현장에서는 많은 조선인 노동자들이 강제로 동원되고 있었다. 그런데 y씨는 같이 근무하는 일본인 감독을 댐 아래로 떠밀어 쳐넣고는 콘크리트로 덮어 버렸다고 한다. 그리고 조선인 노동자와 함께 압록강을 넘어 만주로 도주했다고 한다. 이런 경우 y씨는 직책으로 보면 분명히 친일파지만 그의 행적을 보면 친일파가 아니다. 따라서 어디까지 친일파인지 구체적인 행적과 기준 마련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