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은 누구에게나 있다. 족보에는 대개 본명을 포함해 아명 자 호 등이 있어 너댓 개가 되기 일쑤이다. 우선 나이가 들면 백두이더라도 자(字)를 짓고, 이름을 부르는 것이 불경스러울 때 자를 쓰며 또 급제하고 벼슬을 하거나 사대부에 이르면 아호가 붙는다. 현대에 와서는 이른바 명사가 되면 아호를 짓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호는 그 사람의 특징적인 것이나 특별히 선호하는 것이 있으면 동료들 사이에서 부르다 보면 호가 되고 본인이 지어 놓고 불러 달라는 경우, 심취하는 학문이나 사상에 따라 짓는 경우, 출신지명, 문도들이 스승을 숭앙하며 짓는 등 실로 다양하다. 나의 10代 선조의 아호는 竹軒이시다. 입신보다는 위기지학과 학문궁구에 뜻을 두어 대나무같이 의의함과 세한에도 변치 않는 학자적 절개를 좌우명으로 삼는다고 竹軒이라 자호했다고 한다. 작은 정자 지어 하늘과 별을 보고 처마 끝 일렁이는 대나무 잎새 소리와 베갯머리에 흐르는 물소리 들으며 초동어부의 소리 책상 가까이 들리고 한가로운 구름과 서경을 벗함이 삼공불환이라 했으니 이 아니 고결한 인품이 아닐 것인가! 초대 대통령 이승만에게 송죽 같이 변함없이 충의를 다 하겠다는 인사가 이승만의 晩자에 松자를 붙여 晩松이라 호를 지었음은 다 아는 사실이다. 백범 김구선생은 지금도 우리 국민 모두가 추앙하고 있는 위대한 인물이지만 생전에 본인 호에 대해서는 아주 겸손한 뜻의 白자와 凡夫의 凡자를 땄다는 말을 들은바 있다. 청록파 시인 박목월은, 달·산·흙·들찔레 등 대자연이 시어의 주류가 되어 본명 영종을 두고 木月이라 스스로 불렀다 한다. 걸음거리 모습이 좀 남다르다고 횡보(橫步)가 호가 된 소설가 염상섭이 있고, 문인 김동환은 눈이 파랗다고 해서 지인들이 서양인이라 부르다 보니 파인(巴人)이 호가 되었고 시인 오상순은 줄담배 즉 체인 스모커여서 공초가 되었고, 모윤숙은 연인과 관련하여 고갯마루에 흘러가는 구름이 되겠다고 하여 영운이 되었다는 작호의 뒷얘기가 있다. 넓게 보면 이름 짓는 것도 호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 근현대의 대선승 성철스님이 입산수도 중일 때 속가의 부인이 절손이나 면하려 성철스님을 찾았지만 완강히 거부하여 뜻을 이루지 못했다. 세 번째는, 스님이 산꼭대기로 피하며 돌덩이를 아래 굴리자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애원하니 끝내는 굴복하고 말았다. 그래서 태어난 분이 불필(不必)스님이다. 불필요한 것은 출생 그 자체인지, 세속의 법도인지는 모르겠으나 작명의 뒷얘기는 어쩐지 좀 애연하다. 신라 때 너무 가난하여 옷을 백 군데나 기워 입었다는 백결선생의 얘기는 유명하다. 5세에 중용, 대학을 통달한 그의 재주를 경탄하여 당시 집현전 학사 최치운(강릉 최氏·나의 7대조 직제학 崔興孝공이 이 사람의 비문을 썼다.)이 이름을 김시습이라 지어주었다고 하고, 아예 ‘5세’라는 이름도 있었다고도 한다. 조선시대 화가 하면 혜원 신윤복과 단원 김홍도를 든다. 그런데 비슷한 시대의 화원 장승업은 “내가 두 원(혜원·단원)보다 못한 게 있느냐, 나도 원이다”라고 자칭하게 되니 오원이 호가 되었다는 얘기가 전한다. 작명도 작호와 다르지 않다. 조선조 충절의 표상 성삼문은 출생 시 “낳았느냐?”라는 소리가 공중에서 세 번 들렸다고 하여 三問이 되었다 함은 세상이 다 아는 얘기다. 어릴 때 천연두를 앓은 흔적이 눈썹에 남아 있어 三眉라고 별호를 지은 정약용도 있다. 현대에 와서 한 때 한국을 움직였던 정치인 三金은 영문이니셜이 호가 되는 시대 변천의 한 단면을 보게도 한다. 세월 따라 변하는 것이 어디 한 둘일까만 호에도 예외는 없다. 이즈음 아주 일괄적으로 지어서 도반이나 조직원들끼리 부르게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는데 내게는 그나마도 없다. 유유상종이라 하지만 그럴 사람도 없으니 남이 불러줄 호란 없을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내게도 궁탈(弓脫)이라는 호 비슷한 게 있긴 있다. 하긴 호가 별 것 인가? 남이 희롱조이거나 애칭으로 부르다 보면 그것이 바로 호가 되기도 하지만 내게는 그럴만한 사람도 없다는 말이다. 나도 어거지로라도 호를 짓자면 있기는 하다. 황하천리일곡이라 하여 천리마다 한 번씩 굽어 흐른다는 만절필동이라는 성어가 그것이다. 그렇게 굴절이 많은 황하도 필경에는 동쪽으로 흐른다는 고사성어를 죽헌 선조 문집에서 읽었기 때문이다. 만절과 필동! 이 얼마나 절묘한 조합인가? 그래서 ‘만절’로 한다면 그야말로 견강부회가 되는 것일까, 궤변이 되는 것일까? 만절! 명성 높은 선조 덕분에, 그리고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 때문에 의미있는 호가 되지 않을까 한다. 내가 만일 저명인사가 되었을 때는 제발 지음인들이 만절로 불러주면 더 좋은 호는 없을 것이다. 참 억지도 이 정도면….
최종편집:2025-05-16 오후 01:4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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