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은 어려서는 어머니의 젖을 빨지만, 커서는 아버지의 젖을 빤다’는 영국의 격언이 떠오릅니다. 어머니에 대한 사모의 정은 호수의 잔잔한 물결같이 언제나 내 가슴속에 일렁이고 있었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1년의 세월이 흐른 오늘에서야 아버지를 향한 망극한 그리움과 사모의 정이 노도와 같이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소용돌이치면서 감당할 수 없는 통한의 아픔을 안겨줍니다.
유년기의 나에게 아버지는 무섭고 두려운 존재로 각인되어 있었습니다.
“하나 자식 오냐 오냐 하면 못 쓸 인간이 된다.”하시며 잘못을 저지르면 가혹하리만큼 매로 다스렸으며 다정하게 머리 한 번 쓰다듬어 주는 일이 없었던 아버지입니다. 하나 아들 매 맞는 것이 안쓰러워 매를 거두라고 애원하는 어머니께 “어멈이 감싸고 어루만지기만 하니 자식을 그르친다.”며 어머니에게까지 불호령을 내려, 어머님은 흐느끼고 나는 오들오들 떨면서 저주와 원망의 눈초리로 아버지를 바라보았습니다.
아버지의 뜻과 생각은 늘 내가 미칠 수 없는 멀고 높고 깊은 곳에 있었으며, 나를 깨우치고 이끌어주시는 것은 교육적 의도에서였으나 나는 아버지의 깊고 원대한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엉뚱하게도 반항과 증오심만이 싹 튼 듯 하던 어린 시절이 있었습니다.
회초리로 닦달이 끝나면 어김없이 뇌이시던 “자식이 미워서 매를 드는 부모는 없다. 올바른 사람이 되라는 채찍이다.”는 그 말씀이 법관의 선고문 같이 새겨졌습니다. 이제는 채찍과 걱정 어린 살뜰한 인도의 말씀을 들을 수 없어 천애고아가 된 외로움에 목놓아 울고 싶고, 아버지가 사무치게 그립습니다. 소박하고 조그마한 아버지의 바람과 기대를 하나도 채워드리지 못하고 청개구리로 살아온 어리석고 못난 아들의 회한의 몸부림입니다.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아도, 다정하게 손 한 번 잡아주지 않았어도 아버지는 나를 지켜주는 철벽요새였습니다. 소중한 당신의 삶을 회생하며 못난 이 아들을 위하여 흘리신 피와 땀과 눈물로 결집된 지고지순한 사랑은 이 세상 그 무엇으로도 보답할 수 없다는 기막힌 현실 앞에 다만 엎드려 통곡할 뿐입니다.
“부모가 되어 봐야 부모 심정 안다.”는 표현은 부모의 심정을 헤아리지 못하는 자식에 대한 이 세상 부모들의 절규입니다. 아들은 태어나면서 당연히 되는 것이지만 참된 아버지가 되려면 고독하고 눈물겨운 세파와의 싸움과 함께 인간성과 감성을 가꾸어야 합니다. 자신이 살아 온 방식 때문에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기에 모든 것을 염려하고 배려해야 합니다. 나의 아버지는 세속의 명예나 부는 누리지 못했으며, 학문을 성취하지도 못하셨지만 바르고 올곧게 살아가는 삶을 보여주신 참되고 당당하고 떳떳한 분이었습니다.
6.25사변이 발발한 그 해에 중학교를 입학했습니다. 아버지께서 그 당시 귀한 세이코 손목시계를 입학 기념으로 사주시면서 “이제는 너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할 나이가 되었으니 모든 것을 알아서 해라.”고 말씀하신 후엔 걱정하시거나 꾸중을 하신 적은 있었지만 매를 드신 적은 없었습니다. 무관심에 가까울 만큼 나의 자율과 판단에 맡겼습니다. 그러나 생각이 깊지 못하고 어리석은 나는 아버지의 간섭과 속박에서 벗어났다는 해방감에 도취되어 방종과 무절제한 생활에 익숙해졌습니다. 아버지의 사랑과 기대가 담겨있는 입학기념 시계는 1년 후 팔아서 하모니카를 사고 남은 돈은 유흥비로 써버렸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남자는 돈을 잘 쓸 줄 알아야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돈 씀씀이가 헤프고 낭비벽이 심한 나를 한 번도 나무라신 기억이 없습니다. 나는 그 말씀의 뜻을 엉뚱하게 남자는 쩨쩨하지 않고 배포 있게 돈을 쓸 줄 알아야 된다는 가르침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결과적으로 돈이란 쓰면 나오는 것이란 요행과 착각 속에서 절제 없는 낭비에 따른 회한과 다짐 사이를 자맥질하며 살아가는 고질병을 앓았습니다. 스스로 깨닫고 행동하기를 기다리시는 아버지의 깊은 뜻을 망각한 어리석고 못난 아들이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당신의 피와 땀으로 이룩한 전 재산을 외아들과 함께 종가에 바쳤습니다. 당신 소유의 집 한 칸, 땅 한 평 없이 모든 것을 바쳤습니다. 재물은, 뜻이 있는 곳에 쓸 때에는 주저하거나 인색하지 않아야 된다는 아버지의 참 가르침을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아버지가 당부하신 대로 둘째 놈 진근이를 승중손으로 생가의 가통을 잇게 하였지만 어쩔 수 없이 한 대가 빠지는 빠곰이 집이 되었다는 사실이 가슴 아픕니다. 생가를 가꾸고 받드는데 정성을 다 하겠습니다.
아버지가 나에게 일깨워주신 가장 소중한 유산은 ‘정직과 명분’입니다. 큰 잘못을 저질러도 사실대로 아뢰고 뉘우치고, 다짐하면 봄볕에 눈 녹듯 스스럼없이 용서해 주셨지만, 조그마한 잘못도 변명하거나 거짓말을 하면 사정없이 회초리로 닥달하셨기 때문에 정직한 것이 편하고 두려움 없이 살아가는 방편임을 알았습니다. 명분이 서지 않는 행동을 했을 때 아버지의 걱정과 노여움은 온 가족을 불안에 떨게 했습니다. 잔재주를 모르고 표리없이 곧이곧대로 살아가는 마음가짐과 넘어서는 안 될 한계를 분명히 인식하고 행동하는 몸가짐은 가볍고, 고집스럽고, 거만하다는 엉뚱한 오해와 질타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물질만능의 타락하고 퇴폐한 이 시대를 살아오면서 우뚝이 서 있을 수 있는 버팀목이 되었습니다.
2001년 10월 공수래공수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