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형성을 돌아보다
별 고을 성주의 동북 관문지역에 해당하는 마을이 월항면 ‘유월1리’다. 면소재지에서 왜관으로 이어진 33번 국도를 따라 가다보면 나오는 칠곡군과의 경계에 위치해 있다.
유월(柳月)이라는 명칭은 2리 유촌((柳村) 마을의 유(柳)자와 1리 월암(月岩) 마을의 월(月)자를 따서 지어진 것으로, 1리의 자연마을로는 월암·월곡·새마을이 있다.
‘월암(月岩)’이 바로 군계에 위치한 마을로, 33번 국도의 고갯마루를 달암티(표고 130m)라 하고 그 남쪽의 산봉을 달암산(月岩山, 304m)이라 했다. 선조 때 대구에서 경주인 최천강(崔天綱)이 처음 마을을 개척한 후 그 후손이 살고 있으며 해주오씨와 성주인 이구(李龜)의 후손이 살고 있다.
처음 마을에 들어올 당시 마을 뒷산에 달 모양의 바위가 많다 하여 달 월(月)자와 바위 암(岩)자를 더해 월암이라고 불렀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또한 이 바위 위로 달이 떠오른다 하여 달이 뜨는 바위라는 의미로 월암이라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 월암 마을과 마주보고 있는 마을이 ‘월곡(月谷)’으로, 월암재 아래 국도의 약 300m에 남향해 있다. 광산인 만만(晩萬) 노계종(盧繼宗)이 인조 때 상주에서 이곳에 입향해 학문과 명망을 펴고 안착했고, 그 후손들이 살고 있는 광산 노씨 집성촌이다. 이후 1857년(철종 8)에 그를 추모하기 위해 세운 재실(齋室)이 바로 월곡 마을에 있는 경목재(敬睦齋)이다.
월곡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유는 달이 뜨면 이 마을을 바로 비추게 되는데, 그 경관이 일품이어서 달 월(月)자와 고을 곡(谷)자를 더해 이름 붙인 것이라고 전해진다.
유월1리의 자연 마을 중 가장 늦게 생성된 곳이 ‘새마을’로, 그 이름 역시 새로 생성됐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것이다. 유월2리 유촌 마을의 남쪽에 위치해 있으며 덕암서원이 소재해 있다.
■우리 자랑거리 들어보실래요
유월1리 주민들의 가장 큰 자랑거리는 경북문화재자료 제286호인 덕암서원(德巖書院)이다.
경상북도 유림들이 유학자 삼익재 이천배·백천 이천봉·학가재 이주를 존경하고 그리워 해 16세기 후반 덕암사를 창건했다. 이들 세 인물은 형제 숙질 사이로 한강 정구와 여헌 장현광의 학통을 이은 유현이었다. 이들의 학덕과 생애는 한강·여헌 선생의 문집과 문인록에 상세히 기록돼 있다.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됐다가 1876년 덕암서당으로 중건됐고 1928년 중수했다.
1998년 정부와 경상북도의 지원을 받아 묘우, 내삼문, 동·서재 등을 건립하고 이듬해 덕암서원으로 개칭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서원 관리인 이동식(55, 유기농 참외 등 재배)씨는 “서원 뒤편의 소나무숲은 지자체에서 우량수 보호림으로 관리해 장관을 이루는 등 역사·문화적 가치에 쾌적한 환경까지 잘 조화돼 있다”고 소개했다. 이어 “지금은 주로 문화에 관심을 가진 이들과 인근 초등학생의 소풍 장소로 이용되고 있다”며 “성주8경에 속한 세종대왕자태실과 한개마을과 인접했음을 고려할 때 연계 관광코스로의 발전이 주목된다”고 기대했다.
■우리 고민 들어보실래요
참외의 고장에 속해 있기에 주 작목은 역시 참외로, 대다수 농촌 마을이 그러하듯이 이 마을 역시 고령화로 노인 인구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하지만 평생을 하우스 안에서 참외농사로 땀 흘린 어르신들이 편히 지낼 수 있는 여건은 부족해 문제다.
유월1리 안에는 3개의 자연부락이 있는데 월암을 제외하고는 쉼터인 마을회관이나 난방비 지원 등이 뒤따르지 못해 불만이다.
일례로 월곡 마을의 경우 부지가 없어 제대로 된 마을회관(경로당)조차 마련하지 못하고 컨테이너에서 지내고 있고, 그렇다보니 여름이나 겨울철 냉난방비 지원이 일절 이뤄지지 않아 고스란히 자부담으로 돌아오다 보니 어려움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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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취재에 협조해 주신 유월1리 박원일 이장(45), 이동식(55) 덕암서원 관리인과 박추자(87), 이금옥(87), 김삼순(78), 송용선(78), 이갑선(75), 이용기(73), 조태선(72), 이태분(71), 전금분(70), 나순연(69), 유상천(62), 이점옥(60) 어르신을 비롯해 도움을 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