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연말에 국제한자진흥협회의 초청으로 서울에서 열린 제9회 국제한자문화학술대회에 참가할 기회가 있었다.
이번 회는 한국, 일본, 중국, 대만 등 한자문화권 나라의 교수·학자들이 모여 상호 문화교류와 공통상용한자를 선정하기 위한 자리였다.
한국에서 한자가 국자(國字)의 일부라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현재 우리말 어휘의 70∼80%가 한자어이고, 삼국시대 이전부터 사용해 왔다는 유구한 역사와 고유의 문자음을 지니고 있으며 대부분의 고(古) 문헌이 국한 혼용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그 근거이다.
그러나 한국의 지나친 한글전용 교육이 한자 문맹의 비율을 높였다는 사실 또한 많은 논자들이 지적한 바다. 한자를 모르면 우리말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전국 한자교육 추진 총연합회 진태하 이사장은 “지난 반세기 동안 한자교육을 등한시 한 결과 대부분 젊은이들이 반문맹이 되었다”고 했다.
현재 전국 도서관의 많은 서적들 중에 한글로만 쓰인 책은 근 5%도 되지 않는데 나머지 95%는 학생들이 읽을 수가 없어 그대로 저장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동양문화의 연원을 고찰하거나 우리 문화의 정수를 연구함에 있어서는 한자에 대한 이해가 그 기본이 되고 있다.
한자는 오늘날 중국만의 문자가 아니라 지구상 인구의 1/3을 차지하는 한자문화권(한·중·일·대) 공유의 문자다.
196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한글전용 정책이 강화되면서 한자 사용이 심히 위축되었다.
그 결과 20세기에 이르러 서적을 비롯한 대부분의 출판인쇄 매체는 한글 전용으로 되었다. 따라서 60∼70대 이상의 노인층을 제외한다면 한자를 읽고 쓸 수 있는 사람은 지극히 제한된 현실이 되었다.
한자교육에 있어서 아동초기교육이 필요하고 중요하다는 것이 많은 학자들의 공동의견이었다.
지금 초·중·고 학생들은 물론 대학생까지도 한자가 섞인 책은 읽지 못하고 또 한글로만 된 책은 읽어도 그 뜻을 잘 모르는 심각한 실정이다.
한자교육은 단순히 문자교육이 아니라 인성교육의 바탕이며 전통문화 계승의 매개체이다. 최근 한국의 역대 국무총리 전원 21명이 정부에 ‘초등학교 한자교육의 실시’를 촉구하는 건의서에 서명했다고 한다.
한자는 한자문화권 민족이 수천년동안 사용해 온 공통문자이며 다른 표음문자에 비하여 가장 우월한 표의문자이다. 현재 우리와 가장 가까이 인접하고 있는 중국, 일본, 대만 등에서는 여전히 한자로서 그들의 문화를 발전 유지하고 있다.
우리가 한자 한문을 익혀 언어생활에 활용해 한자문장을 독해할 수 있는 기본적인 능력을 기르고 선인들의 삶과 지혜를 이해하여 전통문화를 계승 발전시켜 나간다면 주변 한자문화권 내에서의 상호이해와 교류를 촉진시키는 토대가 될 수 있다.
중국의 부상에 대비해 미국에서도 중국어 교육을 적극 실시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한글만 교육하는 것은 고립을 자초하는 바보스런 교육정책이 아닌가 한다.
우리 성주군은 예로부터 선비 및 인물의 고장으로 불리며 인성에 대한 자부심을 품고 온 고장이 아닌가!
아직도 우리는 희망이 있다. 불씨가 꺼지기 전에 다같이 노력만 한다면 이런 문화 위기를 잘 극복해 나갈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