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사거리 국제이발관은
거창한 이름하곤 상관없이
실내장식 따위야 그저 읍내급이다
푸쉬킨의 오래된 시 구절이나
돼지 그림 대신
안주인의 처녀 적 솜씨인 듯한
빛바랜 십자수 안의 사슴 두 마리가
들어오는 손님마다 바라본다
마음도 심란한 날 국제이발관에 가면
의자에 앉은 나를 중심으로
이발사 김씨는 콤파스가 되어
좌우로 돌며 동그라미를 그린다
모노륨 바닥이 닳아서 생긴
이발사 김씨의 둥근 세계
그 안에서 둥근 빵을 생각하고
둥근 둥지를 생각하고
세월의 깊이를 헤아려보다가
나도 문득 둥글어지고 싶어진다
이발사 김씨가 다시 원을 그리며
웃자란 머리카락 잘라내는 동안
나도 조용히 눈감고
머리 속 봉두난발을 잘라낸다
어둡고 쓸쓸한 날 국제이발관에 가면
몸도 마음도 환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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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이발관은 도회지나 농촌이나 풍경이 비슷하다. 동네 이발관에도 액자는 한 장씩 붙어있게 마련인데, 그림은 주로 돼지 그림이고 시는 푸쉬킨의 '삶이 너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로 이어지는 '삶'이란 시다. 돼지는 아마도 현실에의 '복'
을 비는 신앙의 일종이었을 것이고 '삶'은 팍팍한 삶을 속는 기분으로 살더라도 희망만은 잃지 말자는 위안이었을 터이다. 이발사 김씨의 이발관에는 그런 것은 이미 낡은 풍경이 되고 없고 좀 '고상한' 십자수 사슴 두 마리가 산다. 사연이야 어찌 되었든 국제이발관은 김씨의 세계이다. 그것이 시인을 편하게 해 준다. 세상에 자신의 생업이 다른 사람에게 기쁨을 주고 마음을 환하게 해 주는 일이 그리 많지 않음을 생각할 때, 김씨는 참 좋은 이웃이고 샘물 같은 사람이 틀림없다. 정든 구멍가게와 같은 동네 이발관이 언제까지 우리 곁에 살아남을 수 있을까.
(배창환·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