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괘종시계가 9시를 친다. 벌써 며칠째 하루 한 끼밖에 못 먹고 있는 김형규 씨는 배고프다고 울며 보채는 아이를 겨우 달래어 재워놓고 피골이 상접한 아내와 텔레비전 앞에 앉아서 9시 저녁 뉴스를 본다. 행여 오늘은 정부에서 무슨 타개책을 발표하지 않을까, 막연한 기대감을 갖고서 말이다. 한 가마당 50만원씩에 들어오던 수입쌀이 끊어진지 벌써 두 달이나 되었다. 몇 해 연속되는 흉작으로 미국은 이미 식량수출 금지조치를 취했고,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한동안은 국제 곡물암거래상들에게서 약간의 식량을 구입했지만 이것도 곧 바닥이 나 더 사올 곳도 없어졌다.
국내농업이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이후 거의 절단 난 것은 이미 10년이어서 쌀은 한 톨도 나지 않고 있고, 쌀 수입이 끊어진 지 두 달만에 큰 식량파동을 겪고 있다. 전쟁과 천재지변에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정부 창고에 보관하고 있던 정부 곡물 2백만 섬도 그나마 바닥이 나버려 식량파동은 점차 심각해져가고 있다. 지난날을 생각하면 후회막급이지만 그 당시의 대통령을 욕해 본들 말짱 헛일이다.
김형규씨는 그동안 돈도 꽤 모았다. 70평짜리 아파트에 볼보 승용차를 타고, 이탈리아제 침대에다가 아파트 안에 칵테일바까지 만들어놓고 화려하게 살았다. 그런데 모든 것이 일장춘몽이 되고 말았다. 옛날로 돌아가 20평짜리 아파트에 자동차 없이 살아도 좋으니 밥만 배불리 먹었으면 다른 소원이 없겠다. 처음에는 매점매석이 횡행하고 식품 값이 급등하더니 이것마저도 마음대로 구할 수 없게 되었다. 라면이나 인스턴트 식품도 바닥이 나고 귀중품과 식량을 바꾸어 먹는 사태가 속출했다.
드디어 정부는 특별조치를 발표하고 모든 식량의 매매행위를 중단시키고 매점매석을 금하며, 식량을 정부의 관리감독 하에 중앙통제로 배급하겠다고 발표했다. 처음에는 하루 두 끼분의 식량이 배급되더니 보름 전부터는 그나마 한 끼로 줄었다. 9시 뉴스 앵커도 눈이 한 자나 들어가 보인다. “대통령은 오늘 밤 영 시를 기점으로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할 예정입니다.”
‘공포의 시나리오’란 글의 내용이다. 앞으로 닥칠 우리의 심각한 상황을 가상하여 쓴 것이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이런 일이 가상이 아닌 실제로 닥쳐올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산업화 일변도에 농산물 수입개방으로 농촌이 점점 죽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고향을 다녀온 마음이 너무너무 무겁다. 내가 자랄 때 50호 가까웠던 마을이 지금은 8가구만 남아있다. 앞산 밑의 우리 논은 산에서 내려온 아카시아 숲에 점령되어 버렸고, 손골의 큰집 논은 버드나무들이 우거져 있다. 부모님들이 그렇게도 자랑스러워했던 구룡양지 넓은 밭은 칡넝쿨로 온통 뒤덮여 있고, 텅 빈 들녘 한쪽에는 지을 수록 손해만 보는 쌀농사 대신 참외를 재배하는 비닐하우스가 펄럭이고 있다. 초등학교 아동 수는 해가 갈수록 줄어들고, 한 학교는 문을 닫은 지 이미 오래다.
앞으로 자유무역협정이 무분별하게 체결되면 한국 농업의 쇠퇴는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자유무역협정이 우리나라 농업에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마는 여타 산업에 있어서는 비교우위가 가능하므로 우리에게 절대 유리하며, 식량의 안정확보도 식량의 안정적 생산에 연연할 것이 아니라 식량을 안정적으로 구입할 수 있는 경제적 능력으로 정의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이 지극히 위험한 발상이라는 것은 앞에서 말한 가상에서도 충분히 알 수가 있다.
문제는 국제무역의 자유가 아니라, 한 나라 또는 한 지역이 자기 자신의 식량을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파괴하는 것이 과연 지각 있는 일이냐 하는 것이다. 만일 한 국민이 스스로를 먹일 수 있는 능력을 잃어버린다면 그 국민이 어떻게 자유롭다고 할 수 있느냐 말이다. 만일 우리가 정말 자유롭기를 원한다면 무엇보다도 우리는 거대한 초국적 기업들이 노리는 탐욕과 권력의 집중화로부터 우리 자신이 자유로워지지 않으면 안된다.
독일을 보라. 독일은 이른바 ‘라인강의 기적’으로 이룬 부의 절반을 농촌지역에 쏟아 부었는데, 세 가지를 위해서라고 한다. 첫째, 충분한 식량확보를 위한 농·축산업 육성, 둘째는 녹지공간으로서의 농촌자연환경을 보존하기 위해, 셋째는 2세의 교육을 위해서다. 어린 시절을 잘 보존된 농촌에서 자연과 호흡하며 지내야 튼튼한 육체와 풍부한 감성, 그리고 이웃과 함께 사는 덕성을 갖춘 성숙한 인간으로 자랄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도 할 수 있다. 사람을 잘 뽑자.
우리의 농산물을 먹자. 농촌을 살리자. 농민들이여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