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사랑의 주체인 동시에 사랑의 객체도 된다. 이 두 가지 중에서 강조되어야 할 것은 사랑의 주체성이다. 그런 점에서 요즘 많이 부르고 있는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이라는 노래는 ‘당신은 사랑하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이란 주제와 내용으로 바꾸는 것이 바람직하다. 성경은 이 점에 대해서 분명히 가르치고 있는 바,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그와 같이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예수의 말씀을 기록하고 있다(마태복음 22장 37절). 성경이 가르치는 사랑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 외의 인간적 사랑으로는 철저하게 대아적 사랑이 아닌 대타적 사랑을 강조하고 있다. 왜냐하면 대아적(=이기적) 사랑은 강조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이 대타적 사랑을 총괄적으로 말해서 ‘이웃사랑’이라고 했지만, 이 ‘이웃’의 개념은 또 몇 가지 양상으로 구별될 수가 있다. 구약시대의 유대인들에게는 ‘이웃’은 동족인 이스라엘에게 국한되었지만, 예수께서는 이웃의 개념을 이방인과 온 인류에까지 확장시켜 말씀하셨다(누가복음 10:25-37). 그런데 우리는 ‘나’(자신)라는 개념도 두 세 양상으로 확대하여 볼 수 있는 경우가 있다. 즉 ‘소아’로 보는 나 자신 외에 ‘대아’로 보는 사랑의 객체가 있는 것이다. 흔히 말하는 ‘대아’로는 국가가 있고, 좁은 범위로는 자신이 속한 단체 기관이나 향리를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두 가지의 대아는 자신에 대한 이기적인 소아와는 대립적인 객체가 되지만, 타자에 대한 관계에서는 대국적인 자아가 되는 것이다. 이제 이 대국적인 사랑과 더불어 세 가지의 자기 사랑에 대하여 생각해 보고자 한다. 1. 애향심 인간은 누구나 육신의 부모를 가진 것과 같이 자신의 출생지가 있으며, 이 출생지는 우리가 마치 부모를 사랑하고 그리는 것처럼 태어나고 자라난 고향을 늘 사랑하고 그린다. 이 애향의 정은 고향을 떠나서 오랜 시간이 지남을 따라 희미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오랜 시간이 지날수록 더 간절해지는 것이 우리의 경험이다. 이러한 심리와 감정은 우리나라 대중가요를 보면 여실히 드러나는 것이다. 월요일 밤마다 KBS에서 하는 가요무대를 보면 주로 흘러간 옛노래를 많이 부르는데 그 청중은 거의가 고향을 떠나온 지 수 십년이나 되는 중년이나 노년층인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꿈에 본 내 고향” 고향이 그리워도 못 가는 신세 저 하늘 저 산 아래 아득한 천리 언제나 외로워라 타향에서 우는 몸 꿈에 본 내 고향이 마냥 그리워 고향을 떠나온 지 몇 몇 해런가 타관 땅 돌고 돌아 헤매는 이 몸 내 부모 내 형제를 그 언제나 만나리 꿈에 본 내 고향을 차마 못 잊어 “타향살이” 타향살이 몇 해런가 손꼽아 헤어보니 고향 떠난 십여 년에 청춘만 늙어 고향 앞에 버드나무 올 봄도 푸르련만 호드기를 꺾어 불던 그 때가 옛날 일제 하 초등학교 시절부터 연필이나 펜을 사서 시필을 할 때면 나는 으레 ‘경북 성주군 월항면 장산동 288번지 나채운’이라고 나의 주소(출생지, 고향)와 이름을 써보았으며, 유학으로 미국에 가 있는 동안에는 언제나 Seoul Korea를 쓰는 것이 예외 없는 습성이었다. 나는 나의 아호를 미국에 사는 동안에 처음으로 ‘월산’이라 지어서 썼는데 그것도 나의 고국과 고향에 대한 향수를 나타낸 것이었다. 즉 ‘月山’은 바로 내 고향의 면명 중의 ‘월’과 동명 중의 ‘산’ 자를 딴 것이다. 나는 미국에 8년 동안 살 때에 고향에 대한 향수 때문에 흔히 고향에 관한 대중가요를 많이 불렀으며, 그래서 지금도 그러한 노래를 꽤나 많이 알고 있다. 17세에 공부 때문에 고향을 떠나 객지와 외국으로 60년 세월을 살아왔으나 고향 그리는 향수는 노년에 이르러 더욱 깊어만 가니 이것은 한갓 ‘노년병’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나는 성주중학교를 다닐 때 불렀던 응원가를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그 당시에는 교가는 아직 없었다) “영남에 우뚝 선 우리 성중 힘차게 굳세게 나가자 자웅을 다투는 이 마당에서 우리들의 힘과 열을 다하여서 가지기를 다투는 영광스러운 월계관은 우리들의 것일세 만세 만세 만세 만세 만만세!“ “한번 해병이면 영원한 해병”이라는 말처럼 “한번 성주 사람이면 영원한 성주 사람”이라는 말도 성립되는가 싶다. 나는 그것을 운동경기의 응원을 하는 데서 스스로 발견할 수 있었다. 대구에서 고등학교(구제중학교 4-6학년)를 다닐 때 매년 경북도민체육대회가 열렸는데 그 때 나는 분명히 대구 시민이면서도 응원을 하는 데는 대구팀을 응원하지 아니하고 성주팀을 응원했으며, 서울에서 대학을 다닐 때는 전국체육대회를 할 때는 내가 서울시민이었는데도 응원은 서울팀을 위해 하지 않고 경북팀을 위해 했었다. 이러한 감정은 귀소본능과 같은 심리적 정서적 현상이니 누가 말릴 수 있을 것인가? 학교 공부 때문에, 직책이나 사업 때문에 고향을 떠나서 객지에서 살 수밖에 없으나 그러면서도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에는 교통사정이 어려운 데도 불구하고 기를 쓰고 서울에서 부산까지 13시간, 광주까지 10여시간이나 걸려서 고향을 찾아가는 ‘민족의 대이동’은 그나마 잠깐의 귀향이라도 향수를 달래보려는 몸부림이고, 서울에서는 전국의 지방 고을마다 향우회 모임을 가지는 것도 어찌할 수 없는 애향심의 발로이다. 나의 경우만 하더라도, 가장 크게는 재경경북도민향우회, 그리고는 재경성주향우회, 재경월항면민회, 심지어 장산동 출신들만이 모인 ‘동심회’ 등이 있어 그러한 통지를 받을 때면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시간을 내어 고향 사람들을 만나 정담을 나누곤 한다. 나의 고향 성주는 우리나라에서 참외 생산으로 전국적으로 알려져 있거니와, 나는 이 고향을 무척 사랑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이번에 모교 동창회 총회 및 성주 출신의 민족 가수 백년설의 노래비와 동상 제막식에 참석하여 오랫동안의 향수를 풀고 왔거니와, 지금 성주는 연간 3,500억원 참외 수익을 본다고 하니 참으로 자랑스럽기도 하다. 나는 고향을 떠나 살면서도 이 고향의 참외를 무척 좋아하며, 그 중에서도 우리 월항면에서 생산된 참외를 택해서 사먹고, 그 참외에 붙여 놓은 “성주 월항”이라는 라벨도 버리지 않고 떼어 내방 책꽂이 여러 면에 붙여 놓고 있다. →다음 호에 계속
최종편집:2025-05-19 오후 06:3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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