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이면 연례 행사로 국립현충원을 다녀온다. 올해는 제55회 현충일이며 6.25전쟁 60주년이 되는 해이다. 현충원은 한강과 과천 사이 넓은 벌판에 우뚝 솟은 관악산 공작봉 기슭에 위치해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서초동에서 지하철로 몇 정거장 밖에 안 되는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다.
현충원의 공작봉은 관악산을 중심으로 양쪽으로 뻗어 내려 늠름한 군인들이 여러 겹으로 호위하는 모양으로 기운이 뭉쳐 있다. 사방의 산들은 군인들이 모여 아침 조회를 하는 것처럼 보이고 지하의 여러 갈래 물줄기가 교류하여 생기가 넘치는 명당자리라고 볼 수 있다. 이곳 국립묘지는 마치 목마른 코끼리가 물을 마시듯 한 형상으로 보훈의 성지이고 민족의 성역으로 명당 중의 명당이다.
해마다 뜨겁게 작열하는 6월의 태양 아래 진 붉은 장미와 우윳빛 아카시아 꽃이 피면 나는 그곳에 간다. 비행교육을 같이 받으며 동해 바다에서 해상비행 사격 훈련 중 전사한 동기생을 추모하고 소주 한잔 따라주며 위로하는 것이 올해는 더욱 쓸쓸한 느낌을 받았다. 매년 현충일이면 딸과 함께 비석을 지키던 미망인은 병으로 요양원에 가 있고 반듯하게 정렬된 묘비와 조화만이 쓸쓸하게 서 있다.
동기생 묘역과 유가족 소식을 듣고 쓸쓸하고 허전한 마음을 되새기며 성주가 고향이신 서석준 전 부총리의 국가유공자 묘역으로 갔다. 1983년 10월 북한의 미얀마 랑군 테러로 희생된 고인의 묘비에는 ‘ 타고난 자질에다 경륜 또한 뛰어나서 이 나라 경제 건설 앞장 서 하시더니, 겨레의 넋이 되어 여기에 계시옵네. 한 평생 몸과 마음 의연하게 지니시고 위 아래 슬기롭게 섬기시고 아끼시니 여의고 더 아쉬워라. 그 인품 그 역량’ 이라고 새겨져 있다.
다 읽고 또 읽어보아도 무엇인가 허전하다. 비문을 읽을 때 마치 살아 생전의 체취가 되살아나듯 느껴지고 나도 모르게 아웅산 사건이 되살아나며 천안함 침몰로 떠나간 46명의 수병들이 생각나 온몸에 소름이 돋고 가슴이 찡해 오며, 애틋함과 동시에 이역만리 먼 곳에서 국가 동량재를 잃은 안타까움과 분노가 치밀어 오르며 아울러 조국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굳이 누가 일깨워주지 않아도 다시는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다짐을 한다. 그래야만 이 땅을 지키기 위해 말없이 산화한 수많은 호국 영령들에게 부끄럽지 않을 것이다. 묘비를 읽으면서 천안함 장병들이 떠오른다. 그들도 생전에 누구보다 소중한 부모의 자식이었고 사랑스러운 아내의 남편이었으며 귀엽고 사랑스러운 자식들의 아버지였다. 그러기에 이 땅에 살아 남은 우리들은 아웅산 테러나 천안함 침몰로 인한 그들의 죽음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지금 우리 국민의 70% 이상은 6.25를 겪지 않은 세대로 전쟁의 참상을 잘 모른다. 안보라는 것은 공기 속의 산소처럼 사라진 뒤에야 비로소 소중함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 누리는 자유도 삶의 터전인 영토도 순국선열과 전몰군경의 헌신이 없었다면 보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국가와 국민이 이들을 기억하고 유족들을 돌보는 책무를 다하지 않는다면 누가 목숨을 걸고 나서겠는가?
가까운 미국을 보자. ‘우리는 당신을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다’라고 지구촌 끝까지 찾아가서 전쟁영웅을 모셔 와서 그들의 살신성인의 자세를 온 국민의 가슴속에 새기고 그들의 희생정신이 헛되지 않게 하는 일이 살아있는 자의 몫임을 알고 최선을 다한다. 미국 워싱톤의 한국전쟁기념관의 벽면에는 ‘자유는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자유는 생명과 피로써 지킬 의지가 있는 국민에게만 허용된다는 진리를 국민 모두가 되새기는 보훈의 6월이 되어야 할 것이다.
국립현충원에 가면 나라사랑은 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나라사랑은 그렇게 거창한 것만은 아니다. 가정에서부터 자녀들의 교육과 실천, 그리고 학교 교육에서 6.25의 진상을 알리고 순국선열의 고귀한 희생정신을 함양시킬 수 있는 안보교육이 필요하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헌신하신 영령들을 추모하고 그 보훈가족의 영예로운 삶을 유지하고 보장되도록 국가는 최대한 지원하고, 나라 위해 헌신한 보훈가족을 온 국민이 섬기고 관심을 가지는 보훈의 달이 되기를 기원하며 더 중요한 점은 그들을 잊지 않고 예우하며 기억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