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의 해평 습지에 두루미가 찾아온 사실이 세계적인 관심거리가 되고 있다. 주된 두루미의 월동지가 되고 있는 일본과 서식지인 러시아는 특히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두루미의 방문에 대한 세계적 관심이 높은 만큼 우리들에게는 경사스런 일이고 이러한 진객의 내방을 잘 보호하여 낙동강 수계의 환경적 건강함을 세계에 알리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북아를 무대로 서식하는 두루미는 흑두루미(천연기념물228호), 재두루미(203호), 두루미(202호) 세 종류가 주류를 이루는데 이들 모두 세계적으로 멸종위기에 처한 동식물 에 올라 있다. 이 중 두루미는 덩치가 가장 크고 또 가장 늦게 남쪽을 찾아오며 머리가 붉고 몸통이 희고 날개 끝 부분이 검은데 이 두루미를 단정학이라고 부른다.
두루미는 새의 귀족이라 할만하다. 옛날부터 두루미를 천년 학(鶴)이라 하여 그 고고한 자태를 기렸다. 두루미는 새 중에는 덩치가 가장 크다. 동북아에 사는 두루미는 키가 1m에서 1m40cm 가량이니 두루미보다 큰 새가 지구상에는 없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미끈하게 잘 빠졌다. 목이 길고, 다리가 길고, 몸매 또한 날렵하여 맺힌 곳이 하나 없다. 식성을 보면 물고기와 풀씨나 곡식 등을 주로 먹으며 행동이나 걸음걸이는 품위가 있다.
두루미는 춤이 일품이다. 두루미의 춤은 실상은 디스플레이(display)라 하며 이는 동물의 자기보호나 구애를 위한 신호행위이다. 학의 춤은 동작이 우아하고 다양하며 가족끼리 또는 무리로 추기도 하여 조류의 춤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는다. 학의 춤을 모방한 학춤이 몇 가지 있는데 동래학춤이나 울산학춤 등을 보면 갓을 쓰고 도포를 입고 선비 차림으로 춤을 춘다. 민간의 학춤은 한량들이 발전시키고 향유했다 하며 춤사위나 복식, 향유층 들을 보면 양반들이나 선비들이 선호하는 품위 있고 점잖은 춤임을 알 수 있다. 이런 귀족적인 춤이 학춤에서 유래된 것을 보면 우리민족이 학을 고고한 기상을 가진 존재로 여겼음을 알 수 있으며 또 두루미의 모습이 얼마나 의젓하고 품위가 있는 가를 짐작할 수 있다.
1998년 해평 습지 인근에서 재두루미 37마리가 독극물에 의해 죽은 적이 있다. 적색동물로 등록되어 있는 재두루미의 생태계에서 37마리는 엄청난 숫자다. 그 많은 두루미가 때죽음을 당한 이후 이삼년 동안 낙동강에는 두루미 무리가 거의 찾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다 2000년대에 들어와서 일본 이즈미에서 겨울을 보내는 흑두루미들이 다시 해평습지를 경유하고 있고 지난해에는 흑두루미 열 마리가 이곳에서 겨울을 나기도 했다고 한다. 올해도 삼천 마리 정도의 흑두루미가 해평을 경유해서 일본으로 이동해 갔고, 십여마리 정도가 월동채비를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두루미의 모습을 화면으로 보기도 하고 직접 관찰하기도 하여 그 느낌을 시화하였다.
두루미가 온다
맺힌 매듭 하나 없는
시원한 몸매로
끼룩끼룩 반가운 인사를 건네며
멀고 먼 시베리아에서
스키타이 기마 민족의
이동경로를 따라
무리 지어 찾아오는 진객이 있다.
매학정 너머로 군무를 펼치며
기로선생 혼신의 필력으로 쓴
초서처럼 날아서 온다.
비워두고 떠났던
천년의 고향
해평 벌 모래톱에
새로 깃들
삶의 보금자리도 있나 보러 찾아온다.
옛날 물 맑던 시절에
둥지를 틀고 겨울나기 하던 이곳
그때 뒤보아주던 사람들은
먹이가 가난하면 나누며 덕을 쌓았다.
또 삶이 간고하면
새의 자유와 풍요를 부러워하며
그들을 위하여
삶의 터전 한 자락도 아낌없이 내주고
새가 되기를 꿈꾸며 살았다.
세월을 따라 물이 흐려지자
사나운 인심은 학춤 사위마다
고고함을 총질하고
독약도 뿌려댄다.
마음이 변하면
정든 곳도 버릴 밖에
기약 없이 날아서
일본 땅 이즈미까지 떠돌아 흘러갔다.
낙동강 칠백리 강둑을 넘어
습지를 열고
겨울에 한층 푸르게 일어서는
보리밭을 지나
강물 앞에 서면
살아서는 다 채우지 못할
아득한 그리움
다가오는 긴 날개 짓
북녘의 유리하늘 등에 지고
천년의 귀한 손님이 온다.
* 기로선생; 黃耆老 중종때 문인, 선산 낙동강변 천보산에 매학정을 짓고 학을 길렀다고 함. 초서의 대가로 초성(草聖)이라 일컬어짐.
오랫동안 대구경북의 환경단체들이 낙동강 자연생태계 보존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다. 그리고 흑두루미 도래 이후 구미시는 철새와 두루미 보호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시에서 낙동강 변에 조수 보호구역을 설정하고 감시원을 강 동쪽과 서쪽에 두 명씩 고정 배치하여 감시를 하는 한편 상당한 예산을 들여 철새 먹이 공급 등의 보호활동을 하고 있다.
해평 습지의 두루미 생태에 대한 학문적 연구는 경북대 박희천 교수가 해평 습지의 열악한 환경에서도 기거하다시피 하면서 학문적 관찰과 보호 방안 모색을 위해 치열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한편 의식 있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민간단체도 발족되어 두루미 보호를 위한 일을 시작하고 있는데 대표적인 예로 해평의 박배영씨란 분이 이끌어 가는 는 시와 민간인의 가교 역할, 기관 단체의 철새 모이 주기 유도, 연구자들의 뒷바라지 내방객 안내 등 다양한 활동을 한다.
1960년대 이전만 해도 낙동강 수계(水系)는 수 만년을 두고 학이 월동하는 생활의 터전이었을 것이다. 그러던 것이 농약의 과다 사용과 공해물질의 배출, 무분별한 개발 위주의 정책, 야만적이 야생조수의 남획 등으로 두루미들이 월동지로 이동하는 경유지로 택하거나 아예 경유도 하지 않는 학이 버린 땅이 되었다. 학을 죽음으로 내몰고 학을 거부하는 땅은 이내 인간도 죽음에 이르게 하고 인간도 거부하는 땅이 되고 말 것이다.
지금 낙동강 강안을 따라 가보면 제방 너머에 모래 채취, 길 넓히기, 교각 공사, 비닐하우스, 경작, 시설물 구조물 설치, 폐기물 방치 등등 강바닥을 훼손하고 자연환경을 파괴하는 일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정부나 지방정부는 현재 제방이 설치되어 있는 강의 바닥은 경작이나 활용을 금지하고 자연에게 되돌려 주도록 해야 할 것이다. 사유지가 거의 없겠지만 만약 있어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장기 계획에 의해 매입해야 할 것이고, 불법으로 점유하거나 경작할 때에는 책임을 묻거나 연차적인 철거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정부의 허가 사항인 경우도 마찬가지로 연차적으로 축소하고 다른 대안을 찾도록 해야 할 것이다.
낙동강 수계는 용수문제나 교통문제의 용이성 등으로 산야보다도 훨씬 빨리 개발되어 폭우가 올 때 수량을 수용하지 못할 정도로 강폭이 좁아졌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낙동강 강안 제방을 넘어 자꾸만 개발의 손길이 뻗치고 있다. 인간이 침범하는 이 강바닥(河床)은 물고기의 것이요, 강바닥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조수(鳥獸)들의 것이다. 인간의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자연의 것이다. 말없는 미물과 자연의 것이라 해서 끝없이 탈취해도 되는 것이 아니다. 이제 낙동강은 지나치게 개발되어 더는 인간의 손을 타지 않게 해야한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는 얼마 남지 않은 강바닥을 보호에 정책의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
성주군이 면한 낙동강 수계는 칠곡군 달성군과 함께 공유하고 있다. 강폭은 매우 넓은 편이나 난개발이 가장 심한 실정이다. 강둑을 넘어 강바닥을 비닐하우스 경작지로 만들어 어느 지역보다 심하게 하상을 훼손하여 이용하고 있다. 아마 대부분 공유수면이고 국유지일 텐데도 불구하고 객토까지 조직적으로 하여 수박과 참외를 경작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비닐하우스 자체가 물고기와 조수의 삶의 터전을 빼앗고 또 번쩍거리며 열기를 내뿜어 야생조수의 생활을 방해할 뿐만 아니라 거기에 뿌려지는 농약과 비료는 말할 수 없는 공해를 유발할 것이다. 그래서 성주에 면한 낙동강 강안에는 야생 조수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성주의 낙동강 하상이 지나치게 개발된 만큼 불법점유라 할지라도 원상회복을 하는데는 많은 반발과 이를 무마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성주군은 이제 더 이상 낙동강의 개발을 막고 강바닥을 불법 점유하고 있는 부분은 연차적으로 설득이나 보상을 통해서라도 원상회복을 하여 최소한의 자연환경, 녹지환경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성주에도 두루미와 고니 청둥오리가 찾아오는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할 것이다.
----- 배 계 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