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수립 이후 이 나라 첫 선거는 초대 국회의원 선거였다. 지방자치제의 면의원, 도의원 선거도 있었고 학교 학생회장, 동장도 선거로 뽑았다. 당시 우리 마을 동장 선거가 있었는데 부재자투표 제도가 없을 때였으니 기권자나 출타한 사람의 통지표만 있어도 본인 확인절차 없이 투표를 할 수 있을 때였다. 어느 유권자가 아침 일찍 투표를 하고 한참 있다가 헤어스타일을 바꾸고, 또 한참 있다가 복장을 바꾸며 투표를 했던 것이다. 몇 번을 들락거리다 보니 참관인이 너무 심하다 싶었던지 “아따, 너는 이제 그만 들어와”’ 했다는 일도 있었던 우리나라 선거사의 한 단면이다. 민주주의의 대의제도가 차츰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고 정당의 뜻과 정권교체라는 대의도 인지되기 시작했다. 정부·여당은 권력을 탐하게 되고 ‘국민 여망’ 같은 것은 아예 안중에도 없이 오로지 권력 향유에만 광분하고 있었다. 당시 대도시에서는 이런 일도 있었다. 강력한 야당 인사를 아예 출마부터 막아야겠기에 등록 마감날 아침에 그 집 앞에 쓰레기를 쏟아놓고는 경범죄로 조사를 해야겠다며 경찰서로 연행하고 마감 시간이 지나서 방면하는 것이었다. 권력 유지를 위해서는 이런 치졸한 방법도 마다하지 않았던 것이다. 1960년에는 정부통령 선거가 있었다. 유감스럽게도 나는 그 선거에 처음으로 투표권이 나왔지만 투표장에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쫓겨나오고 말았다. 악명 높은 3인조, 9인조 덕분이었으며 마을 동장이 무더기로 투표를 했던 것이다. 나의 첫 선거권은 그렇게 유린당하고 말았다. 그때 나온 신조어가 올빼미표, 쌍가락지표, 피아노표였던 것이다. 이른바 3·15 부정선거의 전주곡이었으며 그 결과는 4·19를 부르고 다시 5·16을 불렀다. 제3공화국에서는 금권·관권 선거는 많이 줄었으나 대신 막걸리·고무신 선거가 공공연히 치러지던 때였다. 《선거야 선거야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상여 소리도 아니고 민요의 한 구절은 더더욱 아닌 당시의 선거 진풍경이다. 먹을 것이 넉넉지 않았던 그 시절 막걸리는 표심을 향한 최상의 전략이었다. 유세장 한켠에서는 막걸리 동이를 갖다놓고 바가지를 띄워놓았다. 어른들은 그래도 축제라고생각하여 취흥에 젖었지만 아이들이 문제였다. 한 잔 먹으려는 어른들 줄 사이사이에 어린이가 끼어 있었고, 주렸던 배에 술이 들어가니 비틀거리고 쓰러질 것은 뻔했다. 이걸 보고는 웃어야 할까 울어야 할까, 참 난감했다. 장탄식을 하는 어른도 있었지만 한 어른이 너울너울 춤을 추며 추임새를 넣은 것이 ‘선거야 선거야···’ 였던 것이다. 그 행위는 선거를 비꼬는 고도의 풍자극이었을까, 아니면 정말로 이 좋은 선거를 기다리는 희망의 퍼포먼스였을까? 6·2지방선거는 끝났다. 선거에 어떤 식으로 참여했든, 누가 누구를 지지했든, 그 반대였든 이제는 평상심으로 돌아가 자기생활에, 자기발전에 임했으면 좋겠다. 그것이 향토와 국가발전에 기여하는 길이 아니겠는가.
최종편집:2025-05-19 오후 06:3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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