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아더 장군의 ‘아들을 위한 기도문’을 읽다가 이 세상 모든 부모들의 진실된 기구와 갈망이 이 기도문 속에 응축되어 있음을 발견했다. 그리고 문득 나는 너희들에게 이 기도문과 같이 영혼의 자기진동 같은 간곡한 말 한 마디를 들려주지 못했다는 사실에 부끄러움을 느껴 필을 들었다.
그러나 막상 너희들에게 들려 줄 이야기는, 나와 같은 어리석고 못난 전철은 밟지 말라는 당부뿐이라 망설여야 했다.
중환자의 시신은 실험 대상이 되어 그 중병을 예방하고 퇴치하는 밑거름이 되기도 한다. 그렇듯 오늘 내가 너희들에게 들려주려 하는 이야기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아프게 생각하는 부분들을 고해성사 하는 심정으로 고백하는 것이니 타산지석으로 삼아 너희들의 삶을 충만하고 윤택하게 가꾸는데 유용한 길잡이로 써주길 바란다.
이권과 명예와 권위와 재물을 얻기 위해 아귀다툼하는 현실에서는 ‘무조건 살아남기’가 아닌 ‘사람답게 살아남기’가 참으로 힘이 든다. 그래서 나는, 인생이란 사람다움에 대한 도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사람다움을 포기하거나, 사람답게 살기 위해 감수해야 하는 여러 가지 고통을 외면하려고 허둥지둥 구차하게 살아왔다. 그러면서도 너희들만은 성실하고 진실 되며, 온유한 마음을 가진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간절히 바랐기에 때로는 가슴 졸여야 했고 때로는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그러나 너희들에게 직접적으로 표현한 적은 없다. 그것은 앞에서 밝힌 바와 같이 나의 삶의 궤적이 그렇게 떳떳하고 자랑스럽다고 생각되지 않았기 때문이고, 너희들이 순수하면서도 성실하고 진실 되게 삶을 가꾸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먼저 맥아더 장군의 ‘아들을 위한 기도문’과 함께 아버지의 절규를 옮기니 내 뜻을 충분히 헤아려 가슴에 새겨 주기 바란다.
신이여, 우리 아들을 이러한 인간이 되게 하여 주소서.
약할 때는 자기를 잘 분별할 수 있는 힘과, 무서울 때는 자신을 잃지 않는 대담성을 가지고 정직한 패배에 부끄러워하지 않고 태연하며 승리에 겸손하고 온유한 사람이 되게 하여 주소서.
바라옵건데, 우리 아들을 쉽고 안락한 길로만 인도하지 마시옵고, 고난과 불의에 대해 분투 항거함을 알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폭풍우 속에서도 용감히 싸울 줄 알고 패자를 불쌍히 여길 줄 알도록 하여 주소서.
마음을 깨끗이 하고 목표가 고상하고 남을 정복하려고 하기 전에 먼저 자기 자신을 정복하고 웃을 줄 아는 동시에 울음을 잊지 않게 하시옵고, 장래를 바라보는 동시에 과거를 잊지 않는 사람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에 더하여 유머를 알게 하시어 삶을 즐길 줄 알게 하시고, 자기 자신을 너무 중대히 여기지 말고 겸손한 마음을 갖게 하여 주소서.
그리고 참으로 위대한 것은 순박한 것이며 참된 힘은 온유함이란 것을 명심하도록 하여 주소서.
신이여, 우리 아들을 그러한 인간이 되도록 하여 주소서.
너희 할머니께서 항상 나에게 이르신 가르침은 ‘자신을 사랑하라’는 말씀이셨다. 내가 잘못을 저지르거나 나쁜 짓을 했을 때 눈물을 머금고 간곡히 타이르시는 말씀이셨다.
그러나 생각이 모자라고 행동이 경망한 나는 ‘자신을 사랑하라’는 말씀의 뜻이 남보다 잘 입고 잘 먹으며, 출세하고 돈 많으면 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그런 말씀을 하시는 어머니를 우습게 생각했단다. 엄벙덤벙 살아온 나는 나이 40을 넘어 지천명을 바라보면서 비로소 ‘자신을 사랑하라’는 그 말씀의 참 뜻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염치를 알고 도리를 아는 사람다운 사람이 되라는 말씀이셨다. 그것이 사람이 살아가는 근본이요, 뿌리임을 뒤늦게 깨달은 이 못난 애비의 어리석음을 글로서는 표현할 길이 없구나.
우리 모두가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할 줄 안다면, 세상은 맑고 평화롭고 따뜻한 것들로 가득하지 않겠느냐. 사람 사는 세상이 평화롭기만을 바라는 것은 꿈이요 이상이겠지만, 적어도 그것을 위해 노력할 때 우리들의 삶은 그만큼 충만해지고 윤택해지는 것이 아니겠느냐.
자신을 사랑하는 일보다 더한 고통과 인내와 용기가 필요한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의무를 다하고 책임을 지는데 따르는 고통, 인간적 결백을 지키는데 수반되는 고통, 진실에 충실하기 위해 치러야할 불가피한 고통, 자신의 오류를 시인하는데 따르는 고통, 그 오류를 개선하기 위하여 발 벗고 나서는데 따르는 고통, 남들의 아픔을 내 것으로 삼는 고통 등 더 많은 고통의 멍에를 지는 것이 바로 자신을 사랑하는 길이다.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사람답게 사는 길이며, 사람답게 사는 것은 형극의 길이다. 인간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면서 자신의 진실을 캐고 드는 한, 고통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은 어쩌면 인간의 원죄라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쉽게 인생을 고해라고 말하면서도 고통 없이 살기를 원하며 또한 그것이 행복이라고 착각하며 살아간다. 이것은 인간다움의 진정한 의미를 모르거나, 오해를 하거나, 알고도 도피하려는 나 같이 어리석은 사람들이거나 위선자들일 게다.
사람이 사람답게 산다는 것, 즉 자신을 사랑하는 길은 구도자의 길이며 고행의 길이다. 그렇지만 마음의 평화가 진정 허위를 떨치고 진실로 되돌아감으로써 얻어지는 것이라면 우리들은 구원을 바라는 만큼 고통을 대가로 치러야 한다.
그러나 그 고통은 평화를 얻으려는 고통이므로, 아름다운 것이며, 승화된 것이며, 귀한 것이다.
행복은 자기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은혜의 선물이다. 무리하게 부와 명예를 생각하지 말고 순리대로 자신의 분수를 알고 지켜 인격을 갖춘 사람다운 사람으로써의 삶을 가꾸어주기 바란다.
내가 좀 더 일찍 할머니가 일러주신 ‘자신을 사랑하라’ 하시던 참뜻을 깨우치고 자신을 사랑하는데 충실했더라면 보다 알차고 보람된 삶을 영위했을 터인데, 이제와 돌이켜보니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부끄러움과 회한만이 가득하다.
할머니께서 일러주신 ‘자신을 사랑하라’는 말씀은 밝고, 옳고, 크고, 착하고, 빛나고 ,아름답고, 따스하고, 부드러운 마음씨와 행실을 갖춘 진정 사람다운 사람이 되라는 뜻이었다. 할머니의 가르침을 가슴깊이 새겨 이 애비처럼 살지 않기를 두 손 모아 기원한다.
내 심연의 앙금을 절규하는 심정으로 이렇게 너희들에게 털어놓고 나니 부끄러움 사이로 안도감이 들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후련하기도 하다.(1986. 2.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