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는 반민족행위자를 1천6명으로 확정 발표하고, 이창민(백년설)은 명단에서 빼기로 했다.
심의 과정에서 기각이유로 첫째 단체 소속인 전속가수의 경우 소속단체의 요구를 뿌리치기가 어렵고, 둘째 이창민(백년설)은 대중음악 가수로 ‘혈서지원’ 등 군국가요를 부른 사실과 기타 친일행위가 인정되기는 하지만, 당시 대중가수가 지니는 사회적 위상이 상대적으로 낮았다는 점이 참고되어 기각한다고 했다.
비단 성주인이 아니더라도 국민 대부분은 일제 당시의 시대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백년설이 친일이라고 매도하는 데는 동의하지 않았다. 다만 일부 농민단체에서 줄기차게 주장했을 뿐이고, 그들을 애국심의 발로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그 때문에 2003년 제1회 백년설가요제 행사를 엉망으로 만들었고, 노래비에 오물을 끼얹는 등 불미스런 일로 얼룩진 추한 모습을 만천하에 드러내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최근에 건립한 백년설 흉상 얼굴에 도끼자국을 냈지만 아직도 누구의 소행인지 범인을 검거하지 못하고 있다. 목격자도 있다는데 못 잡는 게 아니라 안 잡는 거라는 소문도 있다. 범인 잡아서 좁은 성주사회에 평지풍파를 일으킬 필요가 없다는 말이 떠돈다. 그 소문이 사실이라면 정말로 슬픈 현실이다.
폐일언(蔽一言)하고, 이번의 진상규명위 발표를 계기로 더 이상은 반목하지 말고 화합하고 소통하자. 그리하여 그분의 공과를 새삼 따지지 않더라도 일제 강점기에 노래로서 민족혼을 일깨운 업적은 올바르게 평가하자.
반야월 선생 ‘친일이라니!
그도 일제의 피해자야’ 일갈
가요사의 산 증인이시고 당시 백년설 선생과 함께 활동했던 반야월(94, 본명 박창오, 가수명 진방남) 선생과 인터뷰 때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백년설 선생이 친일이라니! 그도 일제의 피해자야!”라고 일갈하며 친일이라고 주장하는 그들을 강하게 질타했다. “힘든 시절 백년설 선생이 노래로 민족의 애환을 달래 준 큰 공은 묻어둔 체, 훼절 시비만 하는 너무도 근시안적인 그들을 생각하면 속이 무척 상한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반야월 선생은 “가까이서 본 백년설은 누구보다 민족성이 강해 항시 반일사상으로 무장되어 있었다”고 증언했으며 그러한 흔적들이 곳곳에 잘 나타난다.
이상희 전 장관이 쓴 ‘백년설 그의 삶, 그의 노래-오늘도 걷는다마는’(선 출판사)에서는 백년설 선생의 반일사상이 잘 나타나고 있다. 학창시절 일본인 교사가 학생을 구타하여 귀가 찢어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에 학생들은 일제히 수업을 거부하자고 주장하기에 이르렀고 이갑룡(백년설)이 물론 앞장섰다. 또 만주 공연 기차 안에서 일본헌병의 멱살을 잡은 사건은 당시 분위기로는 항일 사상이 투철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사건이다.
“이처럼 철저한 반일 사상은 그의 중형의 영향을 많이 받은 듯하다”고 이 전 장관은 말했다. “중형 혁룡씨는 당시 일본 동경에서 인쇄소를 경영하며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한 철저한 반일주의자다. 이러한 활동과 관련하여 여러 차례 투옥되었고, 그 과정에 마침내 옥사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사실이 당시 아사히신문에 보도되었다는데 이것만 봐도 혁룡씨는 상당한 반일활동가였던 것으로 짐작 된다”며 “그 충격으로 백년설 선생이 일본인을 더 미워하게 된 것 같다”고 회고했다.
민족가수 백년설을 문화브랜드화해
성주의 위상을 드높이자
당시 백년설은 훼절가요를 부를 수 없다고 버티었지만, 당시의 시대상황은 결코 일신의 안위만을 도모할 수 없었음이 드러났으므로 이제는 더 이상 이 문제로 반목하지 말자.
진주에서는 남인수를, 목포에서는 이난영을 범시민적으로 기리고 추모하듯이 우리 성주도 성주가 낳은 민족가수 백년설을 함께 추모하자. 그리하여 중단된 백년설 가요제를 재개해 문화브랜드화 하여 성주의 위상을 드높이게 되기를 눈물로 호소한다.
몇 년 전 재경성주문화사업후원회 창립총회에 참석한 백년설 선생의 장남 이일정씨가 “선친의 노래 중 일부 훼절가사에 유족으로서 유감 표명”과 “불가항력인 당시의 시대상황을 고려해 달라”며 하소연 한 바도 있다.
지금 전국 단위로 백년설선생 추모사업회(회장 이상희)가 조직돼 있고, 서울에서는 백 선생의 후계자인 원로가수 남백송 선생이 이끄는 백년설기념사업회가 있어 250여명의 회원들이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회원 중 성주인은 극소수이고 대부분 성주와는 관계가 없는 이들이 그저 백년설 선생과 그 분의 노래가 좋고 불행했던 한 시대의 아픔을 절절한 노래로 승화시킨 한 가수를 추모해서 스스로 모인 단체다.
이와 함께 대구에서는 주설자 회장이 이끄는 ‘백년설노래사랑모임’(일명 백사모) 600여명의 회원들이 백년설 선생 알리기에 적극 나서고 있는 등 주변 분위기가 어느 때보다 잘 조성돼 있다.
만시지탄(晩時之歎)이긴 하지만 지금부터라도 민족가수 백년설을 앞세운 문화행사도 갖고 ‘성주’ 하면 백년설을 떠올리도록 우리 함께 만들어 나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