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머니 살아 계실 때 어느 늦가을의 일이다. 우리집 채마밭이 나지막한 야산 바로 아래에 있었는데 어머니와 나는 동생을 데리고 그 밭으로 갔다. 몇 고랑 고추를 따다가 가을 햇살 따가운 밭 둔덕에 기대어 쉬면서 어머니가, ‘아이고, 여기가 따뜻하고 좋으네. 종동아! 나 죽거든 여기 묻어 달라고 하여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아직은 ‘죽음’ 운운할 연세가 아님은 당신께서 더 잘 아실 일이기에 일단은 약간 어리둥절하기도 했지만 먼먼 훗날의 얘기이므로 셋이서 함께 가볍게 웃고 말았다. 그러나 열서너 살이나 된 나의 감수성은 죽음은 슬픈 일이라는 것과, 어려서 엄마 잃는 아이들을 많이 보아온 나로서는 막상 내 어머니의 느닷없는 ‘죽음 얘기는 상상만으로도 잠시 비감함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아이들에게는 어머니보다 더 좋은 존재는 없다. 이런 어머니와 언젠가는 사별하는 슬픔을 맞을 텐데…, 떼려야 뗄 수 없는 사랑과 모정이 깊으면 사별할 때는 슬픔이 더 클텐데…, 그렇다면 그때 가서 덜 슬프도록 깊은 정을 가질 것도 없고 애써 효도할 필요가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사랑과 모정이 덜 깊으면, 아예 덜 들이면 슬픔도 그만큼 덜 할 것이 아닌가 했던 것이다. 이런 이런, 쯧쯧…. 이게 철부지인가, 아니면 덜 떨어진 아이인가? 효도의 회피인가, 논리의 비약인가? 정확하진 않지만 그로부터 40여년 후에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회자정리 생자필멸의 철칙을 내 어머닌들 거역할 수가 있었겠는가. 일전에 중형이 딸이 사는 캐나다로 여행을 가셨다. 10분 이내 거리에 있는 형님집 앞을 하루 한두 번 지나치는데 처음에는 대문 가까이 가기가 썩 내키지 않았다. ‘안 계실 텐데…, 체취도 남지 않았을 텐데… 이런 생각이 나의 발길을 막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다. 만일 돌아가셨다면…, 언젠가는 돌아가실 텐데… 라는 생각에 목구멍이 좁아지는 듯하더니 가슴이 먹먹해 지는 것이었다. 불현듯 일어나고 삽시간에 사라졌으니 지금은 남은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나의 가슴은 허전하기만 했던 것은 사실이다. 지금 지구 반대편에서 관광 중인 것과 먼 훗날이 교차되어 잠시 혼돈을 일으켰다가 곧 그런 감정은 어디론지 사라지고 말았다. 상상은 나래를 달고 40여년 전 어머니가 하셨던 그 ‘따뜻한 밭 둔덕’ 얘기로 돌아간다. 어머니도 형님도 ‘언젠가’라는 가정이 붙었지만 그 감도는 달랐다. 그 날 어린 우리 둘에게는 어머니의 그 ‘죽음’ 얘기는 실감이 나지도 않았고 우리 어머니가 왜 죽어, 세상의 어머니가 다 죽어도 우리 어머니는 안 죽어! 라는 어쩌면 조금은 천진스럽기도 하고 아이들다운 억지스런 점도 있었지만, 막상 지금 안 계신 중형을 생각하면 어머니와 중형은 그 느낌이 다르게 다가옴을 숨길 수가 없었다. 다시 말하면 시차가 문제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산수(傘壽)가 겨우 내일인데, 아직은 평균 수명에도 못 미치는데, 지금의 용체(=건강)는 생각하지 않고 방장지년일 때의 건강하셨던 형님만을 생각하게 되니 곧 마음이 무거워짐은 어쩔 수가 없었다. 인생사의 예정된 사별은 언제라도 올 것이지만 어느 중견 여배우는 시한부 암 선고를 받고부터 충격을 이기지 못 하다가, 자식들과 미리부터 ‘이별연습’을 해야겠다며 ‘자기이야기’를 무대에 올려 열연을 보였던 것이다. 운동 선수는 실전보다는 연습 경기가 더 혹독하다고 하듯 그 여배우는 이별연습에 더 혼신을 다 했다고 한다. 그는 염력(念力)의 효과가 나타난 것인지 지금은 더욱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형님에게는 그 여배우와 같은 무슨 연습도 필요 없고, 나와 동생이 어머니와 영원히 함께 사는 존재로 여기듯 형님도 이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하여 체재 중인 그 나라 맑은 공기, 좋은 풍광에 심취하시고 장거리, 장기간의 여행에 무사와 강녕하심을 빌어본다.
최종편집:2025-05-20 오전 09:3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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