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삼십 년 전, 나는 남들보다 한 해 늦게 초등학교에 들어갔다. 요즘처럼 일부러 취학을 미루는 풍조 탓이 아니라 우리 부모님께 두 돌잡이 막내를 돌볼 애보개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막내를 업고 골목길을 어슬렁거린 일 년 동안, 나는 세상에서 책가방 메고 학교 다니는 아이들이 제일 부러웠다. 그래서 아홉 살에 입학하자마자 글자에 굶주린 짐승처럼 책이라고 생긴 것은 모조리 들이팠다. 교과서, 동화책, 위인전, 잡지책을 가리지 않았다. 남들이 만들어낸 무언가를 오래도록 향유하다 보면, 언젠가 자신도 그런 무언가를 생산하고 싶어지는 때가 온다. 나도 그랬다. 내 글을 쓰고 싶어졌다. 작가가 되어 내 책을 누군가에게 읽히고 싶어졌다. “커서 뭐가 될래?” 하고 어른들이 물으면, 나는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작가’ 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어른들 대부분은 내 꿈을 탐탁지 않아 했다. 부모님도 마찬가지였다. 작가는 굶어 죽기 십상이니까 그저 무난히 먹고 살만한 은행원이나 교사가 되라고들 했다. 나도 굶어죽기는 싫어서 꿈을 수정했다. ‘먹고살 만한 작가’로. 정 안 되면 ‘글 쓰고 월급 받는 직업’을 갖기로. 언론사 시험도 보고 방송작가, 출판사 직원도 잠깐씩 해보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어쨌든 서른아홉의 나는 먹고살 만한 작가로 살고 있다. 어릴 적 꿈을 실제로 이루었다. ‘존 아저씨의 꿈의 목록’이라는 책을 보니, 나이에 상관없이 ‘100명 중 3∼5명 정도만’ 꿈을 이룬다는 통계가 있단다. 그렇다면 나도 100명 중 3∼5명에 속하는 행운아인 셈. 감사, 또 감사할 일이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인 존 아저씨, 존 고다드는 15세에 자기 집 식탁에서 써 내려간 127개의 꿈 중에서, 1972년 ‘라이프’지에 ‘꿈을 성취한 미국인’으로 대서특필되었을 때에만 무려 111개를 이룬 상태였다니 얼마나 대단한 행운아인가. 현재 팔순 노인인 이 행운아는 그 이후에도 500개 이상의 꿈의 목록을 만들어 400여 개의 꿈을 더 이루었단다. 몇 년 전에는 전립선암 선고를 받고 그 즉시 꿈의 목록에다 ‘암을 이겨내고 건강해지기’라는 새 목표를 적어 넣고 결국 완치된 사람이니, 아마도 죽기 직전에는 ‘죽음을 편안히 받아들이기’라는 목표를 설정하고 보란 듯이 이루어내지 않을까. 고다드는 말한다. 그에게 생긴, 또 하나의 작은 꿈인 ‘어린이들이 꿈의 목록을 적게 하기’를 이루기 위해. “꿈을 갖고 있기만 해서는 안 돼. 꿈은 머리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란다, 얘야. 가슴으로 느끼고 손으로 적어 발로 뛰는 게 꿈이지.” 나도 내년이면 꺾어진 팔십, 마흔 살이다. 마흔, 마흔이라니. 평균수명만치 산다고 가정할 때 바야흐로 인생 후반기를 맞이하는 나이. ‘천재’, ‘요절’ 따위의 단어에 들려 있던 문학소녀 시절에는 꿈도 꾸지 않았던 나이이건만, 요즘은 내 중요한 화두 중 하나가 되었다. 어떡하면 내 마흔 이후의 삶을, 인생 후반기를, 전반기보다 더 멋지게 설계할 수 있을까. 그래서 존 고나드처럼 아주 사소한 꿈부터 개인적으로 이루고 싶은 작은 꿈들, 천운이 따르면 이룰 수 있을 큰 꿈까지 목록으로 만들어 관리해 볼까 싶다. 틈만 나면 인터넷 쇼핑몰에서 ‘위시리스트(wish list)’를 관리하는 친구에게 이렇게 물어본 적이 있다. “시간 아깝지 않니?” “아깝긴. 이거 관리할 때마다 꿈속에서 노니는 기분인 걸…. 나한테는 더할 나위 없는 에너지 재충전 수단이야.” 당사자가 그렇다는 데야 할 말이 없었다. 사고 싶은 물건의 목록을 관리하는 일도 에너지 재충전 수단이 되거늘, 하물며 꿈의 목록을 관리하는 일임에랴. 당장 오늘 ‘나만의 꿈의 목록’을 적어보심이 어떨지요? - 출처 : 강원일보
최종편집:2025-05-20 오전 09:3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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