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우선 나에 대한 소개를 해야겠다. 나는 성주중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학생이다. 일본에 갈수 있었던 계기는 어머니가 우연한 기회로 이 사업(한?일 교환학생)을 알게 되어서 신청을 하셨다고 한다. 일본으로 가기 한달쯤 전에 이 사실을 알았고 한 달 동안 아주 기대와 두려움으로 생각이 많았다. 드디어 출국하는 날! 사실 일본을 처음 가보는 것은 아니었다. 어릴 적 태권도학원을 통해 한번 다녀왔지만 지역도 달랐고 너무 어릴 때 여서 무엇을 보고 왔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아침 일찍 동대구역에서 새마을회 사무국장님을 만나 김해공항으로 이동 비행기로 일본에 도착하였다. 다시 열차로 이동해 오이타역에 도착하니 오노 게니츠 선생님이 마중 나와 계셨다. 정말 감사한 일이 아닌가! 우리와 아는 사이도 아닌데 시간을 내어 나와 주신다는 것이 사소해보일 수 있지만 정말 감사했다. 오노 선생님과 인사를 나누고 대재중학교로 이동하였다. 교장선생님 안내로 학교 구경을 하고 아주 더운 날씨였지만 열심히 농구연습을 하는 내 또래의 학생들을 보기도 했다. 오노 선생님 댁을 방문하였는데 선생님의 집은 생각보다 작았다. 우리나라라면 선생님들 집은 나름 큰 집일 텐데 일본은 그렇지 않았다. 평균소득도 우리나라의 배에 가깝다고 들었는데, 그런 면에서 정말 검소하게 산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날 일정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서 생각을 해보니 일본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고 우리나라와 얼핏 비슷하게 보이지만 사실은 굉장히 달랐다. 잘 사는 나라이지만 자동차들의 크기가 아주 작아서 의아했지만 직접 타봤을 때는 그렇게 좁다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두 번째 날, 시청을 방문했고 아주 크다는 것과 시청에서 일이 있어 방문하면 대부분 의 업무가 원스톱으로 1층에서 다 일을 해결하고 돌아간다고 해서 신속한 업무처리로 민원인을 만족시키는 모습이 상상이 되었다. 뒤이어 `오이타현립 도서관`을 방문하였는데 도서관 규모가 정말 크고 몇 만권의 도서를 소장하고 있으며 축구경기장 만한 크기라는 말이 상상이 되지 않았다. `이렇게 큰 도서관도 있구나!` 하며 감탄했다. 그렇게 둘째날도 오노 선생님의 안내로 오이타현의 국제교류센터 등 여러 기관의 이모저모를 살펴보았으나 오전을 끝으로 선생님과의 일정을 끝내게 되어 많이 아쉬움이 남았다. 88올림픽부터 한국어를 배우셨다고 하셨는데 한국어를 정말 잘하시고 아주 친절하신데다 인상도 푸근하시고 통역까지 다 해주시는 모습이 우리 할아버지처럼 느껴졌다. 정말 감사했던 분인데 그렇게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세 번째 날도 더웠다. 푹푹 찌는 날씨가 힘들었지만 우리나라로 치면 팔공산 갓바위처럼 입시, 입학 등 소원을 비는 다자이후 텐만구를 견학했다. 그곳에서 일본 만화에서나 보던 줄에 종이 매는 걸 해봤는데 알고 보니 돈을 내는 유료였다. 솔직히 좀 아까웠지만 나의 미래를 탄탄하게 열어줄 수 있게 도움을 줄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내심 좋아했다. 기념사진 몇 장을 찍고 이동해 기차를 타고 내려 보니 뭔가 허전했다. 카메라를 놔두고 내린 것을 안 순간부터 모두가 잠시 암울했다. `아직 볼게 많은데 찾지 못하면 어쩌나 단체 사진도 못 찍고 이렇게 가는 건가` 이런 생각으로 좀 불안했다. 직원마저도 찾는 건 힘들 거라고 찾으면 다행이지만 일본사람들이 좋은 카메라는 가져가 버린다는 말에 우리 일행은 더욱 침울했다. 그렇게 카메라 없이 이동하고 구경했다. 그리고 다시 직원이 오라고 한 시각 다시 가보니 이게 웬일인가. 국장님 손에 있는 것은 카메라가 아닌가!! 그렇게 우리는 다시 웃을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다시 일본의 지하상가를 구경하고 저녁시간이 되었다. `케널시티 라면타워`라는 곳으로 기대를 안고 갔다. 만화에서 보면 일본라면은 우리나라 라면과는 그림만 봐도 다르다. 라면가게를 들어가려고 하는데 입구의 자판기가 눈에 띄어 보니 메뉴를 선택하고 돈을 넣고 종이를 뽑으면 계산이 끝나고 주방으로 연결되어 음식을 만들어서 내어준다. 내가 4번째에 앉았는데 직원이 실수로 내 앞에서 라면그릇을 엎질러버렸다. 나는 타고난(?) 반사 신경으로 피해서 다치지 않았지만 라면이 아까웠다. 옷에 국물도 몇 방울 튀긴 했는데 어두운 색의 바지라서 별 상관없었다. 그런데 사장님이 나오셔서 자꾸만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셔서 나는 정말 괜찮은데 거듭되는 사과에 오히려 내가 미안할 지경이었다. 그렇게 정리가 되고 다시 라면이 나오는데 1분도 안 걸려 다시 나온 라면을 드디어 한입 먹었다. 정말 맛있었다. 우리나라의 라면과는 또 뭔가 다른 심오한 맛이었다. 사실 고기가 들어가 있어서 좀 느끼하고 맛없을 것 같았는데 막상 먹어보니 달랐다. 국물까지 맛있게 다 먹었다. 그리고 모두에게 주스까지 대접해 주시는 사장님께 고마운 마음에 친구 2명과 함께 라면가게 사장님과 사진을 찍었다. 그 가게 또 가보고 싶다. 저녁을 다 먹고 잠깐의 자유시간이 지나고 우리는 오늘이 일본을 구경할 수 있는 마지막 날이라는 조급한 마음에 먹을 수 있는 것을 모두 경험해 보려 했다. 그런데 이동하는 도중 2명이 없어졌다. 큰일이다. 찾으러 갔던 누나마저 길을 잃어버렸다. 우여곡절 끝에 모두 찾아 잠깐의 긴장이 풀리자 출출해져 다 같이 모스햄버거를 먹고 다시 이동했다. 발이 너무 아파서 숙소로 들어가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아쉬워 좀 더 관광을 하던 중 옆에 친구가 카메라를 잃어버려 마지막 날 밤까지 사진 열심히 찍었던 추억이 모두 날아가 버려 불쌍했다. 나는 숙소로 들어가자마자 잠이 들어버렸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날 아침 눈을 떠보니 국장님과 제일 늦게까지 관광했던 친구가 옆에 있었다. 정말 재밌는 일본여행이었다. 3박 4일 길면서도 짧은 여행이었다. 어머니의 말씀에 의하면 경비의 많은 부분이 지원되었고 그 덕분에 그래도 좀 적은 부담으로 즐거운 여행을 할 수 있었음을 국장님을 비롯한 많은 분들께 감사를 드린다. 다음에도 기회가 된다면 일본 또 가고 싶다. 일본에 직장을 얻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우리는 일본을 무시하고 싫어하지만 일본사람들은 우리나라 사람을 그렇게 대하지 않고 아주 친절하고 포용적으로 대해주는 모습에 나는 사실 좀 감동받았다. 항상 일본얘기만 나오면 쪽바리라고 하면서 빈정대기만 했는데 일본사람들은 우리에게 고맙게 대해주었다. 이런 경험들이 미래에 우리나라와 일본이 좀 더 가까워 질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 사업(한?일 홈스테이 프로그램)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활성화되어 지원도 많아져서 후배들에게 좋은 경험을 체험할 수 있는 학생들이 많이 생겨난다면 미래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민간사절로서 과거의 감정에 갇혀 좁게만 보던 시야를 넓혀 더 크고 멋진 우리의 미래를 위해 일본과 좋은 파트너로 협력관계를 이루며 멋진 일들을 많이 이루어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유난히 더웠던 2010년의 여름! 일본에서의 3박 4일 내 인생에 영원히 잊지 못할 추억의 한페이지가 될 것 같다.
최종편집:2025-05-19 오후 06:3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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