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이야기가 있다.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세상에 보내면서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 세 가지만 골라 오라고 하였다. 천사들은 세상에 와서 꽃과 아기의 웃음과 어머니의 사랑 이 세 가지를 골라서 갔다. 그런데 정작 하나님 앞에 이 세 가지를 내놓았을 때는 이미 세월이 흘러서 꽃은 시들어 버렸고, 아기는 커서 어른이 되어 그 천진하고 귀여운 웃음을 잃어 버렸으나, 다만 어머니의 사랑만은 변치 않고 그대로 남아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어머니의 사랑을 땅위에 있는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물론 이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을 말한 것은 아니고 이 땅위에서 부모의 사랑, 특히 어머니의 사랑만은 언제나 변하지 않는 가장 아름다운 사랑이라는 것을 말하여 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사는 인간의 사랑 가운데서 ??아가페??의 모습, 즉 항상 내어주고 무제한으로 자기를 희생시키는 사랑의 모습을 자녀에 대한 부모의 사랑에서 가장 뚜렷하게 보는 것이다. 그러기에 부모와 자녀의 이야기는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서나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이러한 부모의 사랑에 대하여 자녀는 마땅히 존경과 사랑으로 응답하는 효도를 하여야 하고, 그 부모는 이 사랑을 항상 지혜롭게 풀어 자녀를 훌륭하게 기르는 건설적인 방향으로 교육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부모와 자녀간의 사랑도 ??아가페?? 바로 그것은 아니다. 부모에 대한 배반과 반역의 이야기는 너무나 많으며, 부모의 사랑이란 것도 항상 배타적 독점적이고 이기적인 요소를 품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부모의 사랑과 은혜는 가장 숭고한 것임에 틀림없으나 결코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그러기에 부모에 대한 효도를 가르친 그리스도의 십계명은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을 다섯 번째에 두었다.
전통사회의 가족제도는 우상숭배의 폭군제도였다. 부모의 사랑도 한계가 있고 부모의 능력도 한계가 있다. 그러기 때문에 부모는 공경할 대상이지 절대 복종의 대상이 아니다.
부모의 자녀에 대한 태도도 마찬가지다. 내가 낳아서 내가 키워놓은 내 자식이라는 이유로 그 자녀는 내게 대하여 무조건 복종해야 된다든가 내가 뜻한 대로 성장하고 내가 원하는 길에서 살리라는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된다. 내가 낳아 기른 자녀라도 일정한 나이가 되면 엄연히 독립된 인격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