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3일 새벽 4시 30분에 기상을 했다. 성주군청 앞에서 5시 30분까지 모이기로 했는데 아직 시간이 남아서 그런지 나를 포함해서 3명밖에 없었다. 드디어 5명이 다 모이자 우리는 부모님께 인사를 하고 류충하 국장님께서 불러주신 택시를 타고 대구로 갔다. 그런데 4인승 택시를 5명씩 건장한(?) 아이들이 탄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가는 길에는 차가 별로 없어서 약속시간 전에 도착을 했다. 거기서 가이드 누나를 만나고 공항행 버스표를 받고 버스에 탑승을 했다. 역시 성주버스와는 급이 달랐다. 그리고 2시간 가량을 달린 끝에 김해공항에 도착했다. 검사대를 통과하고 나니 면세점이 있었다. 면세점에 들어가 보니 달러로 가격이 표시돼 있었다. 물건들이 많이 비쌌다.
드디어 표를 내고 비행기에 탑승했다. 비행기는 처음 타보는 거라 많이 긴장이 됐다. 그런데 비행기 좌석이 따로따로 되어 있었다. 그래도 멀리 안 떨어져 있어서 다행이었다. 드디어 비행기가 달렸다. 비행기가 올라갈 때 시속 100km/h로 달리는 것 같이 몸이 뒤로 넘어갔다. 그리고는 비행기에서 종이를 주었는데 영어로 되어 있어서 어떻게 적어야 할지 몰라 국장님께 도움을 요청했다. 국장님이 적어주신 종이를 똑같이 적은 후 한자로 이름을 써야 하는데 한 글자 밖에 몰라 도우미 누나한테 전자사전을 빌려 그냥 성과 이름을 쳐서 나오는 한자 첫 번째 거를 적었다.
1시간 가량이 지난 후 비행기가 착륙했다. 그런데 일본 아스팔트가 오래된 건지 진동이 장난이 아니었다. 후쿠오카 공항에서 바로 버스를 타고 하카타 역으로 갔다. 거기서 오이타 역으로 가서 오노게니츠상을 만났다. 두 분 다 인상이 좋으셨다. 우리는 오노게니츠상과 차를 나눠서 탄 다음 대제중학교를 갔다.
대제중학교에 도착하니 축구부가 연습을 하고 있었다. 나도 축구에 관심이 있던 지라 연습하는 거를 지켜봤다. 그라운드가 흙이어서 조금 아쉬웠다. 그리고 교장선생님을 만나 뵙고 농구부가 연습하는 곳을 갔다. 거기 농구부는 오이타현에서 우승을 여러 번 했다고 소개해 주셨다. 농구부와 인사를 한 다음 농구를 잠깐하고 시간이 없어서 우리는 오노게니츠상 집에 들렀다.
일본 사람들은 개방을 꺼린다고 한다. 오노게니츠상이 마음이 넓어서 그런지 부탁을 하니까 단번에 허락을 해줬다고 한다. 오노게니츠상 집에 가보니 미닫이문으로 되어 있었다. 오노게니츠상 어머니께서 나를 무척 귀여워 해주셨다. 집에는 여러 신을 모시는 것 같았다. 화장실은 1평도 안되게 작았고 소변기와 대변기가 따로 있었다. 한 사람이 들어가면 꽉 찰 정도로 작았다.
우리는 오이타현에서 벳부로가서 우동을 먹고 sea-wave hotel에 갔다. 2인1실이었다. 호텔 뒷 건물에는 실내 온천도 있었다. 호텔에서는 자유시간이었다. 일단 온천에 가서 피로를 푼 후 아이들끼리 밖에 나와서 돌아다녔다. 아이스크림 가게도 가보고 마트도 가 보았다.
호텔 안은 다행히 한 채널은 한국 채널이 나왔다. 무척 반가웠다. 우리는 이미지 게임과 눈치게임 등 많은 게임을 했다. 시간을 보니 2시 30분 정도 되었다. 우리는 각자 방으로 가서 잠을 청했다.
이튿날은 6시에 기상을 했다. 아침은 호텔 식당에서 양식을 먹었는데 맛이 그럭저럭이었다. 그리고 오노게니츠 상과 오이타 시청을 견학했다. 오이타 시청에 갔는데 엘리베이터가 완전 멋졌다. 층마다 색이 달랐다.
밖에는 축제를 준비해서 종이로 만든 커다란 사무라이 인형이 있었다. 거기서 기념촬영을 하고 안에 들어 와서 천사 같은 안내원 누나와 기념촬영을 하고 시청을 나와서 오이타 현립도서관에 갔다. 도서관이 무슨 박물관처럼 완전 컸으며, 우리 성주도서관가는 급이 달랐다. 1층에는 시민들이 빌릴 수 있는 곳이고 지하에는 자료 같은 것이 있었다. 거기는 가로, 세로, 넓이가 축구장 만하다고 했다.
다음에는 기차를 타고 유후인으로 갔다. 관광지인 것 같았는데 말 택시도 있고 기념품 상점이 많았다. 거기서 기념품을 3천엔 정도 사고 견학을 한 다음 보통 열차를 탔다. 호텔에 도착하니 시간이 많이 남았다. 그래서 아이들과 온천을 간 다음에 밖으로 나가 역마트도 가보고 식당도 가보았다. 그리고 호텔에 들어가서 카드게임을 하고 나서 나는 일찍 잠이 들었다.
8월 5일 아침 7시에 기상을 해서 빨리 씻은 후 호텔 식당으로 가서 이번에는 일식을 먹었다. 그냥 그 호텔은 재워 주기만 해야 될 것 같다.
우리는 후쿠오카에 간 후 신사를 견학했다. 신사에서 돈을 넣고 참배를 한 후 기념촬영을 했다. 외국인도 만났다. 우리는 기차도 타고 버스도 타서 케널시티에 갔다. 케널시티백화점은 매우 컸다. 거기서 라면을 먹었는데 라면이 한국라면과 달리 매우 맛있었다. 병후는 그 가게에 단골이 되고 싶다고 고백(?)했다.
우리는 라면집 사장님과 기념 촬영을 한 다음 오락실에 들어갔는데 카지노가 따로 없었다. 언뜻 보면 어린이 오락실 같은데 안에 기계들을 보면 바다이야기를 연상케 할 정도로 도박 기계가 많았다. 케널 시티에서 나와서 햄버거 집에 들어갔다. 햄버거가 수제햄버거 인지 맛이 틀렸다. 크기는 작은 데 맛은 일품이었다.
호텔에서 마지막을 보내는 우리 일행은 마지막 밤을 이렇게 보낼 수 없다며 막 돌아 다녔다. 우리는 마트에 가서 기념품을 사고 버스를 10분 정도 앉아서 기다렸다. 버스를 타고 내렸는데 디카가 없어졌다. 아무래도 버스 안이나 기다리다가 잃어버린 것 같아서 한참 우울해져 있는데 국장님이 보험 들어 놨으니 걱정하지 말라며 위로 아닌 위로를 해주었다. 우리는 호텔에 돌아와서 우울한 마음을 안고 잠이 들었다.
6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후쿠오카 공항에서 비행기를 탔다. 그런데 스튜어디스가 한국사람이었다. 왠지 반가웠다. 1시간 후 부산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예상 외로 일찍 도착한 탓에 1시 버스를 타고 대구로 출발해 2시간가량을 달린 후 대구에 도착했다.
우리는 택시를 타고 성주군청으로 가는데 택시 안에서 개그가 빵빵 터졌다. 이때까지 했던 개그 중에서 제일 웃겼었다. 우리는 웃으면서 성주에 도착했다 기사아저씨께 인사를 하고 우리는 각자 집으로 갔다. 내년에 하면 또 가고 싶은 그런 프로그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