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고향의 그 고개는 꽤나 높아 보였다. 백두대간의 한 줄기인 매봉산에서 황산뫼를 거쳐 뻗어 내려온 산세는 마을을 감싸는 듯 나지막이 이어지는데 그 가운데 마을의 수호신인양 큰 소나무 한그루가 서있고 그 아래로 50호가 채 되지 않는 마을이 자리잡고 있다. 멀리 남쪽으로는 가야산이 버티고 있는 산골로 그야말로 하늘 밑 첫 동네라고 할 수 있다. 뒷산 매미재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삼태기에 마을이 담겨있는 형상인데 동쪽으로는 불당골이 있고 장지바우(장수바위) 대실재, 각골, 이양골, 오독실, 텃골 등이 있는데 고향의 지명들은 언제 불러도 정겨운 이름들이고 유년시절의 추억이 서린 곳이기도 하다. 마을 앞으로는 아마 방풍림으로 인공적으로 조성했을 숲이 있는데 마을안쪽은 숲안, 바깥쪽은 숲밖이라고 부르는데 지금은 나무들이 얼마 남지 않아서 보기가 좋지 않다. 새치고개라는 이름으로 불리어진 그 고개는 온갖 사연이 많이 쌓였던 곳이고 아이들의 꿈을 키우던 곳이기도 했다. 십리길이나 되는 초등학교에 갈 때도 그 고개를 넘어 걸어 다녔었고 여름방학 때 소 먹이러 갈 때도 꼴을 베어 지고 갈 때도 수없이 넘고 또 넘었다. 읍내장에 갈 때나 외지로 나가는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 언제부터인가 나의 가슴 속에는 그 고개 저 너머 넓은 세상에 대한 동경심으로 가득 차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좁은 산골마을을 벗어나 보다 더 넓은 미지의 세계에서 꿈을 펼치고픈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보이지 않는 운명의 끈에 이끌려서인가 나이가 들어 그토록 바라던 넓은 세상으로 나가게 되었을 때 거기에는 더 높고 험한 고개가 버티고 있었으니 그것은 각박하고 냉엄한 현실이라는 존재였다. 황량한 사막에서 길을 잃고 헤매이는 방랑자가 나오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험한 세상에 혼자 뛰어들어 걸어가야 하는 나의 모습이 그랬던 것 같은데. 쓰러졌다 다시 일어나 걸으며 비틀거리는 자신을 추스르느라 나는 한동안 가쁜 숨을 몰아쉬어야 했었다. 삶이 고단하고 힘이 부칠 때에 그 고개를 생각했다. 수없이 넘나들며 꿈을 키우고 미래를 설계하며 희망을 노래하던 고개. 어머니의 손을 잡고 외갓집 가던 길이기도 했던 고개. 내 마음속 그 고개는 너무나 때묻고 더러워진 나의 영혼을 깨끗하게 씻어주는 정화수가 되기도 하고 상처받은 가슴을 치유해주는 용한 의원이 되어주기도 했다. 어려서부터의 꿈이었던 환쟁이가 되어 붓질을 업으로 삼으면서 지금까지 수많은 화선지가 먹물에 젖고 셀 수없는 새붓들이 몽당붓이 되었어도 이 무딘 손으로는 참으로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고 아까운 종이와 먹물만 축내었으니 그저 부끄러운 마음만 남았을 뿐이다. 이제 이순(耳順)의 나이에 귀를 열어 좋은 소리를 많이 듣고 좋은 생각만 하면서 하늘의 뜻을 깨닫고 그에 순응하는 삶이 되어 그렇게 화도(畵道)의 길을 걸어가기를 나는 소망한다. 우리가 꿈꾸는 이상향. 수많은 성현들이 찾고자 했던 그 본연의 세계. 잃어버린 에덴동산 그 본향땅을 붓끝으로 이루려는 심정으로 끊임없이 먹을 갈고 붓질을 해야 하리라. 세월이 지나 고향의 그 고개는 무주로 가는 국도가 마을 앞으로 나게 되면서 산허리가 잘리어 고갯길이 끊어져 버리고 말았다. 새로 난 큰 길로는 크고 작은 차들이 씽씽 달리고 마을은 관광지 가 되어 서울까지 소문이 난 촌두부집이 TV에도 나오고 유명해 지기까지 했는데 옛날 모습의 고향은 찾아볼 수가 없는데 유행가 가사처럼 그야말로 고향무정이 되어버린 것이다. 태어나 자라던 집도 남의 손에 넘어간 지가 오래이고 지금은 헐려서 빈터만 남아 있는데 가끔 내려가서 볼 때마다 가슴이 미어진다. 젊은이들은 도회지로 떠나고 연세가 높은 어른들은 거의 돌아가시고 오히려 외지에서 들어온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다.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 곳 없다던가? 너무나 변해버린 고향이 낯설기까지 하다. 고향을 지키는 친구도 없고 친척들도 하나 없는 그곳으로 조상의 산소를 찾아 일년에 한 두번 찾는 게 고작인데 다녀올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그렇지만 어릴 적 추억이 서린 그 고개 지금은 내 마음 속에 살아있는 고개. 그 마음의 고개를 넘어 이제 나는 다시 그곳으로 향한 수구초심(首丘初心)의 간절함으로 가슴앓이를 하고 있다. 그토록 동경하던 크고 넓은 세상에서 그렇게 떠나고 싶어 했던 좁은 시골마을로 나는 돌아가려 하는 것이다. 반기는 이도 없고 쉴 집도 없는 그곳으로 왜 가려하는가? 그러나 어머니의 품 같은 넉넉함으로 고향의 산과 나무들은 반갑게 맞아주지 않을런지… 내가 꿈꾸는 조그만 소망이 있다면 고향에다 미술관을 짓고 평생 동안 그린 그림을 걸어두고 오가는 이들에게 보여주면서 사정이 허락된다면 옛날 화가를 양성하던 도화서와 같은 학교를 하나 세워서 옛 방식대로 교육하며 후학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싶다. 지금의 미술교육은 서양화 위주의 교육으로 일관되다 보니 우리의 전통회화는 점점 뒷걸음질하고 있고 우리의 정체성도 확립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인 것이다. 미술대학에서 한국화를 전공하려는 학생이 없다보니 폐강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고 있고 그림을 구입하는 컬랙터들도 한국화는 거들떠보지도 않는 어처구니 없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지금 어떤 특단의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전통회화 자체가 사라질 위기인 것이다. 그래서 그곳이 명소가 되어서 고향을 알리는 일이 되고 우리 한국화를 살리는 조그만 디딤돌 이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으리라. 이제 나는 또 다른 꿈을 품고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면서 고향의 그 고개를 생각하려 한다. 꿈은 이루어진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래. 가리라. 언젠가는 가리라. 나는 꼭! 돌아가야 하리라.
최종편집:2025-05-20 오전 09:3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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