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던 날 저녁식사를 마치고 나는 아들 내외와 함께 담소하는 가운데 중국여행에서 있었던 얘기를 나누었다. 나는 일주일 내내 매일 오전에 세 시간씩 강의를 하게 되어 어디로 놀러 가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그러나 연변대학농학원 측에서 함께 간 집사람과 재단 간사를 위한 별도의 관광 여행 프로그램을 만들어주었다. 얼마나 친절하고 자상한 배려인가? 나는 마음속으로부터 이분들에게 감사를 드리고 싶었다. 출국하기 전에 옵션투어로 세 가지 코스를 만들어 보내 주었는데 내자는 그중 제1안을 택하였고 나는 그것을 연변에 알려 주었다.
제1안에 따르면 연길에서 국내선으로 심양을 가면 그곳에서 나의 박사과정 제자이자 사료공장을 경영하고 있는 김승범 박사가 두 사람을 직접 안내하여 단동으로, 압록강으로, 집안으로, 백두산으로 다니는 4박 5일의 관광프로그램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내가 늘 가보고 싶어 하던 그런 곳이 다 들어 있어서 나는 같이 못 가지만 그저 부러워만 하였다. 집사람은 단동에서 북한 신의주가 마주 보이는 압록강 뱃놀이를, 그리고 집안으로 가는 길에는 중국이 새로 발견한 동굴을, 집안에서는 광개토대왕 비석까지 보았다고 한다. 그리고 백두산 중턱에 있는 호텔에서 유숙하고 마지막 날 백두산 천지 를 보고 연길로 돌아왔다. 이곳저곳 관광명소를 찾아 이동을 하다 보니 자연히 하루에 이삼백 킬로미터씩 자동차를 타야 했을 것이다. 여행이란 원래 좋은 구경을 많이 하지만 피곤할 수밖에 없다.
문제의 발단이 여기에 있었다. 집사람이 구경을 잘 했다든가, 안내를 맡았던 김승범 박사와 연변대학농학원 국제교류부 직원들이 숙박비를 물어주고 여러 날 함께 고생해줘서 정말 고마웠다든가 라는 인사말은 일절 없고 그저 차 타기가 힘들었고 고생스러워서 내가 왜 왔던가 라는 생각만 했다는 불평만 늘어놓는 것이다.
비행기 표 값을 물어준 나와 숙박비를 물어주고 자동차를 내준 사람들의 호의는 어디로 갔단 말인가? 집사람이 그렇게 불평하는 것이 아니지. 4박 5일 동안 다른 사람들이 쉽게 볼 수 없는 것을 많이 보고 왔으면 일단 감사한 생각, 특히 경비를 물어주고 안내를 해준 사람들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가져야지 사람의 도리가 아니겠는가?
이런 얘기를 아들 내외와 하는 과정에서 내 목소리가 좀 컸고 또 변명하는 집사람의 목소리도 조용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우리가 집에 도착한 시간이 저녁식사 시간이어서 저녁밥을 어떻게 하나 걱정하고 있던 차에 며느리가 곰국을 끓여가지고 와서 저녁밥을 지어 줬으니 우리 아들과 며느리는 이만하면 자랑할 만한 자식들이라고 할 것이다.
우리가 끝내 여행 중에 있었던 얘기를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인데 어떻게 하다가 그만 집사람의 옵션투어에 대한 불만 얘기가 나왔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언쟁 아닌 언쟁을 하는 광경을 본, 내년에 중학교에 들어갈 손주 한동운이 집으로 가는 차안에서 저의 아빠에게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왜 아규(argue, 다투거나 싸우는 일)하셨느냐고, 그 원인이 무엇이며 누가 잘못한 것인가고 꼬치꼬치 묻더라는 것이다. 애비는 하는 수 없이 자초지종을 얘기해 주었다고 한다. 할아버지와 할아버지 제자의 호의를 할머니가 감사해 하지 않고 불평을 해서 생긴 문제라고 설명했다는 것이다.
이들이 떠난 지 30분 후 여느 때처럼 잘 도착했노라고 손녀딸 한수빈(초등학교 2년생)이 전화를 했다. 그런데 제 할머니를 좀 부끄럽게 한 것은 수빈이가 가는 목소리로 "할머니, 할아버지와 싸우시지 마세요" 라고 하더라는 것이다. 손주, 손녀 앞에서 할아버지, 할머니는 물론 부모가 싸워서는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집사람이 아직까지 그때 일을 나에게 정식으로 사과한 일은 없지만 여러 가지 정황을 짐작컨대 다소 후회하는 것 같은 눈치가 완연하였다.
사실 그날 내가 속상해했던 일은 비단 이일 뿐만은 아니었다. 연길국제공항에서 출국수속을 밟는 것은 참으로 불쾌한 일 중의 하나였기 때문이다(2007. 7.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