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학생 및 학부모의 호응 속에 10명의 NIE 집필위원이 각각 다른 주제로 매주 4명씩 신문활용교육자료를 연재해 왔지만, 독자들의 요청에 의해 이번 주에는 앞서 게재된 자료를 바탕으로 주제별로 분리해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정리함으로써 독자의 흥미와 이해도를 높여 NIE의 효과를 극대화하고자 한다.【편집자 주】 ▣ 변화된 우리 성주 김주현 성주중앙초등학교 교사 우리고장은 성산가야의 옛 도읍지이다. 기름진 들을 중심으로 오랜 옛날부터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다. 신라, 고려, 조선시대를 거치는 동안 고유의 전통 문화를 꽃피웠으며, 훌륭한 인물이 많이 태어났다. 문화의 고장, 선비의 고장답게 전통 문화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곳도 많다. 우리 고장의 이름 연표 △아득한 옛날 : 성산가야와 벽진가야가 세워짐 △ 통일신라 : 성산군으로 분리된 후 경산부로 변경 △ 고려 : 경산부, 광평군, 대주도호부로 변경된 후 다시 경산부로 변경 △ 고려(충렬왕) : 성주목으로 변경(성주라는 이름이 처음으로 사용됨) △ 고려(충선왕) : 다시 경산부로 변경 △ 조선(태종) : 다시 성주목으로 승격 △ 조선(고종) : 성주군으로 변경 △ 대한민국(1979년) : 성주면이 성주읍으로 승격 △ 대한민국(1988년) : 전국의 각 동이 ??리??로 변경 ▣ 성주 문화재 우리 고장 성주는 성산가야의 옛터전으로 선비의 고장이며, 훌륭한 인물이 많이 태어난 곳이다. 곳곳에 조상들의 정신이 깃든 귀중한 문화유산이 많이 있다. △성주 향교 조선시대의 지방 교육기관인 성주향교는 대성전?명륜당이 보물로 지정되었으며 짓는 방법이 드문 방식으로 지어서 향교 건축물 중에서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 △세종대왕자태실 예로부터 태는 생명이 시작되는 것으로 여겨서 함부로 버리지 않고 소중하게 보관하여 왔다. 우리 고장에는 세종대왕의 왕자들과 세손의 태무덤이 19기 있으며 전국에 있는 태실 가운데 가장 많은 무덤이 한 자리에 모여 있는 곳으로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 △성주 경산리 성밖숲 옛날 성밖 마을에 좋지 않은 일이 이어져 이를 방지하기 위하여 숲을 조성하였다고 전해지며 300년에서 500년 된 왕버드나무 59그루가 이루고 있는 숲은 고장 사람들의 휴식, 체육 행사장 등으로 널리 이용되고 있다. △한개마을 옛날 양반들과 서민들의 집 모양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한개마을은 성산이씨들이 대를 이어 함께 살아가는 마을이다. △그 외 석조비로자나불좌상, 성산동 고분군 등이 있다. ▣ 성주의 행사 우리 고장에서는 향토 문화를 계승하고 군민의 화합을 다지기 위하여 해마다 다양한 문화 행사가 열리고 있다. 점차 행사가 조금씩 변해가고 조금씩 간소화되고 있지만 예로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우리고장의 문화를 계승코자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다. 그러므로 우리 고장의 행사가 무엇이 있는지 알아보고 직접 참가해 봄으로써 우리 고장에 대해 더욱 더 잘 알 수 있는 기회를 가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1. 성주참외축제 -성주참외 축제는 우리 고장의 특산물인 성주참외를 널리 알리고 고장의 발전을 위해 군민 모두가 하나 되는 큰 잔치이다. -참외품평회, 참외반짝경매, 성주참외아줌마 선발대회 등 다양한 행사가 열리고 이 때 성주문화제 행사도 함께 열린다. 2. 세종대왕자 태 봉안식 재연 -태 봉안의식은 왕자나 공주의 태를 좋은 땅에 묻는, 우리나라 독특한 의례이다. -이 의식은 태 봉출의식, 태 봉안행차, 봉안의식, 봉안축하연으로 이루어지는데, 서울 경복궁에서의 태 봉출의식을 시작으로, 성주에서 태 봉안행사가 이루어진다. 3. 거자약수 축제 -우리 고장에는 자작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으며 이 자작나무의 물을 마시면 몸에 좋다고 하여 약수로 마신다. -나무에 물이 가장 많이 오르는 곡우(4월 20일경) 전후에 많은 사람들이 우리 고장을 찾아오고, 우리 고장에서는 이 시기에 거자약수축제를 연다. (가천면 신계리, 용사리 일대와 금수면 무학리 일대) 4. 성주 군민의 날 -1992년에 처음 제정된 것으로 매년 5월 26일을 군민의 날로 정하여 행사를 열고 있다.(2000년부터는 격년제) -군민의 화합과 우리 고장의 발전을 위하여 군민의 날 기념식을 하고, 군민 대상 시상식(지역 개발, 향토 봉사, 소득 증대, 교육 문화 체육, 효행 분야)도 한다. 5. 해맞이 및 군민안녕 기원제 -매년 1월 1일 새해를 맞이하면서 찬란히 떠오르는 해를 보며 간절한 소망과 행복을 빌고 군민의 정성과 뜻을 모아 가야산 군민화합공원(군민화합석 앞)에서 성주군의 번영과 발전을 기원하기 위해 열린다. ▣ 역사속 인물 우리 고장은 가야문화의 맥이 이어지는 유서 깊은 곳으로 고장을 빛낸 훌륭한 인물을 많이 배출하여 선비의 고장이라 불리기도 하였다. 우리도 또한 고장을 빛낼 수 있는 성주인이 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1. 벼슬과 학행으로 이름난 동강 김우옹 선생 성주 사람들은 흔히들 ‘양강(兩岡)’이라는 말을 자주 하는 것을 듣는다. 양강이란 동강 김우옹 선생과 한강 정구 선생을 말한다. 두 분은 같은 시대에 태어나(동강은 1540년생, 한강은 1543년생) 벼슬과 학행이 시대를 주름잡은 것이 비슷하여 후세 사람들은 이 두 분을 근세조선 중엽 이후 성주의 대표인물로 친다. 성주군 10개 읍면 중 대가면은 동강, 한강 등 큰 인물이 많이 태어난 곳이라 하여 ‘대가(大家)’란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동강 선생은 용모가 뛰어나게 잘 나고, 기질이 단아하며 말하는 것이나 노는 것이 어릴 때부터 보통 아이들과는 달랐다. 강직한 성품으로 충신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학문에 조예가 깊었으며 퇴계 이황의 제자가 되어 퇴계의 높은 학문의 정맥을 이어 받았다. 2. 마라톤 대한민국 빛낸 의지의 마라토너 이창훈 한국과 일본이 수교하기 전 1958년 5월에 있었던 제3회 도쿄 아시안게임에 출전, 침략자의 기운이 채 가시지 않은 일본 땅에 식민지 조선인의 후예가 당당히 1위를 차지하는 자랑스러운 업적을 쌓은 성주 출신의 마라토너가 있었으니, 일장기를 달고 올림픽에 출전할 수밖에 없었던 한을 가지고 있던 손기정의 문하생이자 나중에 사위가 된 이창훈이 바로 그 사람이다. 그는 손기정-서윤복-함기용의 뒤를 이어 한국 마라톤의 초창기를 밝게 빛낸 한 사람이었다. 3. 충성으로 일관한 이조년 선생 시문에 뛰어 났으며 많은 명성과 공적을 남겨 충신으로 일관함(고려시대) 4. 경제에도 능한 개국공신 배극렴 선생 경제에 밝아 나무심기와 관개시설로 백성의 복지사업에 힘씀(고려시대) 5. 독립운동과 반독재 선봉에 평생을 바친 심산 김창숙 선생 국민 계몽과 민족의식 고취에 노력하고 독립운동에 앞장 섬(조선시대) 6. 동방 심학의 대종 한강 정구 선생 경서, 병학, 의학, 역사, 천문 등 모든 분야에 통달하고 특히 예학에 특출하였으며 조선 중기 성리학의 대가임(조선시대) ▣ 성주의 전설, 설화 우리 고장에는 옛날부터 전해오는 이야기가 많이 있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오늘을사는 우리의 정신적 뿌리요, 마음의 고향이며, 조상의 얼이 담긴 소중한 유산이다. 1. 감응사의 약수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한개마을) 소재 영취산 중턱에 있는 감응사는 지금부터 약 1200여년 전 신라 애장왕이 늦게 아들을 얻었으나 왕자가 날 때부터 심한 눈병으로 앞을 볼 수가 없어 왕비는 왕자의 눈병을 고치기 위해 온갖 좋은 약을 다 써 보았으나 소용이 없었다. 어느 날 밤 꿈에 백발의 도인이 나타나 말하기를, “내일 아침 문 앞에 독수리가 나타날 것이니 그 독수리를 따라가면 약수가 있을 것이다. 그 약수로 왕자의 눈을 씻고 마시게 하면 눈병이 나을 것이다.”하고 사라졌다. 이튿날 아침 정말 독수리가 나타났다. 임금은 군사를 시켜 독수리를 따라가서 약수터를 알아내고 그 약수를 길어 오도록 하였다. 그 물로 왕자의 눈을 씻고 마시게 하였더니 눈병이 나았다. 왕은 약수터 은혜를 잊지 못 하여 절을 지었다. 이 절을 ‘감은사(感恩寺)’라 하고 후에 ‘감응사(感應寺)’로 명칭을 바꾸었다고 한다. 2. 효자 박구 이야기 박구라는 사람이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어머니께서 병으로 앓아 눕게 되어 온갖 약을 썼지만 병이 낫지 않았다. 어머니께서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복숭아가 먹고 싶다 하여 여러 곳을 돌아다녔지만 추운 겨울에 구할 수가 없었다. 어느 눈 오는 날 복숭아나무 밑에 꿇어앉아서 간절히 빌었다. “하느님, 우리 어머니께서 복숭아를 드시고 싶어 하십니다.” 다음날 아침 눈 덮힌 복숭아나무에 탐스럽게 익은 복숭아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이 소문은 널리 퍼졌다. 후에 어머니께서 돌아가시자 작구는 무덤 앞에 막을 짓고 3년 동안 어머니 묘소를 지켰다고 한다. 나라에서는 그의 효성을 널리 알리기 위해 효자비를 세워 효자각에 보존하였다. 3. 가야산 여신의 소원 옛 가야산에는 가야산의 모습과 같이 높고 성스러운 기품과 아름다운 용모를 지닌 ‘정견모주’라는 여신이 살고 있었다. 그 모습과 같이 곱고 착한 마음씨를 지닌 여신은 백성들의 갸륵한 소망을 들어 살기 좋은 터전을 닦아주려고 마음먹었다. 그리하여 그 큰 뜻을 이룰 수 있는 힘을 얻기 위하여 가야산 큰 바위아래에 제단을 차려놓고 옥같이 맑은 물에 몸을 깨끗이 씻은 후 하늘신인 ‘이비하’의 짝이 되게 해달라고 빌었다. 이렇게 빌기를 얼마나 하였는지 하늘신께서 소망을 이루어 주겠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하늘신 이비하는 오색구름 수레를 타고 가야산 상공에 나타났고 여신은 이를 맞이하기 위하여 목욕재계하고 잠자리 날개 같은 옷깃을 아지랑이처럼 나부끼며 맞이하였다. 뭉게구름 속에 방을 꾸미고 실구름으로 얽어서 가야산 높은 봉우리 상공에서 만난 하늘신 이비하와 가야산 처녀 산신은 이렇게 하여 부부가 되었다. 꿈같은 세월이 흐른 후 두 아이를 낳았다. 형은 얼굴이 이비하를 닮아 해와 같이 둥그스름하고 불그레하였다. 아우는 어머니인 여신을 많이 닮아 얼굴이 갸름하고 흰 편이었다. 형의 이름은 ‘주일’이고 아우는 ‘청예’라고 불렀다. 형은 자라나서 대가야국의 첫임금 ‘이진아시왕’이 되었고 아우는 자라서 금관가야의 ‘수로왕’이 되었다고 한다. ※성주문화관광 http://www.sjchamoe.go.kr/tour, ‘역사가 살아 숨쉬는 성주’ 교과서 발췌
최종편집:2025-05-20 오전 09:3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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