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나라 왕 조조에게 맏아들 조비와 둘째 아들 조식이 있었는데 조식은 총명하고 학문에 능하여 부모의 사랑을 받았고 조비는 권모술수에 뛰어났다.
형인 조비는 동생 조식을 몹시 질시하고 있던 중 조조가 죽고 조비가 왕위를 계승하게 되자 어느 날 조비는 구실을 붙여 동생 조식을 치죄하려 했다. 그러면서도 동생에게 조건부로 면죄부를 주겠다고 제시했다.
그것은 일곱 걸음을 다 걷기 전에 시 한 수를 짓되 제목은 `兄弟`로 하고 시 안에는 兄자와 弟자를 넣어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완성 시에는 살려주고 실패하면 목을 베겠다고 했다.
조식은 다음과 같은 시를 지어 읊으면서 형 조비 앞을 걸어갔다.
"콩을 삶는 데 콩대를 베어 때니(煮豆燃豆?)/ 솥 안에 있는 콩이 눈물을 흘리네(豆在釜中泣)/ 본디 같은 뿌리에서 태어났는데(本是同根生)/ 어찌 그리도 세차게 삶아대는가(相煎何太急)."
한 뿌리에서 나와 한 줄기에서 자란 콩이건만 콩대는 불이 되고 콩은 솥 안에서 눈물을 흘리는 두 형제의 비참한 현실을 일곱 걸음을 걸으면서 형제의 갈등을 노래한 소위 조식의 `칠보시(七步詩)`는 동서고금을 통하여 불목하는 형제지간에 경종을 주는 명시이다. 조비는 이 시를 듣고 자신을 부끄럽게 여겨 동생을 놓아주고 화목하게 지냈다.
우리는 지금 3·26 천안함사태와 11·23 연평도 포격사건으로 남북이 극도로 반목하고 있다. 남쪽에서는 "북한을 단호하게 응징하라." "또 도발하면 전투기로 폭격해서 초전박살을 내겠다."고 하고, 북한의 수뇌부는 "지구를 반조각 낼지언정 사회주의체제는 포기하지 않는다." "우리 체제를 위협하는 어떠한 행위에도 몇 배로 보복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반만년의 우리 역사상 참으로 가장 수치스러운 현상이 지금 벌어지고 있다. 같은 뿌리를 가진 동족이니 민족이니 하는 의식은 헌신짝처럼 벗어 던지고, 한때 우리를 지배하고 침략했던 이민족과는 혈맹이니 우호니 하면서 동족간에는 서로를 죽이겠다고 칼을 갈며 으르렁대고 있다.
남쪽은 남쪽대로 이번 사태의 원인을 둘러싸고 분열과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햇볕 정책 10년의 탓이라고도 하고, 햇볕 정책을 묵살하고 대화를 단절한 그 후 3년의 결과라고도 한다. 서로 좌파 빨갱이니 우익 꼴통이니 하며 책임 분쟁이 한창이다. 세상이 바뀐 지가 언젠데 아직도 지구상에서 유일한 분단 국가로 남아서 이념 입씨름을 하고 있다니 한심하기 짝이 없다.
"님이여 나는 서방정토(극락세계)에 가지 않으렵니다. 죽어도 이 나라 한 점으로 있으렵니다."라고 노래했던 고 은 시인, 2005년부터 진행된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위원회 이사장을 맡고 있으면서 남은 생애를 걸고 남북통합 국어사전 편찬사업을 추진해 온 그가 연평도사태 얼마 전에 고향인 군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런 말을 했다.
"조국이 통일만 되면 이 나라를 떠나 민족을 잊고 싶다. 지긋지긋하다. 조속히 분단이 끝나길 바란다." 그의 참 뜻이 무엇이었을까? 통일에 대한 간절한 염원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말이었을까? 벼랑 끝에서 벼랑 끝으로 미는 이 현실을 두고 느끼는 피로감, 분단의 이 지긋지긋한 심정을 직설적으로 토로한 표현이었을까?
최인훈의 소설 `광장`의 주인공 이명준이 월북한 아버지 때문에 경찰에 시달리다가 6·25 전쟁이 일어나 의용군에 들어가 포로가 되고, 포로교환 때 북쪽의 끈질긴 종용에도 불구하고, 남도 아니고 북도 아닌 중립국을 택하여 인도행 배를 타고 가다가 자살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그도 이 민족이라고 하는 것을 잊고 싶어서였을까?
아니다. 이 민족을 잊을 수는 없다. 우리 조상들이 어떻게 이어온 민족인데! 아무리 통일의 길이 멀고 그 과정이 험난해도 우리 혈관에 흐르는 민족의 피는 부인할 수 없다. 우리는 남북이 한 민족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포기해서는 안 된다. 인내하고 관용하고 사랑하며 화평해야 한다.
또다시 도발하면 박살을 내겠다고 위협만 하지 말고, 도발하지 않도록 잘 관리하는 길은 없을까? 비록 억지 주장을 하기 위한 회담을 제안해도 이를 외면하지 말고 회담을 통해서 그들의 비행을 추궁해야 한다. 전행이 벌어져도 협상 라인은 유지하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전쟁을 하면 이길 자신이 만만해도 그것만은 피해야 한다. 그것은 남북의 공멸이요, 민족의 자멸이다. 연평도 포격 직후 "확전되지 않도록 관리를 잘하라"고 했다는 보도를 듣고 그때만큼 우리 대통령이 돋보였을 때는 없다. 아무리 나쁜 평화라도 어떠한 좋은 전쟁보다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