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발승 애가 닳게 가풀막 길 걸어 오르고
두어 됫박 햇살 쪼는 참새들의 소꿉놀이
낮달이 낮은 걸음으로 산등성이 넘는다
노인의 어깨 위엔 어둠 한 짐 얹혀 있고
오랜 세월 톱니처럼 녹이 슨 저 발자국
이따금 범무채 냄새가 한결 짙은 그날에
먹감나무 그늘같이 깊디깊은 우수를 묻고
연못 속에 제 스스로 다비식을 치르듯이
꽃 진 뒤 남루를 걸친 연잎 종이 거기 있다
잠시 머문 그 자리가 대적광전 꽃방석임을
철 지난 오늘에야 비로소 눈치 챘을까?
더러는 앉은뱅이꽃이 하얀 이도 드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