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종택이 퇴락한 모습으로 20년 넘게 허울뿐인 문화재로 버티어 오다가 1996년부터 띄엄띄엄 5,6년에 걸쳐 복원은 염두도 내지 못낸 채 보수가 완료되었다. 보수공사에 아쉬운 점도 있고, 문화재 관리에 비판적인 시각도 있지만 개인의 능력이 미치지 못하는 보수가 완료되고 보니, 문화재로서 단순한 개방에 앞서 적극적인 활용과 봉사의 방안이 없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러던 중 평소 향교나 예식장에서 양두구육식으로 전통혼례가 치러지는 광경을 보고 아쉬운 생각을 해오던 터라 1년에 3, 4회 정도 전통혼례식장으로 제공하기로 군청 관계자와 협의하여 들뜬 마음으로 군보에 게제하여 홍보했다. 그러나 2년이 넘도록 희망자가 없다. 풍문에 의하면 문화원 예식장에서는 이따금 전통혼례가 치러지는 모양이나 신청자가 없어서 전통혼례장 제공이란 조그마한 나의 봉사의 염원은 무산되고 말았다. 요즈음 결혼식이라면 응당 시장판 같은 예식장에서 치러지는 것이 풍습이 되고 말았지만, 우리 세대에는 신부는 연지 찍고 곤지 찍고 족두리 쓰고 활옷 입고, 신랑은 사모관대하고 신부 집 마당에서 차일치고 병풍 둘러놓고 예식 치르는 전통혼례가 반반으로 치러졌다. 그래서 혼례가 구식으로 치러졌는지 신식으로 치러졌는지에 대한 물음이 곧 잘 있었으며, 답변에 따라 상대방의 가정환경을 이해하는 잣대가 되기도 했다. 내가 장가가던 날, 아랫마을에도 장가가는 일가 청년이 있었다. 신행길을 먼저 나서야지 선(先) 신행길을 빼앗기면 복을 빼앗긴다며 새벽에 길을 재촉하시던 어머니의 성화에 못 이겨 건장한 체구의 함지기 하인 양이를 앞세우고 아직도 추위가 가시지 않은 음력 2월 5일의 차가운 새벽공기를 마시며 동리 앞 들길을 벗어나던 추억은 한편의 희극을 연상하게 한다. 초례청에서 절 몇 번 한 기억밖엔 없지만, 처가 아래채에서 맞이했던 첫날밤 신방 원앙금침의 따스하고 포근했던 감촉이 아직도 소록소록 되살아난 듯 황홀한 꿈속을 헤매이곤 한다. 드물지만 요즈음도 전통을 따르겠다며 전통혼례를 치르는 신랑신부가 있다. 그들의 마음가짐은 가상하고 아름답지만, 역시 혼례식만 얼기설기 흉내내고는 황급하게 신혼여행을 떠난다. 신혼여행 기간을 단축하여 하루 늦게 출발하더라도 신혼초야는 여관이나 호텔에서 뭇사람들이 사용하던 침구 속에서 맞이할 것이 아니라 처가에서 딸자식의 행복을 기원하며 정성스럽게 마련한 원앙금침 속에서 맞이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시대와 세속의 변화를 좇아 깊은 뜻과 살뜰한 보살핌과 알뜰한 정을 전통의 뒤안길에 묻어 버리기엔 너무도 아쉽고 허전하다. 자랑스럽고 훌륭한 전통 예식장으로 봉사하겠다고 경제적인 부담과 번거로움, 사생활의 불편을 각오하면서 전통 혼례장으로 제공하겠다고 자청하였음에도 희망자가 없는 까닭은 하객을 접대하는 시설이 없고 교통이 불편한데 있다고 판단된다. 어차피 전통혼례는 흉내만 내면 되는데, 편리한 세상에 굳이 고생하고 안달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이라 생각한다. 옛날엔 진심으로 축하하는 가까운 인척과 이웃이 모여 잔치에 필요한 술이나 묵, 떡으로 상부상조를 했는데, 청첩장이 고지서가 되어버린 오늘의 세태가 부끄럽다. 뒤안길로 사라져버린 상부상조의 끈끈하고 사려 깊은 인간관계의 정과 세심한 배려에 심한 갈증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전통혼례에 의하면 신방은 신부집에 마련된다. 신방은 위치에 따라 한쪽에 병풍이 처지고 황촉이 밝혀진다. 원앙금침을 방 서쪽에 펴는데, 신랑의 자리는 신부의 동쪽에 펴고 신부의 자리는 신랑의 서쪽에 편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이부자리는 한 벌만 펴고 베개는 둘이 함께 베도록 기다란 장침을 마련했다. 신방에는 신랑신부가 나누어 먹도록 음식을 차린 합환주 상이 들어간다. 신랑신부가 일단 신방에 들어간 뒤에는 하인이든 누구든 거들기 위하여 들어가지 않는다. 신방보기와 신랑 달아먹기는 전통혼례의 뒤안 광경이라 할 수 있다. 신방보기는 신랑신부가 신방에 들어간 이후 침 바른 손가락으로 창호지문에 구멍을 뚫고 신방을 엿보는 장난으로 처음 합방하는 어린 남녀가 이변이 있을까 염려하여 비복이 지키는 것이었으나 장난기 있는 아녀자들과 사내아이들까지 합세하여 `엿보기`의 큰 구경거리로 변모했다. 신방의 문이란 문은 침 바른 손가락구멍으로 온통 벌집 모양이 된다. 신방보기는 즐거워야할 신혼부부의 단꿈을 깨는 일이며 남의 자리를 호기심으로 채웠으며, 행과 불행을 중화시키는 완충적 역할을 했다. 아마 지금도 신방보기가 자행된다면 사생활 침해 사범으로 고소판이 벌어지고도 남을 것이다. 신방보기를 상상하면 짜릿한 전율과 함께 친척 딸네가 시집가는 날이면 어김없이 나타나 수다를 떨며 법석이던 청상과부인 K아주머니를 잊을 수 없다. K아주머니는 6·25사변이 발발한 그 달에 결혼했다. 하지만 서울에서 대학에 다니던 남편이 의용군으로 징집되어 그만 생과부가 되어버렸다. 부부의 정은 물론 남편의 얼굴조차도 뚜렷하게 기억할 수 없는 처지다. 지금 70고개를 넘어선 K아주머니는 딸 하나를 입양하여 출가시키고 조카를 양자로 들여서 봉제사 받들며 열심히 살고 있다. 좁은 문구멍으로 신방을 들여다보면서 침을 삼키며 넋 잃은 듯한 K아주머니의 모습을 연상하면서, 지금까지 수절하며 곁눈질하지 않고 살아온 것이 `신방보기`를 통한 한풀이와 `대리만족` 덕택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촛불 꺼진 캄캄한 신방에서 부스럭거리며 이불이 스치는 소리에도 비약하던 상상과 함께 흥분을 감추지 못하던 사춘기 나의 설렘은 K아주머니의 아픔을 짐작하기엔 너무나 유치하고 사치스러웠다는 죄책감을 느낀다. 용변을 보는 사람을 위해 주위에 있는 사람이 피해 주는 것을 못 본 체 눈감아 주는 것은 예로부터 공중도덕의 하나이다. 소변보는 일을 한문에 소피라고 하는 이유가 이러하듯이 신방보기는 성적인 본능 욕구를 풀어주는 공인된 행사였다. `신랑 달아먹기`는 남의 동네 신부를 독점하고 데려가는 신랑을 도둑으로 몰아 신랑의 발을 걸어놓고 마른 명태나 방망이로 발바닥을 두들겨 패는 장난이다. 신부 측 인척 남정네들이 인정사정 없이 패는 시늉을 하면 신랑도 아픔을 견딜 수 없다는 듯 고통을 호소하고, 그러면 신부의 어머니나 신부 가까운 친척 아주머니가 주안상을 차려오면 한 장면이 끝나지만 술이나 안주가 떨어지면 또 계속되다가 흡족한 접대를 받아 만족해야 끝난다. 간혹 신랑 달아먹기의 본래 의미를 잘 모르고 오직 장난으로만 여겨 심하게 다루다가 사고로 신랑이 불구가 되거나 목숨을 잃는 경우도 없잖아 있었다고 한다. 본래 이 `신랑 달아먹기`는, 긴장한 새신랑의 발바닥에 있는 용천혈을 자극하여 혈액순환을 도와 첫날밤을 원만하게 치를 수 있도록 하려는 배려에서 시작된 지혜로운 풍습이다. 이런 지혜와 함께 우리는 전통의 뒤안에서 현실적으로 금기된 욕구를 채울 수 있었고, 고단한 삶 속에서도 여유와 해학을 가지고 살아 왔으나 오늘의 우리들에겐 이러한 삶의 흥취가 없어 많이 안타깝다. 내가 고향집을 1년에 3, 4회 정도 전통 혼례장으로 제공하려는 것은 전통을 따르려는 젊은이들에게 향교와 같은 기관, 예식장이 아닌 신부집 마당에서 혼례가 치러졌다는 사실 인식부터 올바르게 심어주어야겠다는 조그마한 바람이었다. 전통을 피상적으로 흉내만 낼 것이 아니라, 전통의 뒤안까지 살펴서 잃어서는 안 될 소중한 유산을 오늘에 접목시키는 지혜와 노력이 우리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길이라 생각한다.(2001. 5)
최종편집:2025-05-20 오전 09:3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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