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은 오랜 옛날부터 우리 조상들의 식생활에서 많이 써 온 가장 큰 저장용기의 하나이다. 저장용기로서의 독은 음식물이 빨리 쉬거나 쉽게 얼어서 맛 이 변하는 폐단을 덜어 줄뿐만 아니라, 다른 저장용기보다 비교적 안정성이 있어 오래 보관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독을 써 온 역사는 매우 오래다. 독은 이미 신석기시대 유적 에서 발굴되고 고조선시대의 유적에서는 오늘날의 독과 거의 비슷한 것이 발견되었다. 독 가운데 술을 앉히고 발효·숙성시키는 데 사용하는 오지그릇을 `술독`이라고 한다. 그 크기는 한 말들이에서 한 섬들이까지 있으며 형태는 지방에 따라 상이하다.
술독은 따로 만들어 쓰는 것이 원칙이다. 그래서 이전의 술독에는 술독임을 표시하는 글자를 새겼는데 예를 들면`주( 酒)`또는 용량을 나타내는 단위인`두( 斗)`등의 글자를 사용했다.
이익(李瀷)의 《성호사설(星湖僿說)》에는 좋은 술을 만드는 여섯 가지 방법 중에 빼놓을 수 없는 것으로"질그릇은 반드시 좋아야 한다"는 것을 꼽았다.
술 빚는 독이 좋고 나쁨에 따라 맛이 달라지기 때문에 잘못 만들어진 독을 사용하면 술맛이 쓰게 된다는 것이다. 우선 술독을 고를 때는 오지로 만든 질그릇으로 아주 잘 구워진 관독이 좋다고 한다. 독을 쳐 보아 쇳소리가 나고 항아리 속에 그 메아리가 오래 머무는 독이 좋은 술독이다.
술독은 술을 빚기 전에 깨끗이 소독을 해야 한다. 《음식디미방》이나 기타 문헌에는 술독을 간수하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술독은 술을 담기 전에 우선 독 안팎을 깨끗이 씻는다. 그리고 청솔 가지를 술독에 가득히 넣은 다음 끓는 물의 솥 위에 거꾸로 엎어서 얹고 불을 오래 때어 더운 김으로 술독 속을 소독한다. 그래야만 술맛이 좋다고 했다.
김치나 장을 담아 두었던 독은 특히 잘 소독한 다음 사용해야 술맛이 좋다 고 한다. 김치나 장 등을 담아 두었던 독은 냄새가 날 뿐더러 술이 발효할 때 해로운 균이 작용하여 술맛을 그르치기 쉽기 때문이다. 이런 독은 여러 날 우려서 솔가지를 넣고 사용한다.
술독을 소독하는 또 한 가지 방법으로는 지푸라기 덤불을 태워 그 연기가 독 안에 가득 들어가도록 엎어 놓았다가, 식은 다음에 마른 수건으로 안팎을 잘 닦아 불티나 그을음이 없도록 해서 사용한다.
술독에는 특히 족제비가 근접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만일 족제비가 술독에 앉으면 저절로 달아나게 기다려야 한다. 이를 몰아내거나 잡으려고 하면 족제비가 다급해서 방귀를 뀌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몇 달이 지나도 이 방귀 냄새가 가시지 않기 때문에 술맛을 잃게 된다고 했다.
술을 빚는 독은 한여름에는 그늘진 곳에 둔다. 또 추울 때는 짚을 엮어 독 몸에 옷을 입히거나 이불을 감싸서 안방 아랫목에 둔다. 이 경우 구들이 더워서 지나친 온도가 올라오지 않도록 독 밑에 두꺼운 널판지를 깔아야 한다.
술독의 보호를 위하여 어떻게 하는지 또 이와 관련하여 술맛이 어떻게 변 하는지 하는 내용의 해학적인 대사가 대감놀이의 굿에 나온다.
대감놀이는 모든 재물을 관장하는 대감님에게 풍요를 기원하는 굿인데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장면이 나온다.
만신 : (술을 마시다가) 하하, 술맛이 왜 이렇슴나. 옛날에는 술에다 물을 탄다더니 오늘은 물에다 술을 탄 모양인가. 아니면 조라술을 해 놓고 사촌과 아주마이가 흑죽학죽했는가. 술 방석이 없어서 대주 아주마이 속곳 밑을 덮고 술을 하였는지 시큼털털하고 고리탑탑한 냄새가 나네.
장구 : 하도 오랜만에 맛을 보니 대감님 입맛이 갔으니 그랫시다. 대감님 나오시오 하니까 급해서 허둥지둥 나와 허품이가 뜨물 마시듯 하니까 그렇지.양반이 김칫국 떠먹듯 하면 제 맛이 나니, 자세히 맛을 보시오.
만신 : 에끼…….
술독에서 술이 익는 모습을 읊은 다음과 같은 현대시조가 있다.
살아서 숨을 쉬는 항아리 속 깊은 어둠
뿌리째 삭은 맛을 몸 밖으로 밀어낸다.
죽어서 얻은 깨달음,
진한 술이 되느니.
사방으로 짜인 길이 비틀비틀 걷고 있다.
괴고 삭은 웃국물이 정녕 저리 넘치는가
턱 풀고 파안대소(破顔大笑)하는
하회탈을 보고 있다.
위의 시조에서는`뿌리째 삭은 맛` →`몸 밖으로 밀어냄`,`죽어서 얻은 깨달음`→`진한 술이 됨`과 같이 안과 밖의 조화된 이미지를 통해서 술독에서 술이 빚어짐을 미화하고 있다.
술을 담근 후 술이 숙성되어 갈 때가 닥쳐오면 술을 빚는 책임을 지고 있는 주부는 조바심이 인다. 과연 제대로 잘 되었을까, 혹시나 잘못되지나 않았을까 하여 몹시 불안하다. 그래서 술이다 되었는지 감식을 해보고 만일 잘못 되었으면 응급처방을 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가문이 큰집에서는 술맛 감별에 뛰어난`대모(大母)`라는 상징적 존재가 대를 물렸었다. 술맛으로 그 집안의 길흉을 가늠했기에 술 빚 는 정성, 술 빚는 날을 감독하였으며 따라서 누적된 체험으로 술맛을 보고 술 담은 사람의 속 심정까지 알아맞혔다 한다.
술이 다 되었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성냥불을 켜 보아서 판단하였다. 발효가 진행 중이면 발효 중에 생기는 탄산가스 때문에 불이 꺼지고, 발효가 다 끝나면 탄산가스가 발생하지 않으므로 성냥불이 꺼지지 않는 것이다.
숙성이 되면 용수를 박고 술을 떠낸다. 또 한 가지는 술독을 두드려 보고 술의 맛을 알 수 있다고 하는데, 소리가 맑고 길게 울리면 좋은 술이 되고 소리가 탁하고짧으면 좋지 않다고 한다. 또한 소리가 조금도 울리지 않을 때는 술이 익지 않은 것이라 하였다.
이와같이 하여 술독을 감식해 본 결과 술이 익었을 때가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아직 익지 않았을 경우에는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할까? 《임원십육지》의 이나《산림경제》의 에서는 술을 담근 후 온도 조절을 잘못하여 술이 익지 않을 때는 항아리 중앙 부분에 양질의 술을 부으면 곧 익는다고 하였다.
술이 다 되어 술을 떠내기 위하여 용수를 박아 두었는데도 술이 제대로 괴 지 않으면 남편이 첩을 얻은 것으로 해석했다. 술이 괴지 않으면 남편의 외도 때문에 부정을 타는 원인으로 생각하여 남편에게 숨은 첩을 대라고 투정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이것은 용수의 모양이나 용수를 박는 행위, 그리고 용수에 술이 괴는 현상 을 성행위에 비유한 데서 생겨난 속설로 보인다. 《규합총서》에서는 이러한
때에 그 동네에서 좋은 술을 얻어다가 조금씩 부으면 술이 즉시 괸다고 하였다.
술이 다 되었지만 장마 등의 영향으로 술이 제대로 익지 못하고 그 술이 시
어진 경우 이를 고치는`구산주법( 救酸酒法)`이 여러 문헌에 수록되어 있다.
구산주법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규합총서》나《산림경제》의 기술처럼 붉은 팥을 볶아 주머니에 넣어 신 술독에 담그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방법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방법은 과학적인 처방이라기보다 주술적인 시술로 보인다. 붉은 색깔을 띤 팥이 술을 시게 만드는 재앙을 물리칠 수 있을 것으로 믿었던 것이다. 그런데 팥을 이용한 구산주법을 시행하면 약간은 신맛이 가신다고 한다. 또 다른 구산주법으로 술독을 요령 있게 옆으로 굴리는 방법이 있었던 모양이다. 과연 어느 정도의 효과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술독을 굴리기란 여간 힘든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배상면주가에는 이러한 사정을 설명한 내용의 글이 벽에 걸려 있다. 그것은 아마 오랜 경험을 가진 사람만이 제대로 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했는데도 신맛이 가시지 않으면 무당에게 그 근심이 오는 방향을 물어 음식을 차려 놓고 밤마다 치성을 드렸다. 술은 신비의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제사나 혼례 등의 대사를 앞두고 술이 시거나 맛이 좋지 않을 경우 부인들 은 이를 은폐하고 속성주를 만들어 대응하기도 했다. 속성주로는 1일주와 3일주가 있었다. 1주일주는 찹쌀 두 되를 묽지도 되지도 않게 죽을 쑤어 누룩가루 고은 것을 다섯 홉을 섞은 다음 항아리에 담아 대나무로 두어 시간 쉬지 않고 저으면 거품이 인다. 거품이 일면 그 즉시로 항아리를 두껍게 밀봉 하여 따뜻한 곳에 두면 저녁때에 술이 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