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난날 비교적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맡은 바 소임에 충실하였다고 자부한다. 미국 유학시절에도 그랬고 교수생활 40년 동안에도 줄곧 큰 병 없이 지냈으니 말이다. 물론 1980년대 중반부터 당뇨병을 얻었고, 척추회백수염을 앓아 병원에 입원을 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큰 탈 없이 나는 주어진 일에만 몰두하여 세인들로부터 워크홀릭에 걸린 사람이니, 일을 위해서 태어난 사람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살아왔다. 그러던 내가 언제부터인가 시력의 급격한 감퇴가 생겨나게 되었고, 안과의사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그리하여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분비대사 내과와 안과의 단골 환자가 되게 되었다. 이 두 과에 정기적으로 검진을 다닌 지도 벌써 20년이 넘었다.
얼마 전부터, 정확하게 말하자면 약 3년 전부터 나는 숨이 차다는 느낌이 들었다. 오르막길이나 계단을 오를 때 예전보다 더 힘이 들고 숨이 차게 된 것이다. 옛날에 시골 노인들이 걸으면서 이제 나이가 많아서 그런지 숨이 차네라는 말을 자주 하셨는데, 이제는 나도 팔십 나이의 밑자락을 깔았으니 이런 말을 하게 된 것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그러던 어느 날 최윤재 교수 내외와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건강 얘기가 오가던 중 서울대학교병원 강남센터에 가서 종합건강검진을 받아 보라는 조언을 받았다. 며칠 후에 나는 강남센터로부터 건강검진을 받게 되었고 1주일 후에 검진 결과가 나왔다. 예상했던 바와 같이 당뇨, 난청, 위염, 시력 불량에 혈압도 높고 더욱이 심장 초음파 검사결과가 좋지 않다는 판정을 받았다. 설상가상으로 서울대학교병원 순환기 내과로 예약까지 해주면서 심장에 대한 정밀검사를 받아 보라는 것이었다.
예약된 날짜에 이 병원의 순환기 내과에 정밀검사를 받기 위해 입원하였다. 입원하는 절차가 끝나자마자 간호사들이 환자복을 입히더니 나를 다짜고짜로 수술실로 운반하고 곧장 몇 명의 의료진이 달려들었다. 그러더니 내 사타구니를 통해 가는 파이프를 심장 쪽에 집어넣은 다음 관상동맥을 검사하기 시작했다. 결국 나는 제일 많이 좁아진(동맥경화?) 관상동맥에 스턴트(혈관을 넓히기 위해 망을 넣는 일) 시술을 받고야 말았다. 수술 후 의사는 강도 높은 약물치료를 병행하면 운이 좋은 경우 나머지 관상동맥에 대한 재시술을 안 해도 될지 모른다는 희망스러운 얘기도 전해주었다.
또 몇 달 후에는 우리 집 식구들이 다니는 치과 병원을 방문해야 했다. 이십여 년 전에 한 양쪽 아래위 어금니 틀니를 점검해보기 위해서였다. D대학 출신의 젊은 치과의사는 내 어금 틀니가 너무 마모되어 남은 앞니에 부담과 충격을 심하게 준 나머지 앞니조차 더 오래 못쓰고 위험하다고 말해주었다. 그래서 나는 틀니에 크라운을 씌워 약간 높여주는 공사를 하게 되었다.
이런 시술, 저런 공사 해서 최근 몇 달 동안에만 해도 일천만원이 넘는 병원비가 들었다. 내가 이런 비용을 물 수 없는 가난한 노인이었다고 하면 어찌 될 뻔 했냐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우리 집사람은 이런 일련의 의학적 조치가 참 잘 되었다느니, 그래서 우리는 행복하다느니 하는데도 나는 자꾸만 병원비 조달이 걱정스러워서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이렇게 자꾸만 병원 출입의 기회가 늘어나는 것을 보니 이제 나도 많이 늙었고, 내 몸도 이제 많이 낡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꽃이 피면 봄이 온 줄 알고 낙엽이 지면 가을이 오는 것을 알아야 하지 않은가? 내 인생의 남은 날이 얼마일런지. 이제는 정말 세상 떠날 준비도 본격적으로 해야 되는 것이 아닐까. 가까운 시일 내에 수의 한 벌을 준비해두어야 하겠다(2009. 9.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