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며칠 후면 설날이다. 음력으로 경인년 한 해가 가고 희망찬 신묘년 새 아침인 설날이 밝아온다. 필자가 어릴 적엔 설날을 맞이하기 위해 섣달 그믐날 가마솥에 물 데워서 온 식구가 목욕하고, 어머니가 촛불을 켜 놓고 기도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밤을 지새운다.
설날 아침, 5일장에서 새로 산 옷을 입고 새 양말로 갈아 신고 뽐내던 일, 집안 어른들과 둘러앉아 떡국과 강정 먹고 즐거웠던 일들이 지금은 희미한 추억이 되었지만, 내가 초등학교 다닐 60년대에는 설날이 다가오면 섣달 대목 5일장이며, 동네 방앗간, 이발관, 뻥튀기 등 온 동네가 왁자지껄 사람 사는 맛이 난다.
5일장에는 대다수 동민들이 설날 입을 옷이며, 제사에 쓸 건어물 등을 사기 위해 장날에는 장(場)에 간다. 이웃 동네 친구랑도 만남의 약속은 며칠 몇 시가 아니라 장날에서 만나자고 약속한다. 지금 생각하면 시간도 장소도 대충 장날에서 만나자고 해도 별로 어색하지 않았다. 방앗간에는 왕겨불로 떡을 찌는 냄새가 코를 찌르고, 동네 이발관에는 손님이 많아지니까 머리 감아주는 새로운 청년이 와 있어 이발관이 북새통이 된다.
옛날에는 설날이 되면 모든 일을 중지하고 정월 대보름 까지 명절기분을 낸다. 정월 초하루 날에는 일가 친척집에 세배하고, 이튿날부터 온 동네 어른들에게 집집마다 세배를 드린다. 세배가 대충 끝나고 나면 지신밟기 동네 농악이 시작된다. 가가호호 돌면서 농악을 울리고 윷놀이 판이 벌어지고, 정월 대보름이 되면 모든 잡귀신을 보낸다고 산에 달불놀이를 한다. 온 동네가 매일 잔치판이다.
신정이든 구정이든 새해에는 반가운 사람끼리 만나면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하지만 학교 등 어디에도 복 받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곳은 없었다. 성공을 위한 복 받는 방법을 예순 살에 다양한 인생(민주화 투쟁, 국회의원 출마, 박사, 교수)을 살아온 필자가 경제적 고통과 견디기 어려운 운명에 시련의 터널 속에서 헤매고 있을 당신과, 직장을 찾아 헤매는 젊은이와 매사에 지쳐있는 당신에게 전하는 희망의 메시지를 내 경험위주로 진솔하게 적어 보고자 한다.
이름 없는 한 송이 꽃이 피기까지에도 거센 비바람이 지나가는데 한 인간의 험난한 인생살이가 남으로부터 존경받는 인생, 성공적인 삶, 즉 복을 받으려면 `매사에 감사하는 마음`과 `부정적인 생각을 긍정적인 생각`으로 바꾸고, 과다한 욕심을 버리고 공수래공수거 정신으로, 매사에 감사하는 마음에서 우러나는 참사랑, 나보다 못한 사람을 위해 베푸는 나눔 사랑`을 해야 복을 받을 수 있다고 본다.
첫째, 성공, 즉 복을 받으려면 매사에 `감사하는 마음` `긍정적인 생각`으로 바꾸어야 한다.
행복은 마음속에 있다고 했다. 감사하는 마음을 품고 밝게 표현하면 삶의 질을 풍요롭게 하는 확실한 방법이며, 감사하게 생각할수록 자신에게 더 좋은 일이 생긴다. 또한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받아들이면 에너지의 진동 주파수를 높여서 삶의 질은 더욱 높아지고, 더 열심히 살다 보면 생활도 넉넉해지고, 여유로워지고, 깨어있게 되고, 확고해지고, 더 행복해진다. 특히 자녀들에게도, 가정에서의 행복지수가 높을수록 미래의 가정에 행복지수도 높아진다고 본다.
한 예로 두 사람이 각자 물이 반 컵밖에 없다고 가정했을 때 A는 물이 반밖에 없다고 부정적인데, B는 아직도 물이 반이나 남아 있어서 다행이라고 가정했다면 누가 더 행복할까요? 부정적인 A보다는 긍정적인 사고를 가진 B가 훨씬 더 행복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필자는 주례를 할 때마다 첫째,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보답하는 심정으로 살아라. 둘째, 불꽃같은 사랑, 변함없는 초심의 사랑을 잊지 말라. 셋째, 언제 어디서나 항상 겸손하고, 성실 근면하고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라. 마지막으로 자식 잘 키워 가정과 국가와 인류에 필요로 하는 인간으로 잘 키워 부모 은공에 보답하자고 당부하면서 남과 여는 서로 다르다는 생각을 가지라고 당부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행복은 서로의 마음속에 생각하기 나름에 달려 있다고 말하고 싶다.
가) 인생은 끝없는 경쟁의 연속이다. 즐기면서 경쟁해야 한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은 선택받은 동물이고, 또 선택받기 위해 경쟁은 필연적이다. 인간 삶에 경쟁이 없으면 오늘날처럼 발전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 인간으로 이 세상의 빛을 보려면 적어도 수 억 대의 경쟁률을 뚫고 1, 2차 면접과정을 통과해야만 한다. 고귀한 생명에겐 인간의 권리인 인권이 주어진다. 그러기에 인간이 무슨 죄를 지어도 현대 사회에서 3심제를 거쳐 간다. 인권이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영리한 인간이 심한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끊임없이 변화하고 자기 개발을 해야 한다. 2010년 FIFA U-17 여자월드컵에서 여민지 등 어린 여자선수들이 우승한 것은 긍정적인 축구, 창의적인 축구, 그리고 즐기는 축구를 했기 때문이라고 평하고 싶다. 이왕 경쟁할 것 같으면 즐겁게, 즐기면서 경쟁해야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특히 학생시절에 공부도 이왕 해야 한다면 즐겁게 공부하면 성적이 더 높아질 것이다.
나) 시련은 인생 삶의 스승이자 영원한 벗이다.
국어사전에 시련이란 `신앙이나 결심·실력 따위를 엄하게 시험하는 일, 또는 그로 말미암아 겪게 되는 고난`이라고 했다. 인생 삶에 시련은 초대하지 않아도 누구에게나 언제든 찾아온다.
위대한 사상가이자 법률가인 칼 힐티는 `위대한 사상은 반드시 커다란 시련이라는 밭을 갈아서 이루어진다. 갈지 않고 그냥 둔 밭은 잡초만이 무성할 뿐이다. 사람도 시련을 거치지 않고서는 언제까지나 평범함과 천박함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고통 없이는 영광이 없다. 모든 시련은 차라리 인생의 벗이다.` 라고 했었다.
인생에도 쓴맛이 있어야 단맛을 쉽게 구별할 줄 안다. 인생 삶에서 시련이라는 쓴 맛을 보지 않으면 그 뒤에 오는 달콤하고 오묘한 행복의 단맛을 느낄 수 없을 것이다. 인생 삶도 자연의 이치와 다를 것이 없다고 보면 된다.
캄캄한 밤이 있어야 대낮에 밝은 해를 볼 수 있고, 밤에 어둠이 있어야 영롱한 별을 볼 수 있고, 곡선이 있어야 직선의 시원함을 느낄 수 있고, 직선을 달려봐야 곡선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듯이, 넘어짐이 있어야 일어섬의 소중함을 안다. 굶주려봐야 풍요로움의 감사를 알고, 악이 있어야 선이 빛나고, 꼴찌가 있어야 1등이 빛이 난다.
인생 삶에서 겪는 시련은 삶의 다양성을 불어넣고, 동기를 부여하고, 풍요로움과 조화의 미(美)를 알게 해 주는 축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시련은 인생 삶의 깊이를 더해 주는 스승이자, 영원한 동반자이자, 좋은 벗으로 알고 시련기를 지혜롭게 헤쳐 나갈 때 인생의 삶이 더 아름다워 질 것이다.
다) 위기를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
위기는 기회이다. 오늘날 다원화된 사회에서 위기는 매 순간 찾아온다. 위기는 초대하지 않아도 언제든지 찾아오며, 대상을 가리지도 않는다. 가장 튼튼하고 견고하다고 믿었던 곳을 향해 덮쳐오기도 한다. 특히 어떤 정해진 패턴에 안주하는 순간 위기는 기다렸다는 듯이 찾아온다.
이런 위기가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오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대개의 경우 사전에 징후가 있다. 그 징후를 예상치 못했거나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가 정작 위기가 닥치면 당황하고 난데없다고 한다.
1930년대 초 미국의 한 보험회사 간부였던 하인리히는 각종 사고를 분석한 결과 `1대 29대 300` 의 법칙을 발견했다 흔히 `하인리히 법칙`이라고 불리는데, 한 번의 대형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그와 유사한 사고가 스물아홉 번 경미하게 일어나고 삼백 번 이상의 징후가 나타난다는 내용이다.
Crisis(위기)를 동양에서는 위기(危機)라고 쓴다. 위(危)는 위험을 뜻하고 기(機)는 기회를 뜻한다. 다시 말해 위기상황이 오면 위험을 예측하는 동시에 기회를 살펴야 한다고 했었다. 위기는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상황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미국의 존F. 케네디 대통령은 `위기는 기회`라고 했었고 대표적인 것이 미?소 냉전시대에 쿠바 사태를 잘 해결했던 것이다.
라) 걱정은 풍요로운 삶, 살아있다는 증명서다.
걱정은 인간사에 필수항목이다. 어느 개인과 조직·가정·회사·국가도 걱정 없는 곳은 없을 것이다. 죽은 자는 걱정이 없을 것이다. 걱정이 있다는 것을 풍요로운 삶, 경쟁사회에서는 필연적으로 살아있는 생명은 욕심이 있기에 늘 걱정은 있을 수 밖 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