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통을 앓은 지 10여 년이 넘었다. 근자에 와서는 견비통까지 보태어져 병원도 가고 침구요법도 해 보았지만 신통하게 효험을 보지 못하고 짬짬이 고통을 당하고 있다. 게다가 30여 년 꾸리던 자영업을 접었으니 불규칙적인 생활은 나태를 불러와, 생각다 못해 아내가 다니는 불당 아침 예불에 참여하기로 했다. 우선은 기상 시간이라도 규칙적이어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불경 공부이거나 불심 귀의에 뜻을 둔 것이 아니라 전신 운동이 되는 108배를 하기 위해서였다. 사실 108배를 한다는 것은 꽤 괜찮은 운동법임에는 틀림없지만 그게 그리 쉬운 것이 아니었다. 첫날은 50배를 하고 다음날은 60배, 또 다음날은 70배 하는 식으로 완배를 하는데 3,4일이 걸렸다. 1배, 2배 하다보면 언제 다 할까 싶지만 어느새 60배가 되고 70배가 된다. 마지막 절 다음의 자그만 성취감은 통증이 조금 가벼워지는 것 못지않게 즐거운 일이었다. 며칠이 지났다. 매일 아침 수행과 관계없는 절만 반복하자니 자연 타성이 생기고 세는 것조차도 이른바 하나의 매너리즘에 빠지는 것인지 지루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래서 다른 세는 법을 창안(?)해 내었다. 우선 8배부터 먼저하고 100으로 시작하여 역산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시작이 헷갈려 어떤 날은 99로 시작하고 어떤 날은 100으로 시작하기도 했지만 며칠이 지나서야 확실히 알게 되는, 웃지 못 할 일도 벌어졌다. 100으로 시작하면 1이 끝나고 1로 시작하면 100이 끝인, 초교 1년생도 알 일을 며칠이 걸렸다니 실소가 절로 나온다. 그럭저럭 1개월여를 다니고 보니 108배가 까마득하기만 하던 것이 이제는 `식은죽먹기` 정도로 쉬워졌다. 그 삼복더위에도 시작하면 완배를 해야 뭔가 해 내었다는 느낌이라도 갖게 되는 즐거움이 있었다. 사실 때로는 조금 덜 할까 하다가도 "정상이 저긴데···"라는 훈사(訓辭)를 생각하면 108번을 거뜬히 채울 수는 있었다. 그러나 슈베르트의 제8번 교향곡이 미완성이지만 낭만파 최고의 대작이 되었듯, 절도 미완이 더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하는 참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견강부회(牽强附會)도 이쯤이면 가히···. 인생사 누구에게나 성취했을 때의 느낌은 그것이 크거나 작거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목표 달성을 위하여 정진하는 것이나 108고지를 향해 한 발 한 발 올라가는 것이나 다르지 않다는 말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세는 것에만 몰입하면 거의 착오가 없는데, 조금 숙달이 되는 듯하여 상식으로 들은 사바세계 108번뇌의 질곡을 생각하며 불단에 정좌하신 부처님을 쳐다보기도 하다 보니 그만 세는 것이 엉망이 되기가 다반사였다. 그야말로 역 정신일도 하사불성이 되고 마는 것이었다. 그래서 어떤 날은 횟수가 넘거나 못 채울 때도 있었을 것이 자명한 일이었다. 이제는 아예 세는 것은 문제가 아닐 만큼 역산이 오히려 자연스럽게 된 어느 날, 식자우환이라고나 할까 또 다른 걱정이 생겼다. 그것은 단위 문제였다. 100으로 시작하여 91까지가 90단위이고 90부터 81까지가 80단위인데 그게 수리상(數理上) 맞는지 의문이 가기 시작했다. 지난 2000년을 맞으며 세계는 새로운 세기 21세기가 되었다고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며 지구촌 도처에서 이벤트성 행사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당시 어떤 나라에서는 2001년이 돼야 21세기인데 왜 당겨 하느냐라는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이 나타나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단순히 이론상으로는 내 `단위` 문제와 일맥상통이었지만, 그러나 도도히 흐르는 전 지구적 물결 앞에는 별 관심도 갖지 못했다. 절 몇 번 하며 별 생각을 했던 내 사유(思惟)의 세계가 겨우 이 정도로 비루한가 하고 조금은 머쓱해지고 말았다. 어쨌거나 내 두 고질 중 견비통은 언제 아팠느냐는 듯이 효험을 톡톡히 본 것이다. 홍역이듯 50대가 되면 누구나 다 치른다는 오십견을 약물, 침술 다 해봐도 낫지 않더니 정말이지 너무 신효하여 거짓말 같았다. 운동이 약물 침술 다 밀어내고 상석을 차지하는 순간이었다. 평균 수명으로 쳐도 아직은 10여 년이나 남은 내가 더 건강하기 위해 계속 법당에 나가기로 했던 어느 날, 법보(法報)신문에 실린 원로 방송작가(윤청광)의 칼럼을 보았다. `골프 치러 다니는 얼빠진 수행자`를 준엄히 비판하는 글을 쓴 것이다. 며칠 후 그 스님의 "스님은 운동도 하지 말란 말이냐?" 라는 항변에, "하루에 아침 저녁 두 번씩만 108배를 올리면 건강을 해치는 일은 없을 테니 골프를 그만 두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게 웬일인가? 어쩌면 이리도 내 생각과 같은지 딱히 뭐라 형언할 수 없는 야릇한 쾌감이 들었다. 굳이 말하자면 그 작가와 내가 의기투합 했다고나 할까. 또 한편으로는 종교를 빙자한 `건강찾기`가 엄밀히 따지면 일종의 위선이 아닌가도 했지만, 그러나 뭔지 모를 은근한 충족감을 가졌다는 것이 더 정확한지도 모르겠다. 천문학자 갈릴레이가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고 했듯 나 또한, 설법도 법문 게송도 별 관심은 없고 머릿속엔 온통 절 끝낼 생각뿐이지만 그래도 108배는 계속하려 하고 있다.
최종편집:2025-07-09 오후 05:43:02
최신뉴스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톡네이버블로그URL복사
이름 비밀번호
개인정보 유출, 권리침해, 욕설 및 특정지역 정치적 견해를 비하하는 내용을 게시할 경우 이용약관 및 관련 법률에 의해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유튜브페이스북포스트인스타제보
PDF 지면보기
오늘 주간 월간
출향인소식
제호 : 성주신문주소 : 경북 성주군 성주읍 성주읍3길 15 사업자등록번호 : 510-81-11658 등록(발행)일자 : 2002년 1월 4일
청소년보호책임자 : 최성고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경북 다-01245 개인정보관리책임자 : 최성고e-mail : sjnews1@naver.com
Tel : 054-933-5675 팩스 : 054-933-3161
Copyright 성주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