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람 치고 초등학교 이상 공부한 사람이면 `독야청청`이란 말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이 몸이 죽어가서 무엇이 될꼬 하니 봉래산 제일봉에 낙락장송 되었다가 백설이 만건곤할 제 독야청청 하리라 이 시조는 단종이 세조에게 왕위를 찬탈 당하고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영월로 귀양 가 있을 때, 단종을 복위하려던 성삼문 등 일당이 일망타진되어 세조의 국문을 받고 참수를 당할 때, 성삼문이 읊은 시조로서 정몽주의 `충절가`와 버금가는 성삼문의 `단심가`(丹心歌)라 불린다. 우리의 선인들은 자신의 불변의 지조나 충절을 노래(시조)로 읊을 때 어떤 자연의 시후(時候)에도 변하지 않는 산천이나 수목의 모습을 들어 나타내었다. 그 자연으로 널리 읊어진 것이 상록수인 소나무나 대나무 같은 것들이었다. 우리나라 8도인의 기질을 말할 때에 경상도인의 기질을 "송죽대절"(松竹大節)이라 할 때도 그러한 뜻을 가진다. 봄에 피는 울긋불긋한 아름다운 꽃들, 가을에 물드는 여러 가지 색깔의 아름다운 단풍도 한 때의 화려함일 뿐 그것들이 엄동설한이나 춘풍추우의 시후에 상관없이 상록 그대로 불변(evergreen)하는 송죽의 대절에야 비교가 되랴! 우리의 애국가에 "남산 위의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 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도 바로 그것을 말하고 있다. 루소의 "자연으로 돌아가라"란 말을 빌릴 필요도 없이 자연은 인간에게 위대한 스승이다. 우리나라 선인들이 그들의 문학에 자연을 그렇게 많이 노래한 것도 우리나라가 동방예의지국으로 불린 것과 관련을 가진 것이다.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배우고 닮고자 하는 것은 인간이 갖고자 하는 심성이다. 인간이 갖고자 하는 심성이란 범속의 인간들이 세속의 부귀영화에만 집착하는 것과는 반대로 바르고(正), 거룩함(聖)이다. 이 말들에 `독야`를 붙이면 그 정도는 최상의 경지를 나타내는 것이 된다. `독야` 즉 `나 홀로`라는 수식은 그 인격과 덕성의 고고(孤高)함을 나타내는 탈속의 경지를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필자는 이 글을 쓰면서 `독야청청`에 수반되는 `독야정정`과 `독야성성`의 우리말 쓰기에 한 획만의 차이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것 또한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즉 `독야성성`의 `성` 자에 한 획만 더하면 `독야정정`이 되고, 또한 `독야정정`의 `정`자에 한 획만 더하면 `독야청청`이 되는 것이다. 성삼문이 읊은 `독야청청`의 낙락장송은 그것이 봉래산(겨울의 금강산을 일컫는 이름)의 최고봉에 있는 것이기에 더욱 탈속의 세계를 의미하는 것이다. 나 같은 범속의 인간도 이상으로만은 고고한 삶을 흠모하는 마음을 가졌기에 나의 낙관을 `독야청청`으로 삼고 있다.
최종편집:2025-05-20 오전 09:3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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