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난 해(2010년) 아내와 초등생 외손녀 둘을 데리고, 10여 년 전에 딸 내외가 이민 와서 사는 오스트레일리아(호주)로 여행을 왔다. 이전에는 호주하면 육대주 중에 제일 작은 대륙이고 영국의 연방국 정도로만 알고 있었고 좀 더 보탠다면 광활한 땅이어서 아직도 이른바 전인미답의 땅이 있다는 정도였었는데, 초다듬이듯 우선 여행 가이드를 보고 그 대강이나마 알게 되었다. 원주민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부족 에버리지니이고 그들은 4만 년 전 제4빙하기 중반으로 추정되는 시기부터 살고 있었다고도 하는데, 혹은 10만여 년 전이라고 하는 주장도 있었다. 그들은 아시아 대륙에서 최초로 바다를 건너 이주한 용감한 민족이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해면이 지금보다 200m나 낮았기 때문에 대체로 쉬운 항해가 가능했다고 한다. 역사상 호주를 최초로 방문한 백인은 포르투갈의 멘도사이다. 그는 1521~1532년에 동부를 탐험하였으나 육식을 주로 하는 서양인들에게 필요한 향나무 등의 가치 있는 식물이 발견되지 않아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그랬는데 1771년 4월 29일에 결정적인 일이 일어났다. 영국 해군제독 제임스 쿡 선장이 엔디버 호를 타고 트레스 해협의 투네이드 섬에 상륙, 영국 왕실에 의한 동해안 영유를 선언한 것이다. 영국 정부는 본국 사우스 웨일즈 지명을 딴 뉴사우스 웨일즈(NSW)로 명명, 자국민을 이주시키기 시작했고 1788년 1월 26일에는 초대 총독 아서 필립이 유형인(流刑人) 780명, 해병대와 그의 가족 1200명을 상륙시켜 백인에 의한 호주 지배가 시작된 것이다. 그야말로 세계사 속에 ‘호주’라는 신천지가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1851년에는, 한 때 회오리를 일으켰던 미국 캘리포니아의 골드러시에서 돌아온 49명 중의 한 명인 하그레비스가 이곳 배서스트에서 백금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는 NSW의 지형이 켈리포니아와 닮았다고 생각하여 이 땅에도 무진장 금이 묻혀있을 것이라는 예상이 적중했던 결과였다. 마침 그때 빅토리아 지방에서는 거대 금괴가 발견되어 그곳으로 인구 이동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이것이 이른바 골드러시의 시초이며 이를 계기로 황금에 매료된 이민자들이 호주로 몰려오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최대의 금 채굴장인 벨러랫에서는 호주 사상 최대의 무장 봉기인 유리카성의 반란이 일어나고 강탈사건 등 황금을 둘러싼 사건이 끊임없이 일어나기도 했다. 오늘의 연방이 성립하기까지 위와 같은 우여곡절도 있었고, 두 번의 세계대전도 겪으며 드디어 호주연방공화국이 성립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1775~1783년 미국 독립전쟁의 결과로 궁지에 몰린 영국이 호주에서도 똑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정책으로 인하여 식민지 정부에서는 종주국과 전쟁을 하지 않고도 자치권을 획득하게 됐다는데 이는 말하자면 무혈입성인 셈이었다. 그러나, 대륙 전역에서 살던 원주민(에버리진)이 전멸이 됐다고 할 만큼 백인으로부터의 학살도 있었지만 자치권 획득의 대세에는 큰 영향을 미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만큼 원주민의 저항이 없었던 것이 아닌가 한다. 이를 두고 지금도 ‘백인우월주의’의 시발이었다고 말하는 논자가 있는 것도 사실이라는 것이다. 결국 그 결과로 호주의 헌법도, 영국식 의회 제도를 거부할 이유가 없었으므로 ‘불문율’의 그들 의회제도를 성문화한 것이라 한다. 미국 독립전쟁의 결과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영국은 죄수들의 유배지였던 거대 아메리카대륙을 통째로 내어주는 결과를 맞았으니, 대신 유배지를 찾던 중 그들의 뇌리를 스친 것이 호주 땅이었다. 평화롭던 원주민의 영토는 범죄로 얼룩져가서 한때는 식민지 개발이 갖가지 시련을 맞기도 했지만, 형기를 마친 죄수들의 값싼 노동력은 목축업과 농업 등의 발달을 가져왔다. 앞서 언급했던 골드러시로 인구 유입을 촉진했고 그 결과는 호주 경제발전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갑작스레 모여든 이민족 간의 분쟁은 사회문제를 야기했고 그래서 유럽계와 비유럽계의 갈등 때문에 ‘백호주의’라는 인종 차별정책을 썼던 것이다. 1960년대까지도 고수하던 백호주의가 철폐되었으니 지금은 내가 봐도 ‘인종전시장(?)’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런데 정책배려도 없고 지정타운 같은 게 없어도 희한하게도 같은 국적끼리, 자연발생적으로 모인다는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동류본능 같은 것이 아닌가 한다. 문제는 치안인데 다민족의 민족성 따라, 성향 따라 준법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법집행의 경찰력 사각지대가 생긴다는 것이다. 특히, 한때 고난의 역사를 겪은 나라 집단촌이 더욱 심하다는데 밤이면 통행을 않는 것이 상책이란다. 이는 본국의 국격 지수와 관계되는 것은 아닌가 한다. 그래서 그런지 좀도둑이 심해서 내 아이들도 처음 와서 한 번 당했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여기 집 구조가 2중 창문에다 방충망까지 잠금 장치가 돼 있는 이유를 알게 하는 것이었다. 인간이 사는 사회 어디에나 계층이 생기는 것인지 이 호주도 개척시대를 지나며 빈부, 지위 등에서 계층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크게 나누어 일반 이민자와 수형자로 갈리고, 이민자는 지배계층이 되고 수형자는 피지배 계층이 될 수밖에 없었으니 그것이 오늘날 호주 사회의 근간이 됐다는 것이다. 군인과 간수(교도관)가 자연 지배 상위계층이 되고 그 하위계층과 주종관계가 형성되어 이른바 ‘로열패밀리’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빈부는 계층이 되고 계층은 신분이 되는 사회가 되어 그에 따라 거주지역도 다르다는 것이다. 공정사회는 국경을 불문하고 구두선에 불과한 것인가? 다시 화제를 본 얘기로 돌리자. 1901년 1월 1일 뉴질랜드를 제외한 식민지가 드디어 정식 호주연방으로 출범했으니 그 날이 바로 헌법 발효일이라 한다. 그런데, 연방 탄생의 축제는 헌법 발효일이 아니라 최초의 식민지가 탄생한 1788년을 기준으로 해야 한다며 지난 1988년에는 ‘200주년 축제’로 명명했다고 한다. 이 나라 국토면적은 우리 남한의 78배이고 인구는 2천2백만 남짓이라고 한다. 기후만 해도 대륙 내부 불모지는 건조기후(사막성)이지만 내가 체재하는 시드니는 온대성이고 아열대성, 열대우림, 열대성기후 등으로 분포하고 있다. 언어는 우리가 늘 접하는 영·미식과도 약간 다르다고 한다. 호주인만이 쓰는 영어라는 ‘오지 영어(Aussie English)’가 있는데 오지는 ‘토박이’라는 호주 말이라는 것이다. 그야말로 다문화 국가이기 때문에 영어권은 물론 동남아권, 레바논, 남미 계통의 이민자도 있어 자연스레 오지 영어가 된 것이 아닌가 하는 내 맘대로의 해석이다. 그래서 우리식 영어도 그다지 귀에 거슬리지 않는다고 하고 있으니 어쩐지 코리아의 자존심이 생기는 순간이기도 했다. 언어에 관해 재미있는 얘기가 하나 있다. 영국계 호주인이 얘기하는 모습을 보면 입술을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고 하는데, 이는 날파리가 하도 많아 입안으로 날아들지 말라고 하다보니 그런 습관이 생겼다고 한다. 이는 ‘믿거나 말거나’가 아니라 작년에야 이 나라에 와서 College과정을 밟고 있는 막내 딸아이가 추인한 말이니 신빙성은 있어 보였다. 또 음절이 긴 말은 간략하게 쓰는 경향인데, 예를 들면 뮤지션을 뮤조, 저널리스트를 저노, 스펙터클을 스펙으로 쓴다는 것이다. 오지 잉글리시의 가장 큰 특징을 보면 ‘A’ 발음을 ‘아이’로 한다는 것인데, Day는 다이, Today는 투다이, Stay는 스타이, Have a Good Day는 하바굿다가 된다는 것이다. 또 Center의 er은 re로 쓰고 있었다. 영어[앞]와 오지영어[뒤]의 재미있는 비교 몇 가지만 들어보자. 상점ㅡstore, shop. 아파트ㅡapartment, flat. 전화하다ㅡcall, ring. 엘리베이터ㅡelevator, rift 등 모두가 그렇게 쓰는 것이 아니라 제한적으로 그렇게 쓰는 것이라 한다. 파리! 하니까 생각나는 게 있다. 딸·사위 친구들이 우리를 위한 항정살 가든파티를 벌인 것이다. 어디서 왔는지 우리나라 파리보다 덩치가 큰 것들이 살판났다 하고 극성스럽게 몰려든 것이다. 가만히 관찰하다보니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한 것이다. 유독 새우(대하)에만 달라 들기에 그 껍질만 모아 따로 두었더니 모두 그리 몰리는 것이었다. 이놈들이 육류보다는 해물을 더 좋아한다는 위대한 발견(?)을 한 것이다. 파리가 많은 것을 보고 내가 기후 탓이라고 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이 나라 자연보호가 얼마나 철저한지 농약은 물론 살충제도 쓰지 않는단다. 게다가 소하천도 없어 모기 서식지가 없는 반면 파리는 많다는 것이다. 많지도 않는 모기도 특성은 있었다. 모기, 그 소리로 비교하자면 한국 모기는 소프라노인데 이곳 모기는 바리톤이었다.
최종편집:2025-05-20 오전 09:3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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