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본다이 해수욕장(Bondi Beach)에 갔다. 간이 텐트를 친 곳이 썩 내키지 않아 건너다 뵈는 계곡으로 갔으면 했더니 딸애가 흠칫 놀라며, 그곳은 완전 나체의 동성애자들 영역이라는 것이었다. 말로만 듣던 치외법권 지역을 멀리서 바라보기만 하고 말았다.
우선 흔히 보는 바다와는 다르게 보려했다. 우리라고 바다도 없고 세계인이 놀라는 절경이 왜 없을까만 지구 반 바퀴를 돌아 열 시간 넘게 날아왔고 오래 계획된 관광이었으니 뭔가 모티브를 찾아 시상(詩想)이라도 떠올려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감 같은 것에 억눌리었지만 정작 떠오르는 게 없었다. 다만, 치졸하게나마 늘 관조(觀照)의 세계로 투영되는 우리들의 인생사 희로애락의 그 세계를 보려고 했던 것이 내 의도의 전부였다.
행여 바다도 인생 편력(遍歷)이듯 한강수가 흘러 흘러 이 바다까지 왔을까. 무념무상(無念無想) 구름도 유람 길에 나섰는가. 원래 한 몸인 물과 구름이 교신을 하는지 저 수평선 끄트머리는 맞닿아 있었다.
파도는 어이 저리도 성이 났는가
분노는 스스로 부서짐으로 하여 극기하려는 것인가
자폭인가 살신성인인가
노도는 일어나고, 또 일어나고 / 부서지고, 또 부서지고
태초로부터 대저 몇 겁이나 되었는가
철석 처르르. 음악가인가 / 쏴아 와르륵. 폭군인가
포효하듯 으르렁거리는 노도광풍은
뭍으로만 살아남겠다는 대지를 향해 / 독아(毒牙)를 날름거리는 것인가
한 치도 내 줄 수 없다는 듯 뭍은 눈 부라리며
얼떨결에 상륙한 물을 일시에 삼켜버리고 만다.
아아! 바다여, 구름이여…!
명색이 글줄이나 쓴다는 내가 시도한 관조의 세계가 겨우 이 정도의 속투(俗套)로밖에 그리지 못한단 말인가? 자괴하며 발길을 돌렸다.
오늘은 세계유산(National Heritage)으로 등재된 오페라 하우스를 가는 날이다. 이 나라 행정수도는 캔버라이지만 문화와 경제, 정치와 외교 등의 수도라고도 하고 호주 역사의 시작이라는 시드니까지는 승용차로 가서 거기서 셔틀버스로 갈아타야 오페라 하우스로 갈 수 있다는 것이다.
먼저, 그림으로만 본 중세 유럽풍의 고색이 창연한 웅자의 시청이 내 시선을 압도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내 서투른 영어를 썼다가 또 무안을 당한 것이다. 딴은 원음 발음을 흉내낸다고 `시리홀`이라고 했더니 호주는 타운홀(Town Hall)이라 한다고 했으니 말이다.
지하철과 쇼핑센터, 버스정류장, 관광안내소 등이 밀집해 있어서 교통의 요지이기도 했고, 이 시청 건물 중앙의 시계탑은 이 도시의 랜드마크이며 홀 앞 광장은 시드니 최대의 만남의 광장이라는, 내 사위의 즉석 가이드 해설이 있었다. 시청 옆에는 호주 최고의 고딕 영국식 건물 세인트 엔드류 성당이 자리하고 있기도 했다.
타운홀 건너편에 있는 퀸 빅토리아 빌딩(Queen Victoria Building)은 빅토리아 여왕시대에 지은 최초의 건물이라는 역사적인 의미가 있다는 건물인데 그 앞에 세워진 여왕의 거대 동상과 또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여왕의 애완견 입상이 이 나라 역사적 의미를 더욱 확인시키고 있었다. 특히 이 건물의 쇼핑센터를 방문한 디자이너 피에르 가르댕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쇼핑센터`라고 극찬했다 해서 더욱 관심이 가기도 했다.
명성 그대로 고급 부티크와 카페·레스토랑 등 200여 개의 점포가 밀집해 있는 건물인데, 건물 전체를 관통한 중앙에 매달려있는 로열 시계는 호주 역사를 말하는 화려함의 극치를 보였으며, 매시 정각에는 시계에서 튀어나오는 인형 퍼레이드가 관광객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특히 앙증맞은 갖가지 동물인형, 이 나라 특산물의 조각상, 2차 대전 당시 영국군과 터키군의 전쟁을 묘사한 미니어처가 인상적이었다. 또 그 많은 화려한 점포들 속에 미샤(Missha) 한국화장품 코너가 떡 버티고 있어 국가적 자존감을 세워주고 있었다.
다음 목적지를 가기 위해 셔틀버스에서 내리니 제일 먼저 시드니를 대표한다는 구조물 하버 브릿지(Harbour Bridge)의 위용이 어디 미지의 세계에서 온 듯 운무 속에서 홀연히 나타난다. 1923년에 착공, 완공까지 9년이 걸렸으며 세계 두 번째 긴 다리로 길이는 1,149m라 한다. 첫 번째 긴 다리 뉴욕의 베이욘 브릿지보다 60cm가 짧았다고 하니 1위 자리를 놓쳤다는 것이 내가 괜히 아쉬웠다.
아치형 다리는 지상 134m 높이이고 그 아슬아슬한 골조 위를 오르는 사람들은 멀리서 보면 마치 개미가 바위를 오르는 형상이었다. 정상에 오르는 소요 시간이 3시간 반이고 10∼12명이 한 조로 편성되어 끈으로 연결돼 있어 어느 누구도 낙오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준비는, 15분 동안의 간단한 건강 체크와 시뮬레이션 교육을 받는다고 한다. 암벽 등반을 방불케 하는 장비와 복장을 갖춘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놀랍기도 했지만 정작 놀란 것은 요금이 198달러(20만원 정도)라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