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만 듣던 오페라하우스는 하버 브릿지와 같은 강 어귀에 위치하고 있었다. 우선 그 웅장함에 탄성이 먼저 나왔다.
착공에서 완공까지 14년이 걸린 호주의 상징일 뿐만 아니라 세계적 아름다운 건축물이라는 것이다. 바다를 향해 날개를 펼치는 듯한 모습이 조개껍질 같기도 하고 오렌지 조각 같기도 하다는 것이다.
1957년 시드니를 상징할 건축물이 필요해 디자인 콘테스트를 통해 설계도를 공모했는데, 32개국 232점의 작품 가운데 당선은 덴마크 요른 우츤에게 돌아갔다.
이 세계적 건축물이 탄생된 이면의 얘기가 있단다. 공모에 참가하기 위해 고심하는 남편을 위해 요른의 부인이 과일과 차를 준비했다는데 바로 그 쟁반에 놓인 오렌지 조각을 본 요른이 "바로 이거야!"라고 외쳤고 그 오렌지 조각을 본뜬 유려한 곡선이 세기의 대작 오페라 하우스로 탄생했다는 것이다. 큰 인간사 이면의 후일담은 여기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무리 주마간산으로라도 유적과 건축물, 역사와 문화 등의 명소를 다 거칠 수는 없어 아주 내 관심 가는 것만 몇 군데 가본 것이다.
이번의 방문과 관광을 위해 직장을 10일씩 연가를 내면서까지 배려해준 사위가 고맙기도 하지만 1주일 강행군으로야 뭘 얼마를 볼 수 있겠는가.
식민지 역사를 단적으로 볼 수 있다는 하이드 파크 베럭 박물관, 우리의 남대문시장(재래시장)처럼 왁자하다는 페디스 마켓, 시드니수족관, 해양박물관, 이름만큼이나 달콤한 낭만의 거리 달링 하버 등이 있다지만 일단은 욕심을 접었다. 하지만 아직은 장장 40여 일이 남았으니 포기하긴 이르겠지?
이제 와서 말인데 사실은, 자존심에 관계되는 것이라 그냥 넘기려다 다시 생각하여 쓰기로 한다. 그 이유는, 시드니의 몇 군데 중 명소가 된 차이나타운이 있었으나 국내외 문제에서 항상 우리와 상충하는 정책 때문에 선뜻 언급하기가 싫었던 것이지만, 대세는 거스를 수 없어 생각을 바꿨기 때문이다. 점점 강성해지는 그들 앞에 상대적 위축감을 넘어 초라하기까지 한 자존감이 그렇게 망설이게 했던 것이다.
일본도 또한 다르지 않았다. 그 국력에 맞게 그들끼리 좋은 동네에 모여 산다는 것이 조금 마땅치는 않았다. 내가 너무 속 좁은 민족주의자(Nationalist)일까? 민족도 국경도 별 의미가 없는 이곳에 와서 그런 나의 폐쇄적 사고가 싫었지만 비우호감은 어쩔 수 없었다.
국가 간 비교를 하다 보니 조금 의외의 얘기를 들었던 것이 생각난다. 태국 화폐는 통용되는데 한화는 통화는커녕 환전도 안 된다는 것이다. 모든 국가적 통계가 태국보다는 우리가 우위이고 적어도 우리는 G20국가인데 말이다.
사실 태국뿐만 아니라 다른 동남아 각국의 지정학적 이유를 감안한다면 그것이 오히려 당연할지도 모르겠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오늘은 와타 몰라(Watta Molla) 해수욕장을 갔다. 지구과학이나 지질학은 문외한이지만 천지개벽을 하며 생성된 지표면이 바다가 생기면서 그 침식작용으로 지표 10여m 아래에 바다가 형성된 것이 아닌가 한다.
아직도 아무렇게나 떨어져나가 드러누운 떡시루 같은 지층의 파편들이 속살을 드러내고 있으니 내 식견으로서야 가늠할 길이 없도록 신비하기만 했다. 그 바위에 올라 김동진 선생의 가고파, 작곡자도 모르는 외국곡 바다로 가자, 김성태의 이별의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이 해수욕장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