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는 버우드(Bur Wood) 공원을 갔다. 산책 중 시야에 들어온 낯익은 동양인 동상을 보고 깜짝 놀랐다. 만에 하나에도 우리 세종대왕 동상이 여기 설 리는 없다곤 했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순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얘들이 비문을 읽었다. 재 호주 중국인과 논어를 연구하는 사람들의 합작으로, 수교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공자상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일전에 차이나타운 얘길 했지만 역시 중국의 국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에 알 듯 모를 듯한 무력감이 왔다.
시드니 번화가에 가면 여기가 호주인지 중국인지가 헷갈릴 만큼 중국의 `현주소`는 어느 특정지역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었다.
또 국력 얘길 하다가 자그만 충격을 받았다. 우리가 호주 3대 교역국인데도 그 위상은 동남아 각국 중 꼴찌라는 것이다. 우선, 통화는 앞서 지적했고 비자 문제는, 각국에 비해 까다롭게 요구하는 것이 많아 차별을 받는다는 것이며, 워킹비자는 공부도 하고 관광·취업도 할 수 있는 편리한 제도인데도 그 혜택을 받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유학생을 위한 유리한 장학제도도 있다는데, 그것은 본국에서 관심도 가지고 정부 차원에서 외교적으로 접점을 모색하여 권익을 찾아줘야 하는데 그것이 없다는 것이다. 애로를 겪는 학생들이 영사관을 찾지만 별 반응이 없는, 그야말로 `각자도생`일 뿐이라는 것이다.
자국민 보호라는 외교의 대원칙은 다 어디로 갔는지 모를 일이었다. 체육회 등 지역별 각종 교민회가 있고 종교단체도 있지만 실질적 권익 보호에는 미흡하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다.
물론 영주권자, 유학생 등 다른 나라에 비해 숫적으로 열세라는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곤 하지만 적어도 `통상이 곧 주권`이라는 이 시대에 `3대 교역국`이라는 위상이 무색할 정도이니 그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이 기회에 우리 위정자에게 제발 `G20` 같은 내실 없는 국제위상만 찾지 말고 재외국민 권익에도 정책적 배려가 있어야 한다는 고언을 하고자 한다. 하드웨어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소프트웨어에도 힘을 기울여야 한다는 말이다.
이 나라는 우리의 구청(City Council)과 같은 기관에서 달력을 배포하는데 거기에, 다민족 국가이기 때문인지 무슨 표어 같은 것을 한국어와 각국어(영어, 아랍, 중국, 태국, 베트남)로 적어 실었다. 그런데 금년부터는 한국어는 빠졌다.
이를 두고 그렇게 민감히 반응할 것은 결코 아니지만 무슨 이유가 있는 것일까? 하긴 일본은 아예 처음부터 실리지 않았으니 `국가지수`에 연유한다고 하면 어떨까?
위에 지적한 교민 문제는 일부 당사자 간의 문제라 하더라도 정말로 큰 문제는 이 나라 노동당 정부의 반 이민정책이다. 지금까지는 대체로 무난했다는데 이제는 오로지 국내 고용시장 보호로의 정책 전환으로 기술이민, 영주권유학 등의 길이 막혔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지금 칼리지 과정을 이수하는 딸아이가 정말이지 문제이다.
오늘은 보빈 헤드(Bobin Head) 공원을 갔다. 호주 전역이 고산이 없는 평원이어서 해안과 가까운 곳은 모두가 조수간만에 따른 바닷물이 들어왔다 나가는 강이 있었다. 그래서 이곳의 강도 엄격히 말하면 강·바다 구분을 할 수도 없고 구태여 할 이유도 없는 형태의 강이었다.
이 공원이 몇 갈래 강을 끼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는 강 하구에 생기는 선상지로 보였으며 그 선상지 사이로 드나드는 강물 따라 숭어 비슷한 물고기가 마치 제 어장같이 몰려다니고 가오리, 해파리 등이 너울너울 한가로이 유영하고 있었다.
취락에는 산이라 부를 만한 지형도 없지만 그 공원에는 그저 동산만한 산이 있어 올랐다. 산이래야 온통 바위산이었는데 그 사이사이에 이름 모를 나무들이 천 년인지 만 년인지 너희 인간들은 알 필요도 없다는 듯이 떡 버티고 서 있었고, 그 둔중한 몸체를 지탱하려는 듯이 바위틈으로 드러난 뿌리는 마치 독거미의 다리 같았고 갈기 세워 엎드린 사자 발톱같이 한 움큼 땅을 꽉 잡고 있는 형국이었다. 수종도 다양하지 않은 두세 종으로 보였고 길길이 자란 고사리는 공상 영화에서나 본 원생식물 같았다. 인간도 식물도 기후대에 따라 다름을 어찌하겠는가.
돌아오기 직전 일단의 사람들이 몰려가는 것을 보았다. 거기엔 1m 정도나 되는, 목 부분에 난 빨간 반점이 그렇게 고울 수가 없는 도마뱀이 혀를 날름거리며 기어가고 있었다.
마치 숙련된 도수체조 선수같이 앞발이 왼쪽으로 움직이면 그 반동으로 오른쪽 뒷다리는 반대로 작동하며, 보려면 실컷 보라는 듯 여유를 부리고 호기도 한껏 부리는 것이었다. 뱀 기어가는 형상에 앞뒤 두 다리가 붙었다고 가상하면 상상이 가리라. 나는 그게 그렇게 율동적이고 신기할 수가 없는데 이곳 사람들은 오히려 나 같은 사람이 이상하다는 표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