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대까지는 가장 듣기 싫은 말이 새 양반이었다. 방학 때 상주나 안동 쪽 인척 집에 가면 나보다 서너 살 위의 형들이 곧잘 나를 골려주는 말이었다. 그 말의 뜻은 알지 못했지만, 분위기로 보아 자기들을 과시하고 나를 폄하하는 말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기에, `새 양반`이란 말만 들어도 괜히 약이 오르고 핏대가 섰다. 나는 우리 집 솟을대문을 드나들 때마다 어깨가 우쭐해지면서 자만과 긍지로 자신을 주체하지 못했었다. 웬만한 동네는 가서 인사를 하면 대감댁 아무개 아니냐며 반겨주는 어른들의 환대와 인정으로 인해 자아도취에 빠지곤 했다. 허리 꼬부장한 황 영감은 자기 아들이 나보다 나이가 많은데도 "예, 예"했으며, 만쇠(실은 딸이 나보다 10살 정도 많다) 형제도 다른 일가친척에겐 말을 놓으면서 나에겐 `서방님`으로 부르면서 대접이 극진했다. 읍내 친구 집에 가도 친구 부모님이 나도 모르는 선대의 덕행과 일화를 들려주시면서 나와 친교를 맺은 아들을 대견해하고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조상이 높은 벼슬을 하면 양반이 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으며, 더욱이 우리 고을에서 대감댁이란 택호로 불리는 집은 우리 집 뿐이어서, 내가 최고의 양반이라 생각하고 있는데, `새 양반`이니 `햇 양반`이니 하며 비아냥거리고 놀리니 어린 나의 자존심이 여지없이 짓밟히고 말았다. 나는 반격의 실마리를 찾기 위하여 사전을 뒤지다 마침내 멋진 반격의 단서를 잡았다. 즉 양반이란 문무의 벼슬아치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윗대에 정승, 판서를 지냈더라도 4대가 벼슬 못한 백두(白頭)면 당당한 양반이 못된다. 즉 잔반(殘班)이 되는 것이다. 너희 집은 6대째 진사 한 장 못했지만, 우리 집은 9대 분문에 8대조부터 백두는 한 분도 안 계신다. 당상관이 세 분이요, 충절로 나라에서 공적을 표창하고 치제까지 올렸으며, 3대 대과에 생직 판서가 계시니 내가 바로 진짜 양반이 아니냐는 식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관념적 이기주의에 빠져 치졸하고 광적인 굴절된 나의 모습에 회한과 부끄러움을 금할 수 없다. 그래서 못난 나와 같은 어리석음과 자만에 빠질까 걱정되어 아이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우리 집의 내력과 역사를 이야기한 적이 없었다. 내 심정을 모르는 아내는 자식들에게 너무 무관심하다고 불평을 했지만 아이들이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이 축적된 후에 이야기해야겠다는 나의 생각은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에야 그들이 `새 양반`이라 놀리는 뜻을 알았다. 양반에도 엄밀한 등급이 있는 것이다. 소위 향반, 도반, 국반이란 것인데, 향반은 향내에서 통하는 양반이요, 도반은 영남지방 같은 넓은 그 지역에서 인정하는 양반이고, 국반은 온 나라에서 통하는 양반을 말한다. 도반과 국반의 구별은 엄격하지 않았으며 국반이지만 도반의 대접을 못 받는 경우도 있다. 현조가 안 계시는 우리 집은 향반에 불과했는데 나의 5대조 정헌공께서 입신 영달함으로써 도반의 반열로 신분이 상승된 양반이란 뜻으로 `새 양반`이라 했던 것이었다. 그들이 나를 새 양반으로 부르는 사유를 안 이후, 나는 `새 양반`이란 비아냥거림에 안달하거나 얼굴빛을 달리하지 않았으며, 사실대로 인정하면서 쓰디쓴 웃음으로 받아넘겼다. 나는 지금도 가끔 그때 나의 쓰디쓴 웃음의 의미를 생각해 본다. 자신의 약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심정을 감추기 위한 표정임과 동시에 상대방을 향한 울분의 표시였다고 인정한다. 1894년(고종31년) 갑오경장때 신분제가 폐지되어 없어지고 난 이후에도 유습은 어느 정도 남아 있었으나 민족 해방과 더불어 특권층의 양반은 없어졌다. 그러나 조선왕조 때부터 이어져온 양반에의 상승지향은 뿌리가 깊어 자칭 타칭의 양반이 아직도 지천으로 넘치고 있다. "명분과 절의를 지킴에 힘쓰지 않고 그럭저럭 문벌만을 요긴하게 쓸 수 있는 기회로 여겨 세덕을 팔고 산다면 장사치보다 무엇이 낫겠느냐"라고 한 양반전을 쓴 연암 박지원의 말이 나의 폐부를 찌른다. 지난날의 양반은 출생에 따라 얻는 신분이었다. 그러나 출생만으로 양반다운 행세가 보장되는 것이 아니었다. 경제력, 학문에 대한 능력, 유교의 행동방식과 의례 절차와 같은 교양과 덕성이 갖추어져야 했다. 그래서 양반의 가장 상징적이고 이상적인 유형이 선비였다. (양반이라 해서 다 선비는 아니다) 진정한 의미의 양반이란 남의 본보기가 되며 존경을 받는 사람으로서 개인의 도덕적 수양과 함께 굳은 의지와 역사적 사명감으로 한 시대를 이끌어 가는 지도자다. 따라서 선비가 벼슬하는 것은 농부가 밭을 가는 것과 같다. 그래서 생각이 건실하고 행실이 바르고 장래가 촉망되는 사람을 보면 양반이란 말로 칭송을 아끼지 않는다. 점잖고 당당하고 모습이 단정하고 말이 분수에 맞고, 모범이 되는 사람을 "그믐밤에 만져 봐도 양반"이란 표현을 한다. 이렇듯 양반이란 우리 모두가 지향하고 염원하는 구원의 인간상이다. 가난해도 비굴하지 않고 부자가 되어도 사치하지 않고 귀하게 되어도 교만하지 않는 것이 양반의 참 모습이다. 어느 가문이고 새 기업을 닦는 데는 일화와 사연이 많지만 우리 집의 경우 나의 7대조 사미당 할아버지께서 쏟으신 정성은 자손으로서 옷깃을 여미며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집 내력을 다소 아는 사람이 간혹 "자네 7대조께서는 자질들에게 `서방님 우리도 당당한 양반 한 번 되어봅시다`라고 하셨다"면서 나의 표정을 살피는 경우가 있다. 진정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알 수는 없지만, 외부에서 그렇게 빗대어 이야기 할 만큼 할아버지의 정성이 지극하고 간절했음은 부인하지 않는다. 우리 집에서는 목침을 경침이라 한다. 사미당 할아버지께서 자질들이 학업과 몸가짐에 소홀하면 목침 위에 올라서게 한 후 회초리로 엄하게 다스렸기 때문이다. 장자이신 농서공 할아버지께서 장원급제의 영광을 안고 귀향 하셨을 때 어머니께서 "우리 집 경침의 덕이다."라고 하신 말씀으로 미루어 보더라도 평소 훈육이 엄격했음을 알 수 있다. 손자 되시는 정헌공 할아버지께서 사랑채 당호를 할아버지 호를 따서 사미당이라 했으며, 사랑방 문에 숙사아실, 서료에 경침와기, 새 사랑에 독서종자실이란 현판을 거신 것은 선대의 가르침을 가슴에 새겨 실천하겠다는 후손의 절절한 마음의 표상이다. 또한 사랑마루의 교여일루란 현판은 자손들이 해와 같이 밝고 올바른 삶을 염원하는 선대의 기원이 담겨 있는 글이다. 이렇게 `새 양반`으로서 마음가짐, 몸가짐에 소홀하지 않았으며 지도자로서 굳은 의지나 역사적 사명감으로 주어진 삶에 충실하셨다. 그러나 이제는 한갓 낡고 허울뿐인 조상의 뼈대나 우려먹는 `뼈다귀 양반`이 되어버리지 않았는지 두렵고 부끄럽기만 하다. 그래서 나는 양반이란 말을 들을 때마다 나에겐 너무나 가당치 않다는 송구함에 몸둘 바를 모른다. 동시에 나의 몸가짐 마음가짐과 행동이 모범이 되고 양반다워서가 아니라 조상 뼈대 우려먹는 양반이란 뜻이기 때문에 모멸감과 자괴지심을 동시에 느끼면서 이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양반이 되라는 충고와 격려로 받아들인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새 양반`이란 말에 핏대 올리고 흥분했던 지난날이 부끄럽기만 하다. 이제 누가 나에게 `새 양반`이라고 말해 준다면 그 보다 영광스럽고 감사한 축복과 격려는 없을 것이다. 죽은 사람들로 하여금 죽은 자를 장사지내게 하라는 말은 전통과 구습의 노예가 되어 장래를 보지 못하고 과거를 사수하려는 어리석음에 빠지지 말라는 교훈이다. 이 시대의 양반이란 `염치나 도리를 알고 굳은 의지와 역사적 사명감으로 한 시대를 이끌어 가는 지도자`라고 정의하면서 양반은 어느 시대에도 필요한 인물이란 사실을 새겨두고 싶다. 우리의 자손들을 그 시대가 갈망하고 필요로 하는 `새 양반`으로 기르는데 온 정성을 다할 때 가정이 번창하고 나라가 융성해진다고 확신한다. (2003. 8)
최종편집:2025-05-21 오후 03:2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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