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여왕이라는 오월도 며칠 남지 않은 마지막 주말 잠실종합운동장역 3번 출구에 약속시간보다 30분이나 일찍 도착해서 관광버스를 기다리면서 나는 건너편에 높게 지어진 잠실2단지 아파트를 바라보며 잠시 감회에 젖었다가 한편으로 착잡한 심경의 묘한 감정이 교차되어 순간적으로 머릿속이 약간은 혼란스러웠다.  십여 년 전까지만 해도 내가 살던 곳이었는데, 좀 더 큰집으로 넓혀간다는 생각으로 어렵게 마련한 집을 팔고 이사를 하였더니 그 후에 재건축 붐이 일면서 이곳은 엄청나게 집값이 올라 짧은 소견으로 잘못 판단한 자신의 우둔함에 후회를 하고 자책을 했던 기억이 새삼 떠올려 졌기 때문이다.  운이 따르지 않으면 재물도 찾아오지 않는 것이라는 교훈을 얻은 곳이기도 하거니와 엄청나게 변해버린 주변의 모습이 조금은 낯설기조차 하였던 것이다. 그러는 사이 출발시간인 8시가 되어서야 버스도 오고 초등학교 동창이며, 금수면 향우회 사무국장인 황국성도 도착해서 함께 차에 올라 30여 분 정도 지체를 하고는 고향으로 출발을 하게 되었다.  해마다 `참외축제` 행사를 하다가 올해부터는 `생명 문화 축제`라는 주제로 새롭게 하는 행사라면서 꼭 같이 가자는 친구의 권유도 있었지만 고향을 마음으로만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것보다 이런 기회에 참여하는 것도 고향사랑의 방법이 되겠거니 하는 어줍잖은 애향심도 발동이 되어 참가신청을 하였던 것이다.  두 대의 버스 중에 2호차에 타게 되었는데 우리면(금수) 출신은 겨우 세 사람만 참석하고 아는 얼굴이 별로 눈에 띄지 않아서 아쉽기는 해도 고향행사에 간다는 생각에 약간은 들뜬 마음으로 친구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그리고 향우회 홍보위원의 안내를 받으면서 세 시간 남짓의 시간을 달려서 성주 성밖숲 행사장에 도착하여 고바우식당에서 국밥 한 그릇을 맛있게 먹고는 전통시장 구경을 하게 되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오늘이 마침 성주읍 장날이었던 것이었다. 시장은 옛날 모습을 거의 간직하고 있었는데도 사람들이 북적이던 삼, 사십 년 전 그때의 장날분위기는 아니어서 조금은 쓸쓸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는 한개마을로 이동했다. 전통 한옥이 잘 보존되어 있고 많은 인물이 배출된 한개 마을은 군청에서 나와 이 마을의 역사와 유래를 설명하며 안내하는 해설가의 열정적인 소개가 아니더라도 개인적으로는 특별한 인연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나의 외가댁이 이곳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외가식구들이 외지로 이사를 가고 없지만, 십 여년 전까지만 해도 외숙모님께서 집을 지키고 계셨는데 한동안 연락도 못 드리고 외사촌 형제들과도 소식을 끊다시피 하고 지내왔었으니 바쁘다는 핑계로 사람의 도리를 제대로 못하고 살고 있는 오늘날 현대인들의 모습이 곧, 나 자신의 모습인 것을 새삼 깨닫는 시간이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는 가운데 일행에서 잠간 빠져나와 옛 기억을 더듬으면서 외갓집을 찾아보려 했는데 전통마을로 지정되고부터 개·보수를 하고 정비를 한 탓인지 외가댁을 찾을 수가 없는 게 아닌가. 분명 이곳이다 싶은데 집이 헐리고 새집이 들어서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골목도 옛날 같지 않은게 시골인데도 너무 오랜만이라서 그런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비를 맞으며 이리저리 헤매다가 버스로 가야하는 시간이 되어 되돌아 와야 했는데 물어볼 사람도 눈에 뛰지 않고 관광지처럼 변해서 외지에서 온 사람들만 북적이는 외가동네를 떠나오면서 나는 왠지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기왕에 한옥마을로 지정해서 우리의 전통과 문화와 정신을 보존하는 곳이 되기 위해서는 마을입구의 관광안내소부터 한옥으로 다시 바꾸고 군데군데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양옥집들도 정비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도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한개마을에 가면 전통사상과 문화를 한가지는 배우고 갈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음 행선지는 오늘 행사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세종대왕자태실이었다. 천하의 길지를 골라 18명의 왕자와 원손인 단종의 태를 안치한 세종의 뜻을 짐작하고도 남을 명당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있는 곳이었다.  주변산세도 물론이고 태가 묻힌 월항면 선석산 아래 태봉 정상에서 바라보는 그곳의 풍광은 아름답기도 하면서도 신비한 기운이 가득 느껴지는 듯하였다.  성화 채화도 하고 경건하면서도 성대한 의식을 치루는 가운데 무용단의 퍼포먼스가 태실 안에서 진행되는 것 보다는 본행사장에서 하는 게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으며 모든 행사준비가 조금 부족한 듯하고 뭔가 졸속적으로 이루어 지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태(胎)를 소중히 다루는 것은 생명의 탄생을 신성시하고 존중하는 생명사상의 참뜻이기도 하지만 지역축제로 승화시키기에는 무언가 아쉬운 부분이 있는 것 같은데 거기에 예술을 접목시켰으면 어땠을까? `생명의 존엄과 문화예술 축제` 괜찮지 않은가? 담당공무원의 참고와 검토를 부탁드리고 싶다.  돌아오는 길에 나는 마을입구의 소나무와 빼어난 산세에 반해서 정신없이 카메라 셔터를 누르다가 하마터면 버스를 놓칠 뻔하기도 하였다. 대가면의 어느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서 한우불고기로 포식을 하고 성밖숲 본행사장으로 갔을 때는 수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꽉 채우고 기다리고 있었다. 7시에 개막식이 시작되고 성화가 도착하여 성화대에 불이 붙여지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버스를 타고 서울로 돌아와야 했다. 승용차로 하루 전에 따로 내려온 이정록 금수면 향우회장님과 전 회장인 문동환 회장님이 같이 무학으로 가서 쉬었다 내일 함께 올라가자는 제의를 거절할 수밖에 없었는데 다음날은 내가 회장으로 있는 국제문예산악회의 북한산 산행이라는 중요한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이정록 회장이 얻어준 수입감자와 무우, 주최측에서 준 참외 한 박스, 푸짐한 선물을 안고 새벽 한 시가 되어서야 집에 도착하였는데, 여행 내내 같이 움직이며 말벗이 되어주고 함께한 황 사무국장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향우회일도 열심이지만 친구들을 위해서도 많은 수고를 아끼지 않는 좋은 친구가 있어서 얼마나 든든한지 모른다.  새벽부터 늦은 시간까지 움직이다보니 피곤하기도 하였지만, 고향의 기운을 가득 받고 오랜만에 고향사람들과 보낸 시간이 마냥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서 이번 고향여행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것이다.
최종편집:2025-05-21 오후 03:2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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