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를 팔러 북평장에 간 아버지는
소값이 똥값이라며 우체국 앞 대폿집에서
연신 막걸리만 한나절이다
검정 고무신 갖고 싶은 내 맘
아는지 모르는지
노을빛 해거름을 안주 삼아
메밀묵 퍼드러진 국물이 눈물처럼 울먹인다
소 팔아야 느들 오라비 학비 부칠 텐데
걱정 마세요, 송아지는 제가 키워요
아버지 지게의 건초와 쇠똥 냄새가
우리집 대들보라며 당당해하셨잖아요
설 대목장이었던가
아버지는 꽃나비 무늬가 박힌
까만 고무신 한 켤레를 사 왔다
그 신발 껴안고 좋아라 춤추던 그 여식은
아버지가 좋아하는 고등어자반을 사러
오늘, 북평장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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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대목장은 예로부터 설을 쇠기 위해 사는 사람이나 파는 장꾼들로 북적대기 마련이
다. 장날 어른들을 따라 와서 얻어먹는 장국밥 맛은 두고두고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남게 마련이고, 어른이 되어서도 그 맛을 찾으려고 장날을 찾는 사람도 많다. 볼일을 끝낸 어른들은 벌건 국물에 말아먹는 국수에 막걸리 한 잔이면 돌아갈 길이 삼십 리라 해도 마음이 든든하다.
북평장에 소 팔러 간 아버지는 똥값이 된 소를 팔고는 쓰린 속을 달래려고 연신 먹걸리를 들이키는데, 아버지를 위로하는 딸 아이가 대견하다. 아이들이 때로 어른의 좌절을 이기는 힘이 된다. 아이를 온실의 꽃으로 키우지 않고 당당하게 키웠을 때 이야기지만. 어린 시절 시인의 아버지는 '까만 고무신 한 컬레'를 사 왔다. 그런 아버지를 위해 오늘, '고등어자반을 사러' 젊은 날 아버지의 그 북평장에 간다. 읽을수록 목구멍에서 뜨거움이 올라오는, 아름다운 시(詩)다.
(배창환·시인·성주문학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