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랍(2010. 12. 23)에 이곳 온 지도 20여 일이 지났다. 좁은 국토, 높은 인구밀도인 우리와 비교가 되기 시작했다. 우선 주택 문제인데 그 명칭부터 알 필요가 있다. 아파트는 플랏(Flat)이라 하고 단독은 하우스라고 하며, 아파트보다는 단독을 더 선호하고 값도 더 비싸다고 한다.  하우스는 우리의 `국민주택규모` 같은 그런 규정이 있는지 우리들 계획도시 같은 느낌이 드는 택지로 조성돼 있었다. 그 100여 평 중 반 정도는 차고와 창고, 정원으로 돼 있었으며 간혹 유실수도 있었지만 거의 잔디밭이었다.  우리 같으면 5층 이하 단독 빌라를 지어도 10여 세대의 주택 문제는 해결할 대지에 겨우 1개 세대의 주택이라니 이 나라 주택문화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 나라의 하늘은 구름 낀 날도 많지만 맑은 날엔 우리 가을하늘 같았다. 이곳은 온난습윤 기후인지라 더울 때는 습기 때문에 무척 후텁지근하다가도 바람이 불면 그게 또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맑은 날 둥둥 떠다니는 구름조각을 보노라면 정말이지 손에 잡힐 듯 천상이 가까워져 몽환적 동화 속을 거니는 듯했다. 때때로 날아오는 중국의 황사와 먼지로, 매연으로 인한 우리의 회색빛 하늘과는 영 달랐다.  실제로 이곳은 위도상 남반구에 위치해 있어 대기권이 낮게 형성돼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하늘이 맑은 이유는 또 있었다. 그것은 아마도 고층이래야 시티(여기서 말하는 City는 우리의 명동이나 강남 같은 번화한 곳의 지칭)의 이름난 공공건물들을 제외하면 고층이 별로 없고 잘 산다는 동네의 아파트도 10여 층이어서 먼지·매연이 적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게다가 시티와 한적한 거리의 가로수, 취락지보다 더 넓은 군데군데의 공원 수목들, 주택 안팎의 정원수와 잔디밭 등 오나가나 초목이 있어 정화 기능이 있고, 여기다 늘 불어오는 해풍과 육풍이 대기권을 순환시켜 오염을 막아주는 것이라 생각되었다.  특히나 주택 안의 정원수는 등록이 돼 있어 정원사(士)가 관리하고 신고하지 않고 베어내면 200만 원 정도의 벌과금을 내야 하는 것이 이 나라 환경 정책이란다. 자동차는 많아도 그 특유의 냄새나 매연 같은 것은 없는 듯했다.  자동차 하니 생각나는 게 있다. 이곳 대중교통 요금은 싼 우리와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비싸 자동차는 필수란다. 어느 날 거리를 지나다 각종 자동차가 늘어서 있는 곳을 보고 나는 어디 이 근처에 자동차 공장이 있는가 했더니 중고자동차 매매장이라는 것이다. 우리 `장안동`같은 곳이 아니라 재래시장 상품진열 같이 차종도 다양한 4∼50대의 차를 진열한 점포가 늘어서 있었다. 집집마다 두세 대의 차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니 우리가 동네 슈퍼 이용하듯 하는 것이 이곳 자동차 매매 현장이라는 것이다.  그것을 본 나는 적절한 비유를 찾다가 우리 `지게문화` 시대로 돌아갔다. 해방과 6·25 전후 우리들 농가에 지게 서넛 채는 기본이었다. 그 지게 적재정량도, 사용연한도 없이 혹사만 시킨 우리들이었다. 어쩌다 과적한 나뭇짐을 지고 산을 내려오다 전복사고를 당해 부서져야 지게 운명은 끝이었다. 그때 집집마다 정연히 늘어선 `지게계류장`과 이 나라 거리 점포들의 차 진열이 묘한 오버랩이 되는 것이었다.  당시 5일장에 가면 중고가 아니라 새 지게 파는 골목이 있었다. 그것도 자가 제작해 쓰다가 농업인구 증가와 함께 수요가 늘어나니 상업적 제작자가 생겼던 것이다. 자가 제작은 무겁고 투박하지만 상품 목적인 지게는 그렇게 날렵할 수가 없었다. 실용성은 좀 떨어질지 모르지만 `모형·디자인`이라는 새로운 감각이 우리들 일상에 자연스레 스며든 시기는 아니었을까 한다. 오늘의 산업사회에서 `디자인`이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하면 그 시발은 지게도 한 몫을 한 것은 아니었을까.  세계에서 유일하고 가장 독창적인 운반 수단이었던 지게, 6.25때 참전 미군이 `A frame`이라 했던 지게를 언제부터 썼을까? 단원 김홍도의 풍속도에 지게 진 보부상이 등장했으니 아마도 그 훨씬 이전부터였을 것이라는 유추가 어렵지 않다. 보부상이 역사의 유물로 사라졌고 우리 농경민족의 산 역사인 지게와 손수레, 조금 진일보한 소달구지 또한 그들에 얽힌 애환과 함께 역사 속에 묻어버린 오늘의 산업화 사회이다. 지게만 지는 농투성이라고 자학만 하던 때가 어제 같은데 벌써 반세기가 흘렀다.  이렇듯 인류 문명사는 운반구 하나에도 그런 발전 단계를 거쳤으니 그 과정은 동서가 다르지 않으리라.
최종편집:2025-05-20 오전 09:3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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