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자탑은 탑이라고도 하고 태자바위라고도 부르는 3층의 천연 바위이
다. 성주군 벽진면 매수리 수남이라는 마을의 앞산에 있는데 이곳은 벽진
면 소재지에서 금수면 성주땜으로 가는 길목이기도 하다.
중학교 때인지 고등학교 때인지 기억이 확실하지는 않지만 학교의 현관
환경 게시판에 지역의 유적을 소개하며 태자탑의 전설을 간단히 소개해
놓은 것을 본 기억이 있어서 태자탑이 있다는 것은 오래 전부터 알았다.
2년 전쯤 시의 제재를 가야의 유적에서 찾으면서 한 10여편의 시를 쓴
적이 있는데 이때부터 성주의 가야 유적과 태자탑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
작했다. 태자탑에 대한 어슴프레한 기억을 떠올려 이리저리 그 소재를 알
아보던 중 성주군청 홈페이지에서 태자탑의 전설과 소재(所在) 알게 되었
다.
내가 처음으로 태자탑을 찾아간 것은 이태 전 여름이었는데 주민들에게
소재를 물으니 수풀이 우거진 앞산을 가리키며 저것이 태자탑이라고 하고
가는 길은 없다고 했다. 날도 저물어가고 엄두가 나지 않아 올라가지는
못하고 켐코더의 줌을 한껏 당겨서 녹화만 해 가지고 왔다. 길이 없으니
겨울에 가면 좀 쉽게 갈 수 있지 않을가 생각을 했었다.
지난 동짓달 고향에 올 일이 있어 고향집에서 점심을 먹고 3시쯤 집에서
출발하여 태자탑 인근에 차를 몰아다 놓고 그냥 어림짐작으로 탑이 있는
등성이를 향하여 올라갔다. 올라가는데 한 30분쯤 걸린 것 같다. 길이 없
는 곳을 무작정 올라가다 보니 가시덤불이나 자잘한 나무들이 길을 막아
오르는데 애를 먹었다. 그러나 내려올 때는 높은 등성이를 따라 내려오는
길이 있어 멀기는 해도 다니기가 한결 수월했다. 군청에서나 면사무소에
서 오르내리는 길의 나무들을 잘라 다니기 불편함을 다소 정리를 해 놓았
고 옛날부터 다니던 길인 듯 보였다. 그리고 설쇠러 간 김에 섣달 그믐날
한번 더 답사하고 사진도 촬영을 하였다.
태자탑은 자연의 바위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둘레가 4m 씩이나 되는
큰 바위가 3층으로 포개져 있다. 석질은 화강암 같은데 돌의 입자(粒子)가
굵고 잘 부스러지는 것이 퇴적암 같기도 하다. 지질에 문외한이라서 잘
모르지만 화강암이라면 너무 석질이 물러 보인다. 주위에 둘씩 포개진 바
위도 더러 있다.
지형적으로 절벽에 가까운 가파른 산세를 형성한 산자락에 3층의 자연석
이 쌓여져 있으니 옛날 사람들이 신비하게 생각하고 신성한 장소로 여기
는 성소(聖所)가 될만한 조건을 갖추었다. 그래서 전설도 생겨나고 오랫동
안 지역 주민들이 동제와 기우제를 지낸 장소가 된 모양이다.
두 번의 답사를 통하여 성소라면 무슨 색다른 표시가 있을 것 같아 바위
들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태자바위에는 아무런 흔적이 없어 보이고 주변
의 바위들에는 내가 보기로는 서너 곳 정도에 암각(巖刻)이 되어 있다. 그
것들은 분명 상형문자로 보였다.
한 개의 바위에는 간(干)자 같기도 하고 왕(王)자 같기도 한 글자가 새
겨져 있는데 자세히 보면 간자도 왕자도 아닌 글자다. 귀양왔다는 대가야
월광태자나, 이곳에서 놀이를 즐겼다는 성산가야의 태자가 새긴 글씨가
아닌가 라고 부질없는 상상도 해보았다.
다른 한 바위에는 집모양의 암각이 새겨져 있기도 하고 또다른 곳에는
말로는 설명하기 곤란한 형상의 암각이 있는 걸 보았다. 울산이나 고령처
럼 화려한 암각화는 아니지만 이곳에도 비록 글자로 쳐서 네다섯 자(字)
밖에는 안되지만 암각화가 존재한다. 그것이 천년전 이천년 전의 암각화
라면 소수일지라도 커다란 역사적 의의를 갖는 자취가 아닐 수 없다.
전설과 답사를 통하여 살펴보고 느낀 바들을 한편의 시로 읊어 보았다.
태자탑
달리다 멈추어선 산자락 아래로
뛰어내린 큰 내와 들판은
탁 트인 시야로 자리를 깔지만
여기 금표(禁標)에 몸이 묶여
눈빛만 형형했을 그대를
유폐된 대가야국 태자라고도 하고
어떤 이는 성산가야 태자라고도 한다.
싸우다 힘이 부쳐
멸망한 나라의 한 모서리
하늘만이 포갤 수 있는
큼직한 삼 층 바위
공깃돌처럼 가볍게 쌓아놓고
그래도 다스리지 못한 아픔이 남아
탑이 사무치도록
목놓아 호곡했을 태자여
그대는 이제 정처가 없다.
대왕을 꿈꾸며
흩어진 바위 마다
암각의 상형문자를 새겼다.
세월이 가도 이룰 수 없는 꿈은
가슴에 시린 한이 되어
풀리지 않는 천년의 암호로 남았다.
역사의 강줄기 되돌릴 수 없어
지우지 못한 눈물은 *배내로 흘러가고
한숨은 *밝은들의 일렁이는 바람이 되어 떠돈다.
짱짱한 하늘을 우러러 빌어도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던
기우는 나라의 태자는
비원의 탑이 되어 하늘 밑에 섰다.
* 지명, 배내는 이곳에서는 梨川, 밝은들은 발가이(明澗)들 이라고 함.
태자탑 주변은 비록 전설과 몇 개의 암각화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사료
가 빈곤한 곳이기는 하지만, 이곳은 신성스런 장소이며 동시에 역사적 가
치를 지니고 있는 곳이다. 우선 시급한 것이 전문적인 조사를 통하여 암
각화의 존재 확인과 그 의미를 밝혀야 한다. 그리고 전설과 가야국과의
관련에 대한 학문적 접근도 시도해볼 필요가 있다. 또 이곳에서 행해졌다
는 동제나 기우제에 대한 민속학적 조사연구나 재현도 해 봄직하다.
이곳은 가파른 산정이고 석질이 단단하지 못한 바위로 이루어져 있는 곳
이다. 그러나 태자탑의 모양이 신기하고 전망이 매우 좋아 등산코스로
다듬으면 한두 시간 정도가 소요되는 매우 훌륭한 산책로가 될 지형을 갖
추고 있다. 그래서 먼저 태자탑 등 지형지물을 철저히 보호할 대책을 세
운 후 관광코스로 개발하면 큰 비용이 들이지 않고도 관광자원이 넉넉지
못한 성주에 명소 한 곳을 더 만들 수 있을 것으로 본다.
--------- 배 계 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