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1일 패키지 관광길, 블루마운틴(Blue Mountain)을 갔다. 산이 푸르니까 당연히 그런 이름이 붙었겠지 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이 산은 유칼립투스(약칭 유칼리)의 원시림으로 뒤덮여 있었고, 이 나무에서 분비되는 수액이 강한 태양빛에 반사되면 주위의 대기가 푸르게 되어 마치 산 전체가 푸른 운무에 휩싸인 것처럼 보인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란다. 또 그 나무에는 알콜 성분이 다량 함유돼 있어서 그 잎을 먹고 그 공기를 마시는 코알라는 항상 취한 상태여서 하루 20시간을 자야 한다는 것이다.  정말이지 그들은 나무에 올라앉아 잠만 자고 있었다. 이 나라 대표적 동물 코알라는 원주민어로 `물을 마시지 않는다`는 의미인데 살아 있는 인형이라는 별칭도 붙어 있었다. 관광객을 위해 사진을 찍을 때도, 등이나 머리를 쓰다듬어 줘도 별 반응이 없었다. 특별히 스트레스 줄 일이 아니면 네 맘대로 하라는 듯 꼭 무생물 같았다. 가끔, 달려있는 유칼리 잎이 마치 차려논 밥상이듯 그것을 먹는 모습이 그렇게 평화로울 수가 없었으며 오물거리는 입 이외는 별 움직임도 없었다.  코알라가 그렇게 된 연유가 있었다. 원래 이 대륙은 판지각 운동으로 아프리카와 서남아시아대륙(Gondwanland)에서 떨어져 나와 지금의 대륙이 되었고, 대륙이동에 따라 사자 호랑이 등의 육식동물도 있었으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멸종되는 바람에 천적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천적이 없어진 마당에 국가로부터 보호받는 환경에다 먹이까지 풍부하니 생존을 위한 투쟁이나 경쟁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인간의 원초적 생존·투쟁 본능을 비웃는 것인지 아예 무시하려는 것인지 눈을 뜨고 있어도 무표정, 감고 있으면 외손녀의 표현처럼 바보 같기도 하고 어찌 보면 천사 얼굴 같기도 한 그들의 세계에서, 먹이 사슬의 공포나 긴장은 물론 온갖 산 것들이 펼치는 약육강식의 추한 모습은 찾을 수가 없었다. 그 악업, 그 원죄를 에덴동산으로 가서 찾아야 하는 일일까…?  유칼리나무 하면 떠오르는 내 소년적의 기억이 있다. 그것은 어느 시인이 국외 여행을 하며 쓴 시에 인용되었는데, 인용된 그 유칼리나무가 아름다운 시구와 결합하여 시심 속의 고상한 인품과 학문 섭렵을 함의(含意)하는, 귀족어 같은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 시구는 지금은 생각나는 게 없지만 아마도 그 이름만으로도 한창 예민할 때의 내 감수성을 자극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이곳 블루마운틴의 대표적 관광상품 세자매봉을 갔다. 그런 신비경을 아직은 세계인들이 많이 몰랐는데 시드니올림픽 이후 확실한 명소로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자연이 신비와 경이의 피조물임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니 조금은 의외였다. 엘리자베스 여왕도 1954년에 다녀갔다는 표지석도 있었다.  신화와 전설은 언제나 여인으로 시작한다. 원주민 시기에 미녀 세 자매가 있었는데 마왕이 납치하려 입에 물고 가다 재채기를 하는 바람에 떨어져 바위가 되었다는 그런 얘기였다. 세 봉우리가 마치 불쑥 솟은 죽순 같기도 하고 손가락 셋이 창 없는 모자를 쓰고 선 모양과도 같았다. …태초에 불덩이로 태어난 땅덩이, 식어 흙모래가 됐다더라. 비 내려 얕은 곳은 바다 되고 높은 곳은 산이라 불리었다네. 그 바위에 비바람 몰아치니 성긴 흙모래는 강으로, 바다로 흘러가 버리고 단단한 바위로, 버티다 버티다 못해 세 봉우리로 남은 것이 세자매봉이 아닐런가.  아무나 할 수 있는 상상을 어려운 듯 생각해낸 나였다. 인간의 상상으로는 차마 범접할 수도 없는 신의 영역 앞에 일시적 사유의 세계가 마비가 온 듯한 나이고 말았다. 다만, 그 세자매봉 앞에 갓 생긴 듯한 애기 봉우리도 보이고 있어 또다시 억만년 이후는 열 자매가 될는지 누가 알겠는가라는 생각을 하며 발길을 다음 코스로 옮겼다.  이 나라 개척시대의 주산업이었던 석탄광산을 보려 스릴 만점의 거의 수직 케이블을 탔다. 이 나라는 아직도 석탄, 철광석 등이 노천광이라고 하며 핵 발전에 필요한 플루토늄 매장량이 세계 최대이고 부존자원이 국력의 90%를 차지한다는, 신비의 나라라는 가이드의 설명에 그만 기가 꺾이고 말았다.  이 나라 세계유산이 17군데나 지정돼 있었는데 지금까지 이곳 블루마운틴과 오페라하우스 겨우 두 군데만 본 것이다. 정말로 이름만 듣고도 호기심이 일어나는 곳이 한둘이 아니었다. 원생지역, 순도 100%의 자연지역, 포유류 화석지대, 열대우림 보호구 이들이 모두 자연 그대로의 생태계, 내가 가장 궁금해하고 알고자 하는 미지의 세계인인 것을 어쩌랴!  진화하지 않은 원생의 생물, 일테면 하등동물들, 어류들, 동식물들을 볼 수는 없을까? 강물도 거꾸로 흐르게 하려는 인간의 무한 욕구로 얼룩진 오늘의 지구 모습에서 자연 그대로는 얼마나 아름다운 세계일까! 알량한 이기심으로 외경(畏敬)인 대자연의 순리를 거역하고 정복의 대상인 듯 유전자 `조작·변종`으로 자연을 거스르는 행위를 우리는 `가증(可憎)`으로만 맞서야 하는 것일까?  시간적 경제적 제약은 생각지 않고 겨우 블루마운틴에서 아름드리 고사리 나무를 본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니 무한욕구에 반(反)한 빈곤감만 더 보탠 결과가 되고 말았다.
최종편집:2025-05-20 오전 09:3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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