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재 종반이라 귀국준비도 병행이다. 애 많이 썼다, 고생했다, 고맙다 이 말밖에 할 말이 없다. 그래도 요소요소, 명소만의 관광을 위해 짜임새 있게, 준비와 계획을 세웠음이 역력하여 그 정성이 가슴을 저릿하게 한다. 내 생업을 수입과일로 했지만 고가여서 쉽게 먹을 수도 없던 열대과일의 포식, 각국 요리의 시식으로 식도락을 만끽한 것 등이 모두 고맙다는 말이다. 딸을 잘 둔 건지 사위를 잘 본 건지, 여하간 고맙다는 말을 진 반 농 반을 빙자한 나의 참뜻일 뿐 가식은 없다.  시차도 2시간 밖에 없어 특별히 적응할 것도 없었지만 변덕 심한 날씨, 40도를 오르내리는 직사광선에 피부가 수난을 겪는 것도 이제는 대비할 만큼 적응하고 있는데 귀국을 앞두니 조금은 아쉽고 미진하기도 하다. 그것은, 걱정하던 얘들 사는 것 눈으로 확인한 것은 말고, 소모한 경제적 시간적 재화만큼의 값어치를 챙겼는가 하는 데에 초점을 맞췄다는 의미이다. 특히 내 건강 때문에 상당한 어려움도 겪었지만 이제는 그런대로 버텨나갈 방법도 채득했는데, 꼭 `00 길나자 보리양식 떨어진다`는 속된 경상도 사투리 꼴이 된 것으로 긴긴 여행의 종지부를 찍을까 한다.  또 명색이 `글쓰는 사람`의 값을 한다고 소회(所懷) 쓰기에만 몰입하다 며칠 후면 다시 잡다한 우리 인생사에 함몰될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워짐을 어쩌지 못하겠다. 하지만 어찌 하겠는가, 현실은 현실인 것을….  오늘은 우리 입맛에는 그래도 제일 잘 맞는다는 태국 요식집 타이 파송(Thai Pothong)을 갔다. 매운 맛의 동양식과 향신료를 많이 쓰는 서구식의 혼합 같았고 코스별로 요리가 나올 때마다 이름을 일러줬지만 남은 것은 하나도 없다.  이 업소 창업에 관한 얘기가 인상에 남는다. 창업자가 태국을 갔었는데 자질이 비범한 그 호텔 벨보이를 보고 데리고 왔다는 것이다. 그에게 중책을 맡긴 이 업소는 날로 번창하여 지금은 경영에 참여할 만큼 크게 성공했다는 것이었다.  이럴 때 우리들이 항용하는 말, `가진 집이 여나믄채`라고 하는데 바로 그가 그렇다는 것이다. 어떻게 그렇게 잘 아느냐고 했더니 이런 저런 인맥으로 알게 됐으며 그가 있으면 특별 후식이 나온다고 했지만 출타했다는 말을 듣곤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다.  오늘은, 아마도 마지막 시내 관광이 될 왕립식물원(Royal Botanic Garden)을 갔다. 오페라하우스와 하버브릿지의 조망이 가장 좋다는 공원에는 전 세계에서 수집한 4천 종이 넘는 수종이 있다고 했으며, 원래 이곳은 총독을 위한 채소밭이었지만 농부들이 일사병으로 자주 쓰러지자 이를 예방코자 나무를 심었다는 것이다.  시드니 중심부이고 여러 곳의 대표적 명소가 있는 항구라면 상상만으로도 그 크기를 짐작하겠지만, 레포츠족의 개인소유 요트, 중소 여객선과 관광선이 즐비했으며 정박해 있는 내 생전 못 본 크기의 거대 유람선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영화에서나 본 비운의 호화유람선 타이타닉과 비교를 했더니, 역시 보지 못했으니 잘 모른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무슨 기념일이나 큰 행사가 있을 때는 항공모함도 들어온다는 항구였다. 세계 3대 미항 중의 하나인 시드니의 해안도로를 걷자니 60여 년 전에 배운 `꿈의 항구`가 눈앞에 펼쳐졌다  10여 km나 될 듯한 해안도로에는 가벼운 조깅과 산책을 하는 사람도 있었고 특히 바다에 대형 스크린을 설치한 노천 영화관(Open air Cinema)이 있어 더욱 흥미를 갖게 했다.  앞서 말한 바다를 향한 가장 전망 좋은 곳엔 의자처럼 생긴 바위가 있었는데 그 뒤에는 미세스 멕콰리스 체어(Mrs. Macquaries Chair)라고 하는 표지석이 서 있었다. 2대 총독 멕콰리 부인이 이곳에 앉아 향수에 젖곤 했다는 데서 따온 이름이란다.  돌아오는 길 안작교(Anzac Bridge)를 지나며 들은 얘기도 이곳 호주 슬픈 역사의 한 장이었다. 1914년 영국이 독일에 선전포고를 한 1차대전이 발발하자 호주와 뉴질랜드가 연합 군단을 결성하여 유럽 전선에 33만 명을 투입했는데 6만 명이 희생됐다는 것이다. 그 아픈 역사의 이름으로 두 나라가 합작해서 세운 다리이며, 적지인 터키에 상륙한 4월 25일을 안작의 날(Anzac Day)로 정하여 기념행사도 한다고 한다.  이 호주라는 나라는 영국 연방국이 되고 유엔에 가입되어 국제사회에서 정식 국가로 인정받기까지 고난도 있었음을 알게도 하는 것이었다. 동시에, 대륙인들이 저지른 원주민 말살정책이 실효가 없자 다시 혼혈·동화정책으로 전환하였고, 그래서 백인 집단촌으로 강제 축출 당했던 사실도 함께 말이다.  오늘의 원주민들은 그런 잔혹사를 안고 사는 부족이지만 지금 그대로가 행복하다고 한다니 그들에겐 국가라는 개념이 없다는 것이 정설이라는 것이다. 이런 사실에서 오늘의 문명사회가 추구하는 진정한 행복의 의미가 무엇인지 헷갈리게 하고 있었다.
최종편집:2025-05-21 오후 03:2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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