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후면 이곳을 떠난다. 50여 일 간에 무엇을, 얼마를 볼 수 있었을까만 그래도 기억에 남는 것은 있다. 이 나라 근로자 정년이 있긴 해도 그와 무관하게 하고 싶으면 하고, 싫으면 언제든지 퇴직하여 국가가 부담하는 실업 수당으로 호화생활은 아니지만 여행도 다니며 생활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사회 보장제도가 잘 돼 있다고 한다. 그래서 정확한 수치는 모르지만 국민 담세율이 대단히 높다는 것이며 결국 내가 낸 세금으로 내가 수혜자가 된다는 그런 얘기였다. `청년실업`이라는 말도 없으며 실업 수당만으로도 생활은 할 수 있어서 그것이 잠재적 인력의 손실이라는 사회적 문제로 나타나기도 한단다. 즉, 우리는 일자리가 없어 `청년백수`가 있지만 이 나라는 일하기 싫어하는 청년들이 있다는 말이었다.
우리는, 지금은 많이 희석됐지만 이른바 화이트칼라 블루칼라가 엄존하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이 나라의 고소득자는 블루칼라인 현장 근로자라는 것이 정설이며, 이것은 몇몇 우리 한국인들의 실태를 보면 여실하다는 것이 이곳 교민들 사이의 화제라는 것이다.
앞서도 지적했지만 다인종 다문화로 인한 폐해도 있었다. 여기 기차는 우리 시내버스 같은 기능이었고 이용상의 준칙 같은 것도 게시돼 있었으나 그게 무색할 정도로 쓰레기가 더러 보이고 있었다. 그것도 여러 민족이 살기 때문이라고 얘들은 말한다. 그러나 기본적 시민의식, 특히나 도심에 가면 `쇼리`가 생활화 돼 있음을 체감할 수 있었는데 그것은 백인들만의 문화임이 분명하였다.
우리 정서에서 불편한 것도 있었다. 어디 가서 간단히 즐길 일이 있을 때도 간편한 식음료의 준비는 필수였다. 노점은커녕 간이 판매대도 없었다. 그 너른 해수욕장도 예외는 아니어서, 그걸 본 우리 한국인의 제일성 `삼겹살집`이 어디냐고 했다는 얘기가 곧잘 회자된다는 것이다.
이번 여행은 내 인생에서 거둔 조그만, 아니 큰 보람이었다. 자식 사는 곳 가서 보낸 것을 두고 그 정도가 무슨 대수냐고 할지도 모르지만 이도 못할 것을 상정(想定)하면 답은 절로 나온다. 더구나 나름대로 열심히 사는 것 보여주는 것에다 맛있는 것 먹이고 좋은 곳 관광시켜주려고 애쓰는 것이면 더 바랄 것이 있겠는가. 구태여 자식은 부모가, 부모는 자식이 소중함을 새삼 일러 무엇 하랴!
이곳서 만난 우리 동포들과 우의를 다지며 지내고 좋은 일 궂은 일 다 챙기며 사는 것도 부모로선 안도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한다. 특별히 앞집에 사는 황현준 씨와의 우의는 형제간 이상임을 보여줬다. 그제는 그 집에 초청을 받았고 어제는 함께 관광을 끝낸 다음 저녁엔 또 한판의 왁자지껄, 세 집이 모인 잔치판을 벌였다. 애들도 어른들도 갓 돌이 지난 서연이의 재롱에 모두 빠져 온 집안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나는 `하브지`로 통했으며 아마도 오래도록 내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출국 전날 밤은 50여 일 호주 방문의 피날레를 장식하려는 듯 세 가족이 방문해 왔다. 특히 짧았지만 그간의 쌓은 정분을 쉬 잊을 수가 없다고 하며 눈시울을 적시는 감성파의 서연이 어머니도 있었지만 분위기의 반전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화기를 돋우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내 외손녀들이 또래 아이들과 쉽게 친해지는, 아이들 특유의 친화력이 작용했을 것이었다. 간단한 선물도 준비하는 마음 씀씀이도 보였지만 이는 결코 값을 따질 수 없는 따뜻한 인간미의 완결판이 되기에 충분했다.
정말 고맙다는 인사를 반복하는 것으로 내 가솔들의 이번 여행은 그렇게 마무리하고 있었으며, 끝으로 어딜 가나 한국인의 긍지를 잃지 말자는 어쭙잖은 덕담으로 아쉬운 작별의 순간을 맞았다.
지금의 지구촌 시대에 고국에서 온 사람들이라고 서로 향수를 달래며 위안 받을 `유랑의 이민시`는 이미 아님을 감안하면 더욱 값진 동포애였다.
이 글을 끝내면서, 견문을 넓히느라 `책 읽고 여행 다닌다(讀萬卷書 行萬里路)`는 말과, `장님 여럿이 제각각 코끼리를 만져보고 그 부분만을 말한다`는 성어가 생각나 적어놓을까 한다. 실제로 가보지 않고 쏟아지는 정보량으로도 이 정도의 여행기는 쓸 수 있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비록 장님 손이 됐을망정 나름으로는 제대로 한 번 써보자고 했던 것인데 괜한 헛애만 쓴 결과는 아닌지 모르겠다.
아듀! 오스트레일리아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