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인이 있었다. 남편과의 사이에 세 자녀를 두었다. 남편은 직업상 장기 출장을 자주 가야해 세 자녀를 거의 혼자 힘으로 키웠다. 그 어려움은 이루 다 말할 수가 없었다. 자녀들이 독립하여 집을 떠나자 이제는 자신을 위하여 살고 싶었는데 그 꿈은 일순간에 사라지고 말았다. 시동생 부부가 교통사고를 당해, 여덟 살, 열 살, 열두 살의 자녀 셋을 남겨 놓고 죽었기 때문이다. 그 어린 세 조카를 떠맡지 않을 수가 없어 또 다시 질풍노도와 같은 세월 9년이 지나갔다. 이렇게 해서 두 조카도 독립을 하게 되고 막내 조카만 남았다. 이제 몇 년만 지나면 다시 내 인생을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그러나 그것은 큰 오산이었다. 남편이 비서와 바람이 나 버린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단순한 바람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남편이 이혼을 요구하고 나섰다. 우여곡절 끝에 남편은 그 비서와 결혼했다. 그녀의 아픔은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다. 비서와 결혼한 남편은 언제나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전처에 대한 죄책감이었다. 어느 날 전남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전화 내용은 자신을 용서하고, 한술 더 떠서 자신의 행복을 빌어 달라는 것이었다. 이 연속극 같은 이야기는 루이스 스머즈가 쓴 `용서의 기술`이라는 책에 나오는 제인과 랄프의 이야기이다. 엄청난 마음의 상처와 억울함으로 고통 당하고 있는 제인에게 랄프가 자기를 용서하고 거기다가 축복까지 해 달라고 할 때 그것은 제인을 두 번 죽이는 일일 것이다. 상대방으로부터 받은 상처가 있고, 그 상처는 고통을 주고, 고통은 증오를 낳고, 그래서 상대방도 나만큼, 아니 나 이상으로 고통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축복이라니, 가당찮은 말이다. 그래서 용서가 어려운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하기 어려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단연코 `용서`일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마태복음 6:15)고 하시면서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셨다. 끝없이 용서하라는 말이다. 용서야말로 나 자신을 살리는 길이기 때문이다. 용서의 반대어는 복수인데, 증오와 복수는 모든 것을 파괴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이 파괴당하는 것은 나 자신이다. 증오와 복수심에 사로잡혀 있는 동안은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갈 수 없다. 창의력도, 자제력도, 희망도, 시작해 볼 의욕도 사라져 버린다. 증오와 복수심은 가해자나 피해자나 모두를 `고통의 엘리베이터`에 태워 둘 다가 무승부로 끝날 때까지 거기에서 내리지 못하게 만든다. 그래서 개인이나 국가나 먼저 용서하는 쪽이 참 승리자가 되는 것이다. 남아공의 만델라 전 대통령은 27년 동안 외딴 섬의 감옥에 갇혀 살았다. 방에 갇힌 지 4년째 되던 해에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고, 다음 해에 큰아들이 교통사고로 죽었지만 장례식에 가지 못했다. 14년째 되던 해에 맏딸이 아이를 낳고, 면회를 가서 아이 이름을 지어 달라고 했을 때 `아즈위(Azulie)`라고 적어 주었다. `희망` 이라는 뜻이다. 인종 차별로 악명 높았던 남아공의 대통령이 된 그는 제일 먼저 `진실과 화해 위원회`를 설치하여 용서하고 화해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그리하여 자신의 과거의 죄를 인정하고 고백하면 다 사면했다. 반 드 브렉이라는 백인 경찰관이 과거에 저질렀던 죄를 고백했다. 자신과 동료들이 18세의 흑인 소년을 총으로 살해하고 증거를 인멸하기 위하여 그 시신을 불에 태운 일, 8년 후 그 소년의 아버지를 아내가 보는 앞에서 장작더미에 태워 죽인 일을 고백했다. 그 끔찍한 일을 차례로 당한 흑인 노부인에게 판사가 물었다. "반 드 브렉 씨에게 무엇을 원하십니까?" 노부인이 말했다. "남편의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반 드 브렉 씨가 그 장소로 가서 남편의 재를 모아 줬으면 해요." 그 경찰관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노부인은 추가 사항을 덧붙였다. "반 드 브렉 씨는 제 가족들을 모두 데려갔습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그에게 줄 사랑이 아직 많습니다. 한 달에 두 번 그가 우리 집에 와서 하루 동안 시간을 보내기를 원합니다. 제가 엄마 노릇을 할 수 있도록 말이죠. 그리고 나는 반 드 브렉씨가 하나님의 용서를 받았다는 사실과 나도 그를 용서한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합니다. 나는 내가 정말 용서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도록 그를 안아 주고 싶습니다." 사랑할 수 없는 것을 사랑하는 것, 그게 아니면 그것은 미덕일 수 없다.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하는 것, 그것이 아니면 이것 역시 미덕일 수 없다. 용서는 아픔이다. 그러나 그 아픔이 나를 살린다. 용서는 희망이요, 시작이요, 전진이다. 남북의 대화도 이 용서가 선행되어야 한다.
최종편집:2025-05-21 오후 03:2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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