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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 및 청년기의 심산 김창숙
항일독립 및 민주화 투쟁의 가운데에서
심산 선생 선양사업을 위한 움직임
기념비 등 유적 및 문화재를 찾아서
자랑스러운 성주인 심산 김창숙
근현대 유림의 대표자이며 항일 민족운동가, 성균관대학교 창립자인 심산 김창숙(金昌淑, 1879~1962. 5. 10) 선생은 성주군 대가면 사월리 출생의 자랑스러운 성주인이다.
단재 신채호, 만해 한용운과 함께 절대로 뜻을 굽히지 않는 삼절(三節)로 평가 받으며 반독재 투쟁, 민주화 운동, 민족교육 육성 등 평생토록 애국애족 정신을 발휘하며 역사의 귀감이 된 인물이다.
지난 3월 서울 서초구 반포공원에 심산 김창숙 기념관 및 심산문화센터가 성황리에 개관했으며,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선생의 선양사업을 위한 심산의열사적공원 조성이 본격화 되는 시점에서 이와 관련한 기획취재를 통해 위대한 정신적 가치를 재조명함으로써 청소년을 비롯한 지역민에게 성주인의 자부심과 소중한 문화유산에 대한 자긍심을 일깨우고, 애향심 나아가 애국심 고취의 계기를 마련코자 한다. 【편집자 주】
심산 김창숙 선생은 2008년 8월 학술지 `한국사 시민강좌` 하반기호(43호)대한민국 건국 60주년 특집에서 건국의 기초를 다진 `대한민국을 세운 사람들 32명` 중 교육 학술 부문의 한사람으로 선정됐다. 양반지주 출신의 유학자인 선생은 명문가의 안락한 삶을 스스로 저버리고 항일 투사로 나서 일평생을 기구하게 살다 간 지조파 선비다.
심산의 생은 일제강점기나 해방 이후 독재체제 당시 고통 받던 우리민족의 모습을 보여주는 거울이라 할 수 있다. 일제의 끊임없는 핍박 속에 고통을 받아온 민족의 얼굴이었고, 해방 이후 민주화를 열망하던 민중의 모습이었다.
내년이면 광복 67주년을 맞게 된다. 국민의 상당수가 일제 강점기를 경험하지 못했고, 특히 정보의 홍수 속에 살고 있는 청소년들은 노래와 춤, 패션 등 최신트랜드에 민감하며 일본에서 만들어진 오락기, 폭력만화 등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함으로써 가치관의 혼돈을 초래하기도 한다. 더욱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 이타적인 삶으로 일생을 마감한 자랑스러운 성주인 심산에 대해서는 유감스럽게도 문외한인 경우가 많다.
최근에야 비로소 심산에 대한 평가가 재조명 되고, 그를 기리기 위한 선양사업이 점차 확대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지만 아직 그 영향력은 미비해 보인다. 평생을 독립과 민주화 투쟁에 몸 바쳤으며, 자신의 두 아들도 독립운동 과정에서 안타깝게 잃어야 했고, 일제의 모진 고문으로 앉은뱅이로 지내야 하는 장애 때문에 `벽옹(앉은뱅이 노인)`이라고 불리기도 했던 선생을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사진)
과거 우리는 일본에게 우리말, 우리글, 우리의 이름마저도 빼앗기는 수모를 겪어야만 했다. 국권을 잃었다가 나라를 찾게 된 1945년까지 36년 동안 우리 민족의 고난과 인내와 항쟁으로 점철된 지난 반세기의 역사는 민족의 치욕인 동시에 교훈이기도 하다. 유구한 문화와 역사 속에서 다른 민족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뼈아픈 굴욕을 당한 것은 씻을 수 없는 오욕이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목숨을 바쳐 항쟁한 심산을 비롯한 수많은 애국선열들의 위대한 역사는 민족의 긍지이기도 한 것이다.
미래 주역인 청소년들은 물론 지역민 모두가 선생의 숭고한 정신적 교훈을 되새김으로써 독립운동의 역사를 새롭게 인식하고 이러한 선열들의 뜻이 우리 민족의 정신적 지주가 돼 남북통일과 국가발전의 원동력이 되기를 기대한다. 지구상에 남은 단 하나의 분단국이란 불명예스러운 타이틀을 하루속히 벗어야만 하는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선생이 타계하기 5년 전인 1957년에 지은 `통일은 어느 때에`라는 시는 아직도 완수하지 못한 역사의 임무를 시사하고 있다.
통일은 어느 때에
조국 광복에 바친 몸
엎어지고 자빠지기 어언 사십 년
… 천하는 지금 어느 세상인가
사람과 짐승이 서로들 얽혔네
붉은 바람 미친 듯 땅을 휘말고
태평양 밀물 넘쳐서 하늘까지 닿았네
아아 조국의 슬픈 운명이여
모두가 돌아갔네
한 사람 손아귀에
…
반역자의 주먹에
평화는 어느 때나 실현 되려는가
통일은 어느 때에 이루어 지려는가
밝은 하늘 정녕 다시 안 오면
차라리 죽음이여 빨리 오려무나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수여했다.
유림 출신 심산 김창숙 선생은 대의와 명분에 입각한 철저한 비타협의 선비정신으로 불굴의 행동주의에 일관함으로써 근현대사에 드물게 진보적 유학정신과 민족주의를 일치시킨 실천적 지성의 사표로 우뚝 섰다. 그분이 바로 자랑스러운 우리 고장 별고을 성주인이다.
취재3팀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